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외국 정부가 제약사 약값을 인위적으로 억제하는지 조사하는 절차에 들어갔다. USTR이 매년 내는 비관세장벽(NTE) 보고서에서 ‘한국의 약값 책정 문제’를 지적해온 만큼 향후 한·미 관세 협상의 변수로 떠오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USTR은 지난 23일부터 미국 환자들에게 제약 연구개발 비용을 불균형하게 부담하도록 강제하는 효과가 있는 정책, 관행에 대해 이해관계자를 대상으로 의견 수렴에 들어갔다. 외국 정부가 약값을 공정 시장 가격보다 낮게 억제하는 행위도 조사 대상으로 삼았다. 접수 마감 시한은 다음달 27일까지다. 미국이 의약품 품목관세 부과를 추진하기 위해 사전 작업에 들어간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2일 “미국인의 약값 부담을 줄이겠다”며 ‘미 환자 최혜국 처방약 가격 책정’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그는 “제약사들이 같은 약을 미국에서만 비싸게 판다”며 “외국 소비자만 신약을 저렴하게 구매하는 건 의약품 보조금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주장은 미국 밖에선 약값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미 제약사 요구에 발맞춘 정책이라는 분석이다. 행정명령에는 외국 정부가 약값을 인위적으로 억제할 경우 관세 부과 등의 대응 조치를 펼 수 있고, 미 정부가 지원해 개발된 혁신 신약을 외국에서 낮은 가격에 파는 ‘무임승차’에 대해 미국 상무부와 USTR이 대응하도록 한 내용이 포함됐다.
미국이 한·미 관세 협상에서도 약값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USTR은 NTE 보고서에서 한국 건강보험공단이 직접 제약사와 협상하는 한국의 약값 정책이 불투명하고, 한국의 혁신 신약 인증제도도 외국 제약사에 ‘진입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지난 22일 워싱턴DC에서 마무리된 한·미 국장급 관세 기술 협의에서도 USTR은 NTE 보고서를 기반으로 농산물 문제 등 다양한 비관세 장벽을 해소해 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30개월 미만 소고기 수입 제한 및 쌀 수입 규제 완화, 구글의 정밀 지도 반출 안건, 미국 기업의 유전자변형생물체(LMO) 감자 수입 문제 등이 도마에 오른 것으로 전해졌다. 약값 문제가 거론됐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김대훈 기자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