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약 ‘오젬픽’, 비만약 ‘위고비’의 주성분인 세마글루타이드가 신장을 보호해 만성신장질환(CKD) 환자들의 사망 위험성을 직접적으로 줄여준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단순히 체중감소로 인한 효과가 아닐뿐만 아니라, 3000명이 넘는 대규모 인원을 대상으로 한 임상결과여서 앞으로의 환자 관리 지침에 변화가 예상된다.
피터 로싱 덴마크 스테노 당뇨병센터 교수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제62회 유럽신장학회(ERA 2025)에서 이같은 임상 결과를 5일(현지시간) 발표했다.
노보노디스크의 주도로 진행된 이번 임상 3상 연구(FLOW)는 CKD와 제2형 당뇨병(T2D)을 동반한 환자 3500여 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평균 추적 관찰 기간은 3.4년이었다. 로싱 교수는 “중간 분석에서 사전 정의된 통계적 유의성을 충족해 조기 종료됐다”고 했다.
CKD는 당뇨환자 중 30~40%에서 나타나며, 전 세계 성인 10명 중 1명이 앓는 비교적 흔한 만성질환이다. 악화되면 투석이나 이식이 필요한 말기 신부전으로 이어지고, 심혈관 질환 및 사망 위험도 크게 높아진다.
그간 치료법으론 △신장 내 혈류역학을 조절하는 레닌-안지오텐신계(RAS) 억제제 △신장의 나트륨 재흡수를 억제해 사구체압을 낮추는 SGLT2 억제제 △염증과 섬유화를 줄이는 미네랄코르티코이드 수용체 길항제(MRA)가 쓰였다. 하지만 이들 약물만으로는 사망률이나 심부전 위험을 충분히 낮추기 어려운 한계가 있었다.
GLP-1 수용체 작용제(세마글루타이드)는 본래 혈당 조절을 목적으로 개발됐다. 하지만 체중 감량, 혈압 조절, 염증 억제, 혈관 기능 개선 등 다양한 전신적 작용으로 신장 및 심혈관계 보호 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FLOW 연구는 이 가능성을 전향적 임상으로 입증한 첫 사례라는 평가가 나온다.
연구에 따르면 세마글루타이드를 주 1회 1㎎씩 투여한 환자군은 위약군에 비해 전체 사망률이 12.8%로 20% 낮았고(위험비 0.80, p=0.01), 심혈관계 주요 사건(MACE) 발생률은 18% 감소했다(위험비 0.82, p=0.029).
신장기능이 저하되는 속도도 세마글루타이드 투여군이 위약군에 비해 현저히 늦은 것으로 나타났다. 신장이 혈액 속 노폐물을 얼마나 잘 걸러내는지 나타내는 지표인 eGFR 비교에서 세마글루타이드가 위약군에 비해 신장 기능 저하 속도를 약 33% 늦췄다.
안전성 측면에서도 큰 문제는 발견되지 않았다. 중대한 이상반응 발생률은 위약군(53.8%)보다 세마글루타이드군(49.6%)에서 낮았고, 치료 중단률 역시 유사한 수준이었다. 세마글루타이드의 신장 보호 효과는 기존 SGLT2 억제제 병용 여부와 관계없이 일관되게 나타났으며, 심부전 병력이 있는 환자에서도 유효성이 유지됐다.
GLP-1 작용제의 신장 보호 효과가 단순히 체중 감소 효과로 인한 2차 효과가 아니라는 사실도 확인됐다. 연구진은 FLOW 연구에서 당뇨병 치료용 저용량(1㎎/주)을 투약했으며, 평균 체중 감소는 약 4.5㎏에 불과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체중 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는 시스타틴C 기반의 eGFR 분석에서도 동일한 수준의 신장 보호 효과가 확인됐다. 세마글루타이드의 효과가 단순한 체중 감량이 아닌, 신장 조직에 대한 직접적 작용 또는 항염증 기전에 의한 것일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로싱 교수는 “FLOW 연구는 GLP-1 계열이 단순한 혈당 강하제를 넘어 CKD 환자의 생존율, 신장 기능, 심혈관질환 리스크까지 동시에 개선할 수 있음을 입증한 연구”라며 “앞으로 SGLT2 억제제, MRA 등 기존 약제와 더불어 GLP-1RA가 표준 치료 옵션으로 포함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다”고 강조했다.
세마글루타이드는 비만뿐 아니라 심부전, 중추신경계질환, 근감소증 등으로 적응증 확대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당뇨환자들의 사망률을 높이는 만성신장질환에서도 효능을 입증하면서 향후 치료 지침 개정, 급여 확대 등의 논의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이우상 기자 i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