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에 앉은 사람이 몸을 앞으로 굽혀 하반신 모양의 웨어러블 로봇에 발을 끼운다. 이어 로봇이 완전히 접히면서 사람에게 안기듯 착용된다. 로봇이 다리를 펴자 휠체어에 앉아 있던 사람이 일어나고, 이어 한두 걸음 앞으로 내디딘다.
공경철 KAIST 기계공학과 교수 연구팀 소속 김승환 연구원은 24일 차세대 하반신 마비 장애인용 웨어러블 로봇 ‘워크온슈트 F1’을 시연하며 “지금 이렇게 서 있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순간”이라고 말했다. 그는 “서서 다른 사람과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를 나누는 자체가 저에게는 큰 의미”라며 “3개월 전 무겁게 느껴지던 로봇이 이제는 제 몸에 맞춰진 것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연구팀은 이날 대전 대덕구 사이배슬론 2024 아시아허브에서 하반신 마비 중에서도 중증도가 가장 높은 완전 마비 환자를 위한 워크온슈트 F1을 공개했다. 이 로봇은 장애인이 타인의 도움 없이 스스로 착용하고 비장애인처럼 움직일 수 있도록 설계됐다.
기존 장애인용 웨어러블 로봇은 착용할 때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한계가 있었다. 자립과 자율적인 이동을 돕기 위해 개발된 로봇이지만, 스스로 착용하지 못해 결국 일상생활에서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박정수 KAIST 연구원은 “기존 로봇들은 치료사 두 명이 붙어서 장애인을 로봇 위에 올리는 과정이 필요했다“며 “장애인들이 혼자 입을 수 있는 로봇을 만드는 데 주안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이번에 공개된 워크온슈트 F1은 장애인이 휠체어에서 내리지 않고 착용할 수 있다. 사람의 앞부분에 로봇이 위치하는 전면 착용 방식을 적용해 로봇이 앉아 있는 사람의 몸 위로 접히는 방식이다. 공 교수는 “기존엔 착용 과정에서 부상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전면부 착용으로 휠체어에서 내려올 필요 없이 스스로 착용할 수 있어 안전하다”고 소개했다.
착용을 돕기 위해 로봇이 스스로 사용자에게 다가가는 기능도 탑재됐다. 웨어러블 로봇이 휴머노이드처럼 스스로 걸어와 착용자에게 다가가고, 착용 후엔 강력한 균형 제어 기능으로 외부 충격에도 넘어지지 않는다. 공 교수는 “인공지능 제어 모드부터 모터, 모션 제어 알고리즘까지 모든 핵심 기술을 자체 개발했다”고 언급했다.
연구팀은 성능을 높이는 동시에 로봇의 핵심 부품을 모두 국산화했다. 워크온슈트 F1은 최대 시속 3.2㎞로 이동할 수 있다. 비장애인의 정상 보행 속도와 유사하다. 현재까지 개발된 하반신 마비 장애인용 웨어러블 로봇 중 가장 빠르다. 연구팀은 “해외 최고 기술과 비교해 출력 밀도는 2배, 제어 성능은 3배 향상됐다”고 강조했다.
워크온슈트는 실내를 넘어 실외 활동과 산업에서 활용 가능한 로봇으로 발전할 전망이다. 박 연구원은 “실외 경사로도 내려가고, 날씨가 좋을 때는 피크닉을 즐길 수 있을 정도로 야외에서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로봇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공 교수는 “웨어러블 로봇은 단순한 보조 기기가 아니라 데이터 수집 장치로서도 역할을 할 수 있다”며 “향후 산업 현장 등 다양한 분야로 활용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새로 공개한 웨어러블 로봇은 오는 27일 열리는 제3회 사이배슬론 대회에 출전한다. 사이배슬론은 스위스에서 4년마다 열리는 장애 극복을 위한 국제 대회다. 공 교수 연구팀은 2020년 열린 대회에서 15개국 20개 팀 중 1위와 3위를 차지했다. 올해는 26개국 71개 팀이 참가한다. 연구팀이 출전하는 웨어러블 로봇 분야엔 총 7개 팀이 경쟁할 예정이다. 사이배슬론 팀 주장을 맡은 박 연구원은 “우리 로봇의 속도가 다른 팀보다 빠를 것”이라며 “대회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전했다.
황동진 기자 radh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