日 400년 역사 ‘금속 도시’…오픈팩토리 열자 MZ가 돌아왔다

5 days ago 9

장인정신 기반 제조업 도시 ‘쓰바메산조’

노벨상 만찬 양식기 납품하는
日금속가공산업의 핵심지역
버블경제 꺼지자 폐업 위기에

10여년전부터 ‘오픈팩토리’로
장인들의 기술·작업 공개하자
“더럽고 힘들고 위험” 편견 불식
젊은층이 일하고 싶게 만들어

일본 니가타현 산조시의 스와다제작소에 견학을 나온 니가타대학 부속 나가오카초등학교 5학년 학생들이 투명 창을 통해 공장 내부 모습을 보고 있다. [도쿄 = 이승훈 특파원]

일본 니가타현 산조시의 스와다제작소에 견학을 나온 니가타대학 부속 나가오카초등학교 5학년 학생들이 투명 창을 통해 공장 내부 모습을 보고 있다. [도쿄 = 이승훈 특파원]

“불꽃이 튈 때 너무 멋있었어요. 저도 커서 저런 일을 하고 싶어요.”

이달 초 찾은 니가타현 산조시의 스와다제작소. ‘손톱깎이의 에르메스’라고 불리는 고품질 스테인리스 손톱깎이로 유명한 곳이다. 장인이 100% 수작업으로 만드는 탓에 대표 제품 가격은 1만엔(약 9만3000원)에 달한다. 가격이 비싸지만 뛰어난 내구성으로 평생 사용할 수 있다는 입소문에 일본뿐 아니라 해외 관광객 사이에서도 인기다.

마침 기자가 방문한 시간에 산조시와 가까운 니가타대학 부속 나가오카초등학교 5학년 학생 40여 명이 전세버스로 이곳을 방문했다.

일본 니가타현 산조시의 스와다제작소에서 장인들이 손톱깎이 제조 작업을 하고 있다. [도쿄 = 이승훈 특파원]

일본 니가타현 산조시의 스와다제작소에서 장인들이 손톱깎이 제조 작업을 하고 있다. [도쿄 = 이승훈 특파원]

학생 인솔을 맡은 간바야시 교사는 “쓰바메산조 지역은 우수한 모노즈쿠리(장인정신에 기반한 일본 제조업 문화) 기업이 많고 공장 내부를 견학할 수 있는 오픈 팩토리가 많다”며 “장인이 일하는 모습은 학생들에게 책보다 훨씬 뛰어난 교재”라고 말했다.

올해 창립 100년을 맞는 스와다제작소는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인력 유출을 감당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 공장 문을 닫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이 커졌을 때 공장을 하나의 볼거리로 만들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사진설명

공장 벽을 투명한 창으로 만들어 밖에서 쉽게 볼 수 있도록 하고 별도의 견학로를 만들었다. 공장 1층에는 식당과 카페를 둬 저렴한 가격에 음식을 판매한다. 제조 과정에서 남는 철을 사용해 다양한 예술품도 만들어 전시했다.

오픈 팩토리가 외부에서 소문이 나며 하나둘씩 젊은 인력이 모이기 시작했다. 기술을 갈고닦아 일한다는 데 자부심을 갖게 된 것이다. 현재 장인 30여 명이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데, 전체 인력의 절반가량이 20·30대일 정도로 공장 전체가 젊어졌다.

일본 니가타현 산조시의 스와다제작소에서 제작 후 남은 철을 활용해 예술작품을 만든 모습. [도쿄 = 이승훈 특파원]

일본 니가타현 산조시의 스와다제작소에서 제작 후 남은 철을 활용해 예술작품을 만든 모습. [도쿄 = 이승훈 특파원]

일본에서 모노즈쿠리 도시로 꼽히는 쓰바메산조는 니가타현에 나란히 붙어 있는 쓰바메시와 산조시를 합쳐서 부르는 말이다. 현재 두 지역을 합쳐 종업원 4인 이상 기업 1150여 곳, 약 2만9000명의 인력이 관련 업종에 종사하고 있다.

쓰바메산조의 역사는 에도시대 초기인 1610년 전후가 시작이다. 이 지역에 있는 시나노강 유역은 종종 홍수에 시달려 농사를 짓는 농민들의 생활이 불안정했다. 당시 에도막부가 이들의 생계 수단으로 마련해준 것이 ‘못 만들기’였다. 못이 금속가공의 시작이었고 이후 가내수공업 형태를 통해 칼, 가위, 주전자 등 다양한 형태로 확장돼갔다.

노벨상 만찬장에서 사용됐던 쓰바메산조서 제작된 양식기. [도쿄 = 이승훈 특파원]

노벨상 만찬장에서 사용됐던 쓰바메산조서 제작된 양식기. [도쿄 = 이승훈 특파원]

막부 체제가 붕괴하고 메이지 시대가 되면서 쓰바메산조는 양식기 만들기에 착수했다. 연마와 프레스 등 금속가공 기술을 고도화해 차별화를 시도한 것이다. 현재 쓰바메산조에서 만들어진 양식기는 노벨상 만찬 때 사용될 정도로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일본 경제에서 거품이 붕괴한 1990년대 이후 이 지역은 급속히 쇠퇴해갔다. 금속가공을 ‘3K’(3D 업종을 뜻하는 일본 용어로 키쓰이(힘들다)·키타나이(더럽다)·키켄(위험하다)의 약자) 업종으로 인식하면서 젊은 층이 찾지 않게 된 것이다.

