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파면된 윤석열 전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에 8차례 출석해 자신을 이렇게 직접 변론했다. 하지만 헌재 재판관 8명은 소추 사유 5개를 모두 “국민 신임을 배반한 중대한 위헌·위법행위”로 인정하면서 윤 전 대통령의 주장을 사실상 전부 배척했다.
● 헌재, “계엄 선포에 그치지 않고 국민기본권 침해”
A4용지 114쪽에 걸친 헌재 결정문은 윤 전 대통령이 그간 탄핵심판에서 내놓은 주장을 먼저 요약한 뒤 조목조목 반박하면서 “피청구인(윤 전 대통령)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마무리한 뒤 파면 결론을 전개했다.윤 전 대통령은 최후진술에서 “무력으로 국민을 억압하는 계엄이 아니라 계엄의 형식을 빌린 대국민 호소”라고 주장했다. 야당의 ‘줄탄핵’과 예산 삭감 시도 등이 국가비상사태에 준하는 상황이라 계엄을 선포할 수밖에 없었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헌재는 “‘경고성 계엄’ 또는 ‘호소형 계엄’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다”며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 이어 “계엄을 선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헌법의 근본원리를 위반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광범위하게 침해하는 포고령을 발령하게 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재판부는 “병력 투입은 여타 수단들을 모두 고려한 후 최후 수단으로 사용돼야 한다”며 “대국민담화나 탄핵제도에 대한 헌법개정안 발의, 국민투표부의권 행사를 통하여 ‘경고’와 ‘호소’를 할 수 있었다”고 질타했다.
● 재판부 “尹, 상당 기간 계엄 지속시키려 해”
국회 군경 투입도 윤 전 대통령은 국회 방해 목적이 아닌 ‘질서유지 차원’이었다고 주장해왔다. 윤 전 대통령은 “체포나 누군가를 끌어내는 일이 전혀 일어나지 않았고, 국민에게 군인이 억압이나 공격을 가한 사실이 없다”면서 “오히려 군인이 시민에게 폭행당하는 상황이었다”는 주장을 펼쳤다. 또 “실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지시를 했니 받았니 이런 얘기들이 마치 호수 위에 떠 있는 달그림자 같은 걸 쫓아가는 느낌을 받았다”는 말도 했다.
헌재는 “평시에도 철저한 경비가 되고 있는 국회에 단순히 질서유지만을 목적으로 본래 경비인력 및 추가된 경력을 넘어 군인까지 투입시켰다는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병력 투입으로 국회의 계엄해제요구권 행사를 방해함으로써 계엄과 포고령의 효력을 상당 기간 지속시키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헌재의 이 같은 판단은 곽종근 전 육군특수전사령관 등의 증언이 근거가 됐다. 재판부는 “(윤 대통령이) 의결정족수가 채워지지 않은 것 같으니,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안에 있는 인원들을 끄집어내라고 지시했다”는 곽 전 사령관의 증언을 사실로 인정했다. 국회가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신속히 가결했던 것에 대해서도 “시민들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인 임무 수행 덕분”이라고 밝혔다.
● 체포 지시, 尹과 무관하지 않다고 판단주요 인사 체포 지시가 없었다는 윤 전 대통령 증언도 헌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윤 전 대통령은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이 “싹 다 잡아들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증언한 것에 관해 “격려 차원에서 전화를 한 김에 방첩사가 간첩 수사를 잘할 수 있게 도와주라는 얘기였다”고 주장했다. 윤 전 대통령 지시 후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으로부터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등의 체포 명단을 들었다는 홍 전 차장 증언을 두고는 “내란 공작”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헌재는 홍 전 차장의 증언과 체포 명단을 사실로 인정했다. 계엄 선포 직후 급박한 상황에서 단순한 격려 전화를 했다는 주장에는 모순이 있다는 취지다. 헌재는 “피청구인이 여 전 사령관, 홍 전 차장, 조 청장을 모두 지휘할 수 있었던 사실 등에 비춰 볼 때 이 사건 명단에 포함된 사람들의 위치를 확인하도록 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지시가 피청구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이뤄졌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손준영 기자 ha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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