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DP 절반 책임지는 '검은 돈'…韓 부동산까지 '비상'? [글로벌 머니 X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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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2025.12.22 07:00 수정2025.12.22 07:00

지난 10월 프놈펜의 사기 센터 급습 당시 온라인 사기 연루 혐의로 체포된 한국인들이 모여 있는 모습. 캄보디아 통신사(AKP)

지난 10월 프놈펜의 사기 센터 급습 당시 온라인 사기 연루 혐의로 체포된 한국인들이 모여 있는 모습. 캄보디아 통신사(AKP)

연간 438억 달러…메콩 3국을 뒤흔드는 '스캠 경제'[글로벌 머니 X파일]

최근 캄보디아·라오스·미얀마 접경지대의 이른바 ‘스캠 산업단지’가 글로벌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이 커지고 있다. 첨단 금융 기술과 전근대적인 강제 노동이 결합하면서다. 국가 시스템의 방조 혹은 적극적인 결탁으로 연간 수십조원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그림자 산업’이 국가 공식 경제를 집어삼키고 있다는 분석이다.

메콩 3국 GDP의 30%

22일 미국평화연구소(USIP)와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의 보고서에 따르면 메콩 3국(캄보디아·라오스·미얀마)에 기반을 둔 범죄 신디케이트가 전 세계 피해자들로부터 사취한 자금은 연간 438억 달러를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3개국 국내총생산(GDP) 합계의 30%가 넘는 규모다.

이런 대규모 자금 흐름은 해당 국가의 경제 구조를 기형적으로 왜곡시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의 데이터에 따르면 라오스의 경우 스캠 조직이 자국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이 약 109억 달러로 추산된다. 이는 라오스 공식 GDP(약 165억 달러)의 66.1%에 달한다.

캄보디아 역시 상황은 심각하다. 연간 스캠 수익은 약 128억 달러로 추정된다. 이는 캄보디아 GDP(약 464억 달러)의 27.6%를 차지한다. 캄보디아의 주력 산업인 봉제업이나 관광업을 위협하거나 이미 넘어선 수준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신고되지 않은 암수 범죄를 포함할 때 이 비중이 GDP의 50%에 육박한다고 지적한다.

미얀마의 경우에는 스캠 수익(약 153억 달러)이 GDP(약 740억 달러)의 약 20%를 차지한다. 이 자금은 중앙정부의 통제를 벗어나 군부와 반군, 국경수비대의 핵심 전쟁 자금으로 전용된다는 분석도 있다. 범죄 조직의 수익이 국가 경제 규모와 맞먹게 되면서 정부가 범죄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범죄 자본이 국가를 포획하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경고가 나온다.

이런 대규모 약탈적 자본은 어떻게 움직일까. 스캠 산업은 '부동산·인프라', '금융·핀테크', '노동 시장'으로 이어지는 밸류체인을 구축했다는 분석이다.

claude.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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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관련 부동산과 인프라 산업의 호황이다. 스캠 조직은 음지에서 일하지 않는다. 이들은 ‘경제특구’라는 합법적인 거대 복합단지를 건설한다. 캄보디아 시아누크빌, 미얀마 미야와디의 ‘KK 파크’와 ‘쉐꼬꼬’, 라오스 골든 트라이앵글 경제특구가 대표적이다.

GI-TOC(국제조직범죄방지단)의 보고서와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들 시설은 단순 사무실이 아니다. 주거, 유흥, 감금 시설이 결합한 자족적 도시로 진화했다. 최근에는 단속을 피해 정글 깊숙한 곳이나 국경 사각지대에 자체 전력망과 위성 인터넷(스타링크)을 갖춘 요새화된 단지를 짓고 있다.

AP통신은 “스페이스X가 미얀마 내 스타링크 단말기 2500대를 비활성화했지만 스캐머들은 여전히 우회 경로를 통해 초고속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계 자본이 주도하는 이런 움직임은 현지 엘리트에게 막대한 임대 수익을 안겨주며 범죄와의 공생 관계를 공고히 한다는 지적이다.