일본 니가타현의 교쿠센도 공방에서 장인이 주전자 제작을 위한 작업을 하고 있다. [도쿄 = 이승훈 특파원]

일본 니가타현의 교쿠센도 공방에서 장인이 주전자 제작을 위한 작업을 하고 있다. [도쿄 = 이승훈 특파원]

개당 10만엔(약 93만원)을 훨씬 웃도는 고급 주전자로 유명한 교쿠센도의 야마다 리쓰 번주는 “1816년 창업한 교쿠센도가 일손을 찾지 못해 폐업을 검토해야 할 정도로 당시는 심각한 위기였다”며 “이를 반전시킨 것이 오픈 팩토리였다”고 말했다.

야마다 번주는 “2013년부터 내부 공장을 일반에 공개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젊은이들의 관심이 크게 늘어났다”며 “현재 21명이 일하고 있는데 평균연령은 30대 중반”이라고 말했다.

일본 니가타현의 교쿠센도 공방에서 장인이 주전자 제작을 위한 작업을 하고 있다. [도쿄 = 이승훈 특파원]

일본 니가타현의 교쿠센도 공방에서 장인이 주전자 제작을 위한 작업을 하고 있다. [도쿄 = 이승훈 특파원]

교쿠센도는 하루 네 번에 걸쳐 시간을 정해 공장 견학을 진행하고 있다. 연간 약 7000명이 이곳을 찾는데, 4분의 1이 해외 방문객일 정도로 해외에서도 인기다. 현재 오픈 팩토리를 운영하는 곳은 쓰바메산조 지역에서 30여 개 업체에 달한다.

야마다 번주는 “매년 직원 한두 명을 뽑는데 평균 30~50명의 지원자가 몰린다”며 “너무 우수한 청년들이 일하겠다고 와서 선발하는 것만으로도 힘들다”고 말했다.

1912년 창립한 ‘히노우라칼공방’은 고품질의 일본도, 식칼, 사냥도 등으로 유명한 곳이다. 이곳에서 만난 3대 계승자 히노우라 쓰카사는 “처음에는 도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주방용 칼을 포함해 다양한 제품을 만들고 있다”며 “쓰기 편하고 오래간다는 장점 때문에 해외에서 인기가 더 높다”고 말했다.

히노우라칼공방의 3대 계승자인 히노우라 쓰카사가 칼 가는 시범을 보이고 있다. [도쿄 = 이승훈 특파원]

히노우라칼공방의 3대 계승자인 히노우라 쓰카사가 칼 가는 시범을 보이고 있다. [도쿄 = 이승훈 특파원]

그는 “20년 전 독일을 찾았을 때 장인이 계승하던 수공예 산업이 대부분 사라진 것을 보고 이를 일본의 미래로 생각했다”며 “이후 기술과 기능을 매력적인 방식으로 보여주는 오픈 팩토리를 통해 젊은이들이 돌아와 사업을 계승하는 것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하나즈미 히데오 니가타현 지사는 “단순히 전통을 계승하는 것이 아니라 혁신적인 창조를 추구하는 것이 일본 모노즈쿠리의 정신”이라며 “쓰바메산조의 오픈 팩토리는 전통 기술의 현대적 계승과 관광산업 연계를 통해 지역 발전을 일궈낸 사례”라고 말했다.

일본 시즈오카현 스소노시에 위치한 우븐 시티 모습. 낙후된 도요타 자동차공장 터에 들어선 미래 실험도시다. [도쿄 = 이승훈 특파원]

일본 시즈오카현 스소노시에 위치한 우븐 시티 모습. 낙후된 도요타 자동차공장 터에 들어선 미래 실험도시다. [도쿄 = 이승훈 특파원]

이런 가운데 일본 시즈오카현 스소노시도 낙후된 공장이 미래 도시로 탈바꿈한 사례로 평가받는다. 1967년 설립된 도요타의 히가시후지 공장은 한때 최고급 모델인 ‘센추리’ 등을 생산할 정도로 핵심 공장으로 평가받았다. 2020년 공장이 폐쇄될 때까지 752만대의 차량이 생산된 도요타의 중요 거점 가운데 하나였다.

도요타는 낙후된 공장을 폐쇄하고 이 자리에 지난해 9월 ‘우븐 시티’의 문을 열었다. 자율주행차가 돌아다니고 각종 제품과 서비스의 첨단 기능을 실험할 수 있는 장소로 변신한 것이다. 고령자로 가득 차 죽어가던 도시는 이제 미래 도시의 한 장면을 보여주는 장소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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