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 AI기본법과 계엄 사태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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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호 한국인터넷기업협회장박성호 한국인터넷기업협회장

45년만의 비상계엄 선포는 온 국민에게 충격이었다. 하지만 인터넷과 모바일을 통한 광범위한 소통과 신속한 의견 교환은 국회가 2시간여만에 계엄 해제를 의결토록 하는 위력을 발휘했다. 국민들이 정보를 취득하고 판단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인터넷과 플랫폼이 1979년과는 다른 결과를 낳은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인터넷을 넘어 인공지능(AI)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AI기본법 제정을 추진하고, 국회에서도 다수 의원이 관련 법안을 제출한 배경이다.

하지만 발의된 법안들이 참고하고 있는 유럽연합(EU)의 AI 법과 관련한 논란과 비판도 제기된다. 유럽 내에서도 실효성 논란과 더불어 유럽의 이익을 위해서도 자충수라는 비판도 제기된 마당에, '대한민국이 유럽의 입법사례를 본받을 필요가 있는가'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기본법'이 제정돼야 발전이든 통제든 논의가 된다며 찬성하는 의견도 나왔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총 19건의 인공지능 관련 법률안을 병합·심사하고, 이를 통합·조정한 위원회의 대안인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안'(이하 위원회 안)을 지난달 26일 가결했다.

아직 법제사업위원회 심의가 남아있지만, 여전히 위원회 안에 대해 기존 규제 체계와의 충돌 우려가 제기된다. 예를 들어 의료기기의 경우,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규제 권한이 있는데 이 법안의 '고영향 AI'에 해당한다면 과기정통부 장관이 추가 규제를 할 수 있게 된다. 밖으로는 진흥을 표방하면서 실질적으로 AI 산업에 대한 규율 권한이 주무 부처에 과도하게 집중돼 타 부처 규제와 중복 규제가 발생하지 않을지 우려된다.

특히 위원회 안의 제40조(사실조사 등) 조항은 조사 권한의 범위와 절차에서 큰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어 산업계와 사회 전반에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초래할 우려가 크다. 동 조항은 단순한 신고와 민원 접수만으로도 과기정통부가 AI 사업자의 사업장에 출입해 장부, 서류, 물건 등을 조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은 조사 착수 요건이 불완전할 뿐만 아니라, 피조사자의 방어권이나 대항권이 충분히 보장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다.

최근 우리는 요건을 갖추지 않은 계엄 사태를 겪으며 절차적 정당성과 적법성의 중요성을 다시 깨닫고 있다. 만일 입법 취지와 달리 경쟁사 또는 AI에 대해 반감을 가진 사람들의 악의적 민원으로 주무부처가 조사 권한을 광범위하게 행사한다면, AI 개발과 운영 등 기업 환경에 심각한 불확실성을 초래할 수 있다. 대통령의 임의적 판단이 불행을 초래할 수 있듯 한 부처의 일방적 결정과 판단으로 산업이 좌우되는 법 구조는 권리 보전에 너무나 취약하다.

또 다른 법령과 비교했을 때 이 규정은 형평성과 정당성이 현저히 부족하다. 예컨대 '전기통신사업법'은 사실조사 착수 요건을 '위반 행위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로 한정하고 있다. 절차상으로도 '개인정보보호법'이나 '전기통신사업법'은 △조사 전 통보 △조사계획의 사전 공개 △관계인의 입회 허용 등 피조사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절차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하지만 AI기본법 위원회 안에는 이런 장치가 전혀 없다. 사업자가 어떠한 경우 사실조사를 거부할 수 있는지 명확히 규정되어 있지 않은 것은 '행정조사기본법' 제4조 제1항에서 규정한 행정조사 남용 금지 조항과 상충될 우려가 있다.

이에 따라 사실조사 착수 요건을 위법 혐의가 명백히 인정되는 경우로 한정하고, 기본적이면서도 당연한 절차적 보호 장치를 도입해야 한다.

AI 기본법이 대한민국 AI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국민적 신뢰를 높이는데 이바지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러나 위원회 안에 포함된 '사실조사' 조항은 산업계에 불필요한 부담과 불안을 조성할 가능성이 있다. 국회와 정부가 이런 우려를 다시 면밀히 검토하고, 보다 균형 잡힌 법안을 만들어 주기를 바란다.

박성호 한국인터넷기업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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