첨단 핀테크 악용

금융 산업에서는 핀테크를 활용했다. 범죄 수익은 테더 등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국경을 넘는다. 여기서 이른바 ‘언더그라운드 뱅킹’과 결합한 핀테크 플랫폼이 쓰인다. 캄보디아의 후이원 그룹은 핀테크 기술을 어떻게 범죄에 활용하는지 잘 보여줬다. 미국 금융범죄단속국은 지난 5월 후이원 그룹을 ‘주요 자금세탁 우려 대상’으로 지정했다.

블록체인 분석 기업 엘립틱에 따르면, 후이원 보증 플랫폼은 2021년 이후 약 240억 달러 이상의 거래를 처리했다. 이 플랫폼은 범죄 조직에 자금 세탁은 물론, 범죄 도구 거래와 인력 매매의 장까지 제공했다. 기존 은행 시스템을 우회해 자체적인 금융망을 구축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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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캠 산업에서도 직원이 필요하다. 스캠 조직은 '로맨스 스캠'과 암호화폐 투자 사기를 위해 고학력, 다국어 구사 능력의 인력이 필수다. 인터폴의 6월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66개국 이상에서 수십만 명의 청년들이 ‘고수익 해외 취업’을 미끼로 콤파운드로 유인됐다. 이들은 여권을 압수당한 채 강제 노동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 국가가 스캠 조직을 방치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스캠 산업의 단기적인 경제 효과를 무시할 수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서방의 제재와 원조 중단 속에서 스캠 산업과 연계된 중국계 자본은 즉각적인 현금을 공급하는 유일한 창구라는 것이다. 해당 지역의 부동산 시장 붕괴를 막고 엘리트 계층의 충성심을 유지하기 위해 정부는 이런 ‘그림자 자금’을 필요로 하다는 의견이다. 일종의 ‘범죄의 낙수효과’를 기대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스캠 산업은 장기적으로 국가의 정상적인 경제 기반을 파괴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치안 불안으로 관광객 감소, 국가 브랜드 추락에 따른 건전한 외국인직접투자(FDI) 이탈은 이미 현실화하고 있다. 범죄 자금 유입으로 부동산 가격 상승과 인플레이션 등 이들 국가의 서민 경제에 악영향도 미친다. 존 K. 헐리 미 재무부 차관은 “동남아 사이버 스캠 산업은 미국인의 재정적 안보를 위협할 뿐 아니라 해당 국가를 장기적인 빈곤과 부패의 늪으로 빠뜨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금융망 오염

최근 글로벌 경제도 악영향을 받고 있다. 작년 한 해 동안 미국인이 동남아 기반 스캠으로 입은 피해액만 100억 달러가 넘는 것으로 미 재무부는 추산했다. 전년 대비 66% 급증한 수치다.

글로벌 금융망 오염도 있다. 세탁된 자금은 다시 글로벌 금융 시스템으로 흘러들어온다. 한국 관세청의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적발된 불법 외환거래(환치기) 규모 12.4조원 중 약 90%가 가상자산을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스캠 수익은 한국, 싱가포르, 두바이의 부동산과 럭셔리 자산을 구입해 자산 가격 거품을 유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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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빅테크 기업들 역시 이 생태계와 얽혀 있다는 의혹도 나온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메타의 중국 광고 매출은 2022년 74억 달러에서 2024년 184억 달러로 2배 이상 급증했다. 이 중 상당 부분이 스캠 조직이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배포하는 ‘가짜 투자 광고’나 ‘구인 광고’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플랫폼 기업이 범죄 수익의 일부를 광고비로 흡수하며 공생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은 이 거대한 범죄 산업의 주요 피해국이다. 국정원과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올해 기준 캄보디아 내 스캠 범죄 단지 50여 곳에 가담하거나 억류된 것으로 추정되는 한국인은 최대 2000명에 이른다. 외교부에 접수된 감금 피해 신고만 2022년 이후 550건이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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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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