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 불변의 법칙, 기술 자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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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연 한국센서학회장김희연 한국센서학회장

지난 50여년간 한국의 반도체 산업은 국가의 부와 브랜드를 책임져왔다. 국민은 세계 곳곳에서 한국 반도체 기업이 주도하는 행사를 보며 자부심을 느꼈고, 반도체는 우리 경제의 중추로서 막대한 일자리와 부가가치를 창출해왔다.

하지만, AI 시대와 신보호무역주의 도래로 반도체 산업은 중대한 전환점을 맞고 있다. 엔비디아, MS, 구글 등이 주도하는 미국의 AI 동맹에 주도권을 내주면서, 우리는 주도자에서 종속자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 있다. 더욱이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은 큰 시련을 예고한다. 칩스법과 IRA에 따른 반도체 보조금이 삭감될 것으로 예상되며, 미래 기술개발과 시장 확대의 주도권이 미국 기업에 넘어가는 것은 시간 문제로 보인다. 특히 국방과 우주 분야의 핵심 기술에 대한 협력도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된다.

베스트셀러 '불변의 법칙'의 저자 모건 하우젤은 대공황, 전쟁, 재난 등 역사를 바꿀 만한 위험을 예측하고 준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다만, 인류 역사를 관통하는 불변의 법칙을 깨닫고 이에 대비하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불변의 법칙은 무엇일까? 바로 '기술 자립'이다. 특히 국가전략분야인 우주항공과 국방 분야의 핵심 센서 기술 자립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됐다. 한국형 차세대 전투기 KF-21사업에 대한 미국의 핵심기술 이전거부로 AESA 레이다 개발에 7년의 추가기간이 필요했던 경험, 수위센서 오작동으로 나로호 발사가 연기된 사례는 센서 기술 자립의 시급성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사례들은 핵심 기술의 해외 의존도가 얼마나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지를 경고하고 있다.

반도체 수출의 80~90%가 메모리에 편중된 현재의 산업 구조도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 특히 센서 분야는 수출의 0.1%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국내 센서 기업은 스마트폰, 자동차, 사물인터넷(IoT) 등 국가 기반산업에서 선진국 기업에 자리를 내주어야 했다. 조립 중심의 국내 제조업 환경에서 국내 부품을 선호하지 않는 대기업만을 탓하기에는 현재의 상황이 너무나 엄중하다.

하지만, 새로운 기회가 찾아오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기술과 권력을 모두 손에 쥐게 될 일론 머스크의 행보가 주목된다. 테슬라의 자율주행 기술, 뉴럴링크의 브레인칩 기술은 휴머노이드 로봇 제작에 직간접적으로 연계되어 있고, 옵티머스로 대표되는 휴머노이드 로봇은 규제에서 벗어나 폭발적 성장이 예상된다. 시장조사기관들은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이 자동차 시장을 뛰어넘는 거대 시장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휴머노이드 로봇은 AI 반도체, 센서, 액추에이터의 집합체다. 인간의 27개 자유도를 가진 손동작과 90% 이상의 감정인식 정확도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센서 기술이 필수다. 현재 테슬라의 옵티머스조차 손동작의 자유도와 정밀도, 감정인식 능력 등에서 인간의 수준에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우리가 차세대 센서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이를 위해서는 반도체, 센서, 배터리 기업들의 전략적 연합이 시급히 구성돼야 한다.

“기적은 오래 걸리고, 비극은 순식간이다.” 예상치 못한 비극이 오기 전에 기적을 차근차근 준비해야 한다. 준비의 핵심은 센서기술 자립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불변의 법칙이며, 예측 불가능한 미래의 리스크에 대비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다. 메모리 반도체의 성공을 넘어, 이제는 센서 강국으로 도약할 때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

김희연 한국센서학회장(나노종합기술원 책임연구원) hyeounkim@nnfc.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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