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차 거래, 한국경제의 숨은 엔진[기고/이홍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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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주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

이홍주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
몇 해 전 소비 트렌드를 분석한 한 보고서에서 ‘N차 신상’이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당시엔 한정판 상품을 중심으로 한 MZ세대의 유행쯤으로 여겼다. 하지만 지금, 그 흐름은 단순한 유행을 넘어 경제 구조 자체를 바꾸고 있다.

실제로 국내 중고거래 시장은 2008년 4조 원 규모에서 2025년에는 43조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하나의 제품이 여러 사람을 거쳐 반복적으로 거래되는 이른바 ‘N차 거래’가 활발해지고 있는 것이다.

N차 거래란 하나의 제품이 여러 번 주인을 바꾸며 반복적으로 거래되는 현상이다. 과거에는 제품의 물리적 수명은 길어도 경제적 수명은 1회 거래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의류, 가전제품 등 대부분의 상품은 한 번 팔리고 나면 경제적 가치는 사라졌다. 그러나 최근에는 구형 아이폰이 레트로 사진 감성으로 재조명되며 다시 활발히 거래되고, 오래된 명품 가방이나 빈티지 의류, 클래식 게임기 같은 제품들도 중고 시장에서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N차 거래가 중요한 이유는 ‘거래’가 발생할 때마다 새로운 부가가치가 창출된다는 점에 있다. 한 번 생산된 제품이 여러 차례 거래될 때마다 플랫폼, 택배, 인증, 정비 등 다양한 서비스 산업이 함께 성장한다. 즉, N차 거래는 ‘N차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이는 마치 영화 ‘아이언맨’의 ‘아크 원자로’처럼 한 번 만들어진 에너지가 반복적으로 재생산되는 경제적 동력원과 같다.

‘N차 부가가치’는 내수시장을 넘어 수출시장에서도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 수십 년 된 국내 중고 버스가 아프리카에서 여전히 운행되는 사례를 비롯해 국내에서 보상판매로 반납된 구형 휴대전화가 제3세계에서 활발히 거래된다. 심지어 K팝 아이돌 앨범에 포함된 포토카드 한 장이 한류 열풍을 타고 해외에서 수백만 원에 팔리는 사례도 있다. 최근에는 한정판 운동화, 빈티지 오디오, 희귀 서적 등 다양한 품목이 글로벌 중고 시장에서 새로운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이처럼 N차 거래가 활성화되면 추가적인 노동력이나 자본 투입 없이 거래만으로 새로운 경제적 가치가 창출된다. 이는 국내총생산(GDP) 성장뿐 아니라 외환보유액 확충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자원의 효율적 활용과 환경 부담 경감, 소비자 후생 증대 등 순환경제의 실현에도 기여한다.

이제 정부가 나설 때다. 중고 수출을 위한 인증 및 물류 인프라 구축, 역직구 활성화를 위한 제도 정비, 데이터 기반의 신뢰도 높은 거래 플랫폼 지원 등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일본이 공적개발원조(ODA)를 활용해 동남아에 중고차 수출 인프라를 구축한 사례는 시사점이 크다. N차 거래는 단순한 소비 트렌드가 아니라 생산 없는 부가가치 창출과 친환경 순환경제, 새로운 수출 동력이라는 세 가지 과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기회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육성한다면 N차 거래는 조용하지만 강력한 한국경제 성장의 추진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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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주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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