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와 세무 돕는 AI 개발 토글캠퍼스
기업 공시자료에 전자표식 달기… 손으론 몇 개월 일이 1주일에 끝
모든 엑셀 자료 사람처럼 활용해… 세무상담-ESG보고서 등 자동화
회계법인 개발자로 잠시 일하다… 수작업 많은 것 보고 창업 결심
기존에는 공시 자료를 엑셀이나 한글 프로그램으로 재무제표와 주석만 작성해 제출하면 됐다. 하지만 XBRL 공시 제도 아래서는 모든 숫자와 표, 주석, 회사 고유 항목에 전자표식을 부가 정보로 넣어 줘야 한다. 예컨대 영업이익 숫자에 ‘ifrs…OperatingProfitLoss’ 같은 표식(메타정보)을 다는 식이다. 전자표식이 있으면 글로벌 투자자와 시장 참여자, 감독기관이 기업정보를 더 손쉽게 분석, 비교할 수 있다.
문제는 전자표식 항목이 수십만 개에 달한다는 것이다. 일일이 전자표식 파일에서 해당 항목을 찾아 공시 자료에 붙여야 한다. 모든 숫자와 주요 정보에 표식을 달아야 하니 틀리게 다는 경우도 많다. 기업 고유의 상황이 있으면 어떤 표식을 붙여야 하는지 판단하기 어렵고, 여러 명이 나눠서 하다 보면 일관성이 떨어지기도 한다. 오류나 누락이 적발되면 과징금이나 벌금도 내야 한다.
토글캠퍼스는 엑셀 자료를 사람처럼 인식하는 인공지능(AI)을 개발해 XBRL 공시를 자동화하는 솔루션을 만들었다. 10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본사에서 만난 배규태 대표이사는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이 회계사에게 맡겨도 30% 가까이 오류가 발생할 만큼 복잡하고 고된 일”이라며 “1명이 몇 개월 걸릴 작업량을 1주일 이내 끝낼 수 있게 만들었다”고 자신했다.● 공시 업무 자동화에 세무 상담까지
대표 서비스 ‘인벡터 for XBRL’은 엑셀 자료에서 바로 XBRL 공시를 자동화하는 국내 유일 솔루션이다. 엑셀 파일을 복사해 붙이면 AI가 표 구조와 숫자, 맥락을 분석해 각 항목에 맞는 XBRL 태그를 자동으로 붙인다. 이 솔루션은 금감원 최신 규정과 가이드라인을 모두 내장하고, 실시간 오류 검증과 자동 추천 기능까지 제공한다. 배 대표는 “인벡터 AI 엔진은 1000셀 이상의 공시 문서에서 평균 97% 이상의 태깅 정확도를 보인다”고 설명했다.
토글캠퍼스의 핵심 가치는 엑셀 데이터를 제대로 인식하는 AI 개발 기술에 있다. 엑셀 데이터는 표 구조, 색상, 제목 행, 수식, 셀 병합을 비롯해 다양한 형태로 이뤄져 있다. 사람은 한눈에 표의 의미와 맥락을 파악하지만 빅테크 AI에는 아직 어려운 문제다. 배 대표는 “빅테크 AI들은 엑셀 표에 들어 있는 데이터 값을 텍스트로 인식하는 정도만 가능하다”며 “마이크로소프트(MS)는 엑셀 AI 연구를 시작한 지 1년밖에 안 됐고 구글과 오픈AI 도 엑셀 파일의 복잡한 구조와 맥락을 AI가 완전히 이해시키는 데 한계가 많다”고 했다. 미국 증시에 상장돼 있는 글로벌 1위 공시 솔루션 기업 워키바(WK)도 엑셀 자료를 직접 인식하는 것은 아니고 별도 플랫폼을 활용한다.인벡터는 표 구조와 맥락, 회계적 의미까지 정확히 인식하는 AI를 만들었다. 열(列) 제목에 퍼센트(%) 단위가 있으면 그 아래 숫자를 백분율로 인식하고, 합계 열에 있는 것은 그 이전 열들의 자료 값이 다 더해졌다는 것을 인식한다. 배 대표는 “대부분 엑셀로 관리하는 재무나 회계 자료의 기존 업무 패턴을 바꾸지 않고도 AI 자동화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우리 서비스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 “절세 방안 답변-회계사 업무 보조도”
엑셀을 인식하는 AI를 활용하면 다양한 것이 가능해진다. 기업이 오랫동안 사용하며 많은 데이터를 관리하는 엑셀 프로그램에서 자료를 직접 찾아 활용할 수 있어서다.
