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영화 ‘란 12.3’…이명세 감독의 시네마틱 다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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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영화 ‘란 12.3’…이명세 감독의 시네마틱 다큐

최재민(외부기고자)

입력 : 2026.05.06 01:03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지난 4일 기준 ‘란 12.3’(감독 이명세)은 누적관객수 20만 명을 돌파하며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이명세 감독이 2007년 ‘M’ 이후 19년 만에 내놓은영화로,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의 기습적인 비상계엄 선포와 그 이후를 생생한 현장 기록으로 담아낸 다큐멘터리다. 인터뷰나 내레이션 없이, 실제 찍은 핸드폰 영상과 그래픽, 소리와 자막으로 강렬했던 하룻밤을 그려낸다.

※ 본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될 만한 줄거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는 극장의 막이 열리는 씬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대통령이 등장한다. 마치 블랙코미디의 한 장면처럼. 2024년 12월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의 기습적인 비상계엄 선포로 전 국민의 평화로웠던 일상이 깨졌다. 1980년 5월 18일 그 날의 트라우마를 건드리는 완전 무장한 군 병력은 국회를 무력화하려 하고, 시민과 국회의원들은 국회로 몰려간다.

영화 ‘란 12.3’ 스틸컷

영화 ‘란 12.3’ 스틸컷

비상계엄이 발표됐던 날짜를 제목에 넣은 영화 ‘란 12.3’은 ‘형사 Duelist’, ‘M’,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등 다양한 작품을 연출하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시네아티스트로 자리매김한 이명세 감독이 연출했다. 그는 기존 다큐멘터리의 틀을 과감히 벗어나 인터뷰와 내레이션을 배제하고, 각종 영상 및 이미지와 조성우 음악감독과 함께 만든 강렬하고 유려한 사운드로 영화를 채웠다.

현장을 기록했던 라이브 영상들과 유튜브, AI로 만든 인물 영상과 그래픽 노블을 떠올리게 하는 만화 기법까지 다양한 자료로 구성된 ‘란 12.3’은 특히 150여 명의 시민이 제공한 영상과 사진, 국회 관계자 및 취재진의 기록 등 방대한 아카이브를 바탕으로 구성됐다.

영화 ‘란 12.3’ 스틸컷

영화 ‘란 12.3’ 스틸컷

보좌관들이 국회의장의 위치를 감추기 위해 손톱이 깨지도록 의원실의 불을 끄러 다니고, 계엄 해제 안건을 상정하기 위해 계단을 뛰어 올라가는 격한 호흡이 관객들에게 그대로 전해지는 이유다. 영화 초반부터 불길하게 이어지는 장면에 정확히 들어맞는 강렬한 사운드는 불쾌함마저 선사할 정도로 관객들의 몰입도를 높인다.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 ‘덕혜옹주’ ‘8월의 크리스마스’ 등의 음악을 작업하고, 이명세 감독과 ‘형사 Duelist’,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함께 했던 조성우 음악감독이 영화에 참여했다.

피아노 앞에 앉아 연주하는 그와 함께 서부 법원에서 기물을 깨부수는 사람들의 모습이 겹쳐지는 웅장한 교향곡은 영화 전체를 이끌어 가는 ‘또 하나의 화자’가 되어 비주얼과 내러티브를 결합해낸다. 특히 화면의 흐름과 군중의 움직임까지 정교하게 따라가는 음악적 설계는 기존 다큐멘터리에서는 경험할 수 없었던 압도적인 시네마틱 체험이다.

영화 ‘란 12.3’ 스틸컷

영화 ‘란 12.3’ 스틸컷

다큐이긴 하나, 극적인 여러 장치들을 도입해 단순한 사건의 기록을 넘어 당시 현장의 역동성을 밀도 있게 담아낸 영화는 12월 3일 밤의 팽팽했던 긴장감과 에너지를 스크린 밖으로 표출해낸다. 이명세 감독은 서사에 대한 설명보단 추상적 이미지들로 호흡을 끝까지 끌고 간다.

지하철을 타고 국회로 오는 이들의 노선별 컬러가 야광봉 응원으로 치환되고, 서부지법을 짓밟은 폭력의 파편이 눈송이로 내려앉아 키세스 전사대의 모습으로 치환되는 광경에선 ‘미장센 달인’ ‘충무로의 스타일리스트’다운 감독의 솜씨가 그대로 드러난다.

영화 ‘란 12.3’ 포스터

영화 ‘란 12.3’ 포스터

무성영화의 기법도 활용됐고, 각종 댓글과 SNS 속 반응들도 시각화했다. 마치 극영화 속 인물들처럼 실제 인물들이 주고 받은 전화 통화는 긴장감을 주고, 아날로그 게임과 팝아트 영상으로 형성화된 인물들은 블랙코미디의 정수를 선사한다. 고 유영길 촬영감독에 대한 메시지로 끝을 맺는 영화에는 2021년 제1회 힌츠페터국제보도상을 받은 유 감독이 찍은 5.18 광주의 모습도 삽입돼 있다. 러닝타임 96분.

[ 최재민 사진 프로덕션에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1028호(26.05.05)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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