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박빙의 치열한 승부를 예상했던 미국 47대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압승을 거두고 당선이 확정됨으로써 이제 한 달 후인 내년 1월 20일 대통령에 취임한다. 당선 직후 트럼프는 제2기 행정부는 1기와 같지만 보다 강력한 내용을 담은 위대한 미국 재건(Make America Great Again)을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이에 따라 트럼프 2기에서는 미·중간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경제 안보를 앞세운 '신보호주의' 정책과 미국 경제, 일자리 보호를 최우선으로 삼고 관세 인상 등 대외무역과 외국자본에 강력한 규제를 도입하려는 '자국 우선주의' 정책 기조가 한층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기조는 인공지능(AI), 플랫폼, 데이터 등 디지털 정책에도 그대로 투영될 것으로 예상돼 한국 정부와 기업도 대응을 고심하고 있다. 특히, IT 강국의 위상을 이어 AI 3대 강국으로 도약을 꿈꾸는 한국으로서는 트럼프 2기의 디지털 정책에 대비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AI 정책에 대해서 보면, 기본 방향은 규제보다 산업 지원을 우선시해 기존 규제를 폐지 내지 완화하고 중국 등 다른 나라와의 기술 격차를 벌리는 데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이미 바이든이 지난 해 10월 발표한 AI 행정명령을 폐기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트럼프는 제1기 재임 시인 2019년 2월 국가 번영 증진, 국가 및 경제 안보 강화, 자국민 삶의 질 향상에 중점을 둔 '미국 AI 리더십 유지 행정명령'(Maintaining American Leadership in Artificial Intelligence Executive Order 13859) 발표한 바 있다. 당시 행정명령은 AI에 대한 과도한 규제를 제한하고 AI 기술 개발을 촉진하는 것이 초점이었다.
그런데 트럼프는 경선 과정에서 'AI 안전성 검토', '딥페이크 콘텐츠 워터마크 표식 의무화' 등을 포함한 바이든 정부의 AI 행정명령을 불법 검열이라고 비판한 바 있으며, 7월 공화당 전국위원회에서는 바이든의 행정명령을 AI 혁신을 저해하고, 급진 좌파적 이념(Radical Leftwing ideas)을 AI 개발에 강요하는 위험한 것으로 보고 이를 철회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트럼프와 신임 각료 지명자들은 표현의 자유 보호를 강화하려는 입장을 일관되게 밝히고 있는 점이 흥미롭다. 트럼프에 의해 연방통신위원장(FCC)으로 지명된 브렌든 카(Brenden Carr)는 통신품위법 230조 상 인터넷 콘텐츠의 합법성 여부에 대한 플랫폼의 면책과 플랫폼의 콘텐츠 자율규제에 대해 수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해온 인물이다. 트럼프는 빅테크가 이 조항을 이용해 보수적인 의견을 불공정하게 검열하거나 억제한다고 보고 있다. 결국 트럼프의 표현의 자유 주장은 전통적인 공화당의 보수주의 수호를 위한 빅테크에 대한 압박에 불과, 이를 과연 정부와 빅테크의 개입 제한을 내용으로 하는 일반적인 표현의 자유 확대로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트럼프 2기의 AI 정책과 관련 굳이 규제로 볼 수 있는 부분은 AI 기술, 제품의 중국 등에 대한 수출통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중국이 미 빅테크 기업의 오픈소스를 군사적으로 활용하는 사례 등이 나타남에 따라 미국은 자국의 AI 기술이 군사적으로 활용되는 것을 강력히 통제함으로써 AI 기술을 국가 안보 차원에서 대응할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 2기의 플랫폼 정책의 방향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린다. 표현의 자유 보호 차원에서 플랫폼에 대한 규제를 강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있지만, AI 관련해서는 반독점법 집행을 완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연방거래위원회(FTC) 위원장으로 지명된 앤드류 퍼거슨(Andrew Ferguson)도 빅테크가 경제적 권력을 표현의 자유 억압에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지난 12월 5일 게일 슬레이터(Gail Slater)를 법무부 반독점 차관으로 임명하면서 빅테크는 수년 동안 폭주하면서 가장 혁신적인 부문에서 경쟁을 억제했으며, 시장 지배력을 사용하여 중소기업과 미국인의 권리를 억눌러왔다고 밝힌 바 있다. 결국 트럼프 정부의 플랫폼 정책은 기본적으로 바이든 정부의 반독점 규제 입장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되지만, AI 분야에서는 규제 완화 입장을 취할 것으로 보인다.
데이터 분야에서 미국은 전통적으로 데이터의 국경간 이동의 자유화를 주장해 왔으나, 최근 틱톡 금지법 등 안보를 이유로 하거나 노동자 중심 디지털 통상 정책 반영을 위해 데이터의 국경간 이동을 제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전통적으로 데이터 이동 제한을 주장하던 중국은 지난 11월 발표한 디지털 무역 가이드라인에서 중요한 데이터와 개인정보의 보안을 보장하는 전제에서 국경 간 데이터 흐름을 위한 효율적이고 편리하며 안전한 메커니즘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혀 정책변화를 시사하고 있다. 이제 데이터 이동의 자유화 내지 제한이라는 이분법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자국 보호주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트럼프 2기 정부의 AI 규제 완화와 산업진흥 정책, 플랫폼 규제 관련 강온 전략을 한국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우선 정부는 글로벌 AI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한국 기업들이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도록 기술 역량과 인적자원을 확보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또한 EU와 다른 최소한의 AI 규제를 도입해 기업들의 예측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현재 정부 등이 추진 중인 플랫폼 규제나 망 무임승차 방지법의 대상에 미국 빅테크가 포함되는 경우 미 정부의 통상 압력이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경우 국내 플랫폼에 역차별적인 규제집행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신중한 법 제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부는 불확실성이 증가할 것으로 보이는 트럼프 2기의 디지털 정책 분야별 영향 요인에 대한 분석과 전망, 한국의 현 상황에 대한 진단과 전략 방안을 적시에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기술법정책센터장 dysylee@korea.ac.kr
고려대 법학과, 서울대 행정대학원, 미국 미네소타대 로스쿨을 졸업한 후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고, 서울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하버드 로스쿨 방문학자를 거쳤다. 1991년 제35회 행정고시 출신으로 정보통신부, 국무조정실과 김앤장 법률사무소를 거쳐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데이터법정책학회장, 한국공법학회 부회장, 플랫폼법정책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고 고려대 기술법정책센터장/데이터·AI법센터 대표를 겸하고 있으며, 국가데이터정책위원회 위원, 개인정보보호위원회 규제심사위원장 및 범정부 마이데이터협의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행정 경험과 법률 실무를 기반으로 행정규제, 방송, 통신, 인터넷, 개인정보, 데이터·AI 분야 법과 정책에 정통한 권위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