토글캠퍼스가 만든 ‘인벡터 택스(Tax)’는 세법, 회계기준서, 판례 같은 방대한 규정 데이터베이스를 직접 참조해 복잡한 세무, 회계 질문에 답변해 준다. 절세 방안이나 세금 신고 전략도 제안한다. 예를 들어 ‘자녀에게 상가를 증여할 때 절세 방법’이나 ‘유학생 계좌의 비과세 적용 가능 여부’를 물으면 관련 세법 조문과 판례, 회계기준을 근거로 한 답변과 증빙 자료를 제시한다.
‘인벡터 에이전트’는 엑셀에 입력된 복잡한 표와 데이터를 구조적으로 인식하고 분석해 각종 회계, 세무, 공시, 상속, 증여 같은 실무 업무를 한다. 회계나 세무 업무에 필요한 각종 보고서나 상담 결과를 실시간으로 생성한다. 배 대표는 “기업별 특수 상황이나 복잡한 규제까지도 유연하게 대응한다”고 했다. 인벡터 택스와 인벡터 에이전트는 실증을 거쳐 여러 회계법인에 판매했다.● 고교 시절 코딩 공부… UC버클리 중퇴하고 창업
배 대표는 캐나다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캘리포니아대 버클리(UC버클리)에서 컴퓨터공학과 수학을 공부했다. 대학은 2년만 다니고 창업했다. 대학을 다니는 동안 미국과 한국에서 개발자와 AI 연구원 등 여러 일을 했다. 회계법인에서 개발자로 일한 적이 있는데, 이때 회계 분야 창업을 결심했다. 배 대표는 “바쁜 전문가들이 공시 검증을 수작업으로 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며 “개발자로서 자동화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했다.
배 대표를 포함해 4명이 공동 창업했다. 서울대에서 벤처 경영을 공부하다 UC버클리에 교환학생으로 가서 배 대표와 만나게 된 박소영 씨가 최고운영책임자(COO)를 맡고 있다. 서울대에서 산업공학을 공부하는 최필립 씨가 최고기술책임자(CTO)를, 서울대 건설환경공학과 출신 최민동 씨는 AI 개발 책임자를 맡고 있다. 공동창업자 대부분이 20대다.
2023년 창업을 전후해 배 대표는 사업계획서를 들고 투자사를 찾아다녔다. 스마일게이트인베스트먼트와 블루포인트파트너스가 그들의 재능에 먼저 투자했다. 이후 창업기업을 집중 육성하는 민간 투자 주도형 기술창업 지원 프로그램인 팁스(TIPS)에 선정됐고 프리 A 투자도 유치했다.
● 북미-유럽 진출 준비
어려움이 없지는 않다. 변호사 업계에 AI 변호사가 도입되는 데 진통이 있었듯, 비슷한 논란을 겪을 수 있다. 배 대표는 “일반인에게 서비스를 제공하지는 않고 법인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했다.
꿈은 크다. 공시 자동화뿐 아니라,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비롯해 다양한 규제 관련 보고서 작성까지 AI가 지원할 수 있도록 확장할 계획이다. 배 대표는 “수시로 바뀌는 규제들을 반영해 회사 엑셀 자료에서 정확한 수치를 찾아 보고서를 자동으로 작성할 수 있다”며 “ESG 보고서 등 각종 글로벌 규제에 맞춘 자동화 소프트웨어를 계속 개발하겠다”고 했다.
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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