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걸프 지역의 에너지 위기가 장기화할 경우 세계 경제 성장률이 올해 2.1%, 내년 1.8%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경고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나 코로나19 팬데믹과 같은 대형 경기침체 국면을 제외하면 매우 낮은 성장률이라는 점에서 세계 경제에 중대한 하방 위험이라는 분석이다.
4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OECD는 최신 세계 경제 전망에서 걸프 지역의 에너지 공급 차질이 2027년 하반기까지 이어지는 장기 시나리오를 제시하며 이 같은 전망을 했다. OECD는 이 경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를 비롯한 주요 중앙은행들이 인플레이션 확산을 억제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최소 0.5%포인트 인상해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최근 미국과 이란이 취약한 휴전 상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긴장은 다시 높아지고 있다. 이란은 미국의 남부 이란 군사시설 공습에 대한 보복으로 쿠웨이트 내 미군 기지를 공격했다. 이에 따라 호르무즈 해협의 정상적인 선박 운항 재개를 위한 합의가 임박했다는 기대도 약화한 상태다.
다만 OECD의 기본 시나리오는 현재 위기가 조만간 해결된다는 가정에 기반하고 있다. 선물시장이 반영하는 현재 수준의 에너지 가격이 유지될 경우 세계 경제 성장률은 지난해 3.4%에서 올해 2.8%로 둔화한 뒤 2027년에는 3.1%로 회복될 것으로 전망됐다.
미국 경제는 올해 2.0% 성장해 지난해 2.1%보다 소폭 둔화할 것으로 예상됐다. 미국 물가상승률은 올해 3.7%로 연준 목표치인 2%를 크게 웃돌 전망이지만, 지난 3월 OECD가 예상했던 4.2%보다는 낮아졌다. 영국 역시 올해 물가상승률이 3.7%로 미국과 함께 주요 7개국(G7)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됐다.
영국 경제 전망은 소폭 개선됐다. OECD는 올해 영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0.7%에서 0.9%로 상향 조정했다. 2027년 성장률은 1.1%로 예상했다.
기본 시나리오에서는 인플레이션이 단기적으로 상승하더라도 연준과 영국중앙은행(BOE) 등 주요 중앙은행들이 금리를 동결할 수 있다고 OECD는 평가했다. 그러나 평화협정 체결이 2027년 이후로 미뤄질 경우 상황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OECD 수석 이코노미스트 스테파노 스카르페타는 “장기 공급 차질 시나리오에 이미 진입하지 않았기를 바란다”며 “이는 매우 암울한 시나리오”라고 말했다. 해당 시나리오에서는 에너지 가격이 현재 선물시장이 반영하는 수준보다 50% 높아지고 걸프 지역에서 생산되는 에너지와 농업·산업 원자재의 공급 부족이 심화할 것으로 전망됐다.
OECD는 이 경우 생산능력 자체가 훼손되는 이른바 ‘상흔 효과(scarring effect)’가 발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공급 충격은 금융시장과 기업·소비자 신뢰를 약화하고 투자 활동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인공지능(AI) 산업도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AI 산업은 막대한 전력을 필요로 하는 데다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원자재 공급에서도 걸프 지역의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에너지 가격 급등과 원자재 부족이 동시에 발생할 경우 데이터센터 투자와 첨단 반도체 생산 확대 계획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분석이다.
OECD는 장기 공급 차질이 현실화할 경우 주요 중앙은행들이 에너지 가격 상승이 임금과 서비스 가격 전반으로 확산하는 이른바 ‘2차 효과’를 차단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0.5~0.75%포인트 인상해야 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경기 둔화와 물가 상승이 동시에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 위험을 키울 수 있는 요인으로 평가된다.
향후 시장은 미국과 이란 간 협상 진전 여부와 호르무즈 해협의 정상화 가능성, 그리고 에너지 가격 흐름을 주시할 것으로 보인다. OECD는 단기 충격보다 공급 차질의 지속 기간이 세계 경제의 향방을 결정할 핵심 변수라고 진단했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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