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과 권력, 빛과 어둠을 화폭에 담아낸 서양의 거장들, 그리고 묵묵히 판화의 길을 걸어온 국내 대가까지. 서로 다른 시대와 배경을 지닌 이들이 걸어온 치열한 예술의 궤적을 다루는 전시들이 동시대 관객을 만나고 있다. 이번 회고전들은 관람객들에게 예술 그 자체를 넘어 시대를 통찰하는 메시지를 전한다.
《렘브란트에서 고야까지: 톨레도 미술관 명작》展
한국에서 만나는 美 톨레도 미술관의 작품들
16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서양 미술사의 중추로서 유럽 주요 지역에서 활동한 화가 렘브란트, 고야, 다비드, 터너…. 이름만으로 유럽 회화의 역사를 대표하는 거장들의 작품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렘브란트에서 고야까지: 톨레도 미술관 명작》展이 바로 그것. 오는 7월 4일까지 더현대 서울 ALT.1 미술관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톨레도 미술관’의 마스터피스를 대한민국 관객을 위해 최초로 엄선하여 선보이고 있다.
전시는 총 6개의 섹션으로 구성됐다. 먼저 △1부 회화와 권력, △2부 신화와 기억: 1600년대에서 1700년대, △3부 예술의 비즈니스: 1600년대에서 1700년대, △4부 삶을 비추는 아름다움의 시선: 1600년대에서 1700년대까지, △5부 자연의 포착: 1600년대에서 1800년대까지, △6부 세계 속의 유럽 미술: 1600년대에서 1800년대까지로 이어진다. 전시는 3세기에 걸친 유럽 미술사의 장대한 서사를 총망라하고, 각 사조를 대표하는 52점의 유럽 회화 원화를 통해 세계적 수준의 예술적 경쟁력과 깊이 있는 통찰을 선사한다. 렘브란트 판 레인의 ‘깃털 모자를 쓴 청년’, 자크 루이 다비드의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의 ‘까막잡기 놀이’ 등 주요 작품을 통해 유럽 초상화와 역사화의 진수를 확인할 수 있다.
권력과 비즈니스로서의 예술, 삶을 투영한 예술
《렘브란트에서 고야까지: 톨레도 미술관 명작》展은 거장들의 작품을 ‘황금시대의 거장들’이라는 테마 아래 신화와 고전, 자연의 재현, 일상의 아름다움 등 다양한 주제로 탐구하며, 관람객이 작품을 세밀히 관찰하고 사유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이 밖에도 ‘다문화주의’, ‘후원자’, ‘세계적 교류’, ‘예술 시장’ 등을 광의의 사회적 맥락으로 함께 다루며, 회화가 유럽 미술사에서 수행한 핵심적 역할을 보여준다.
일례로, 르네상스부터 19세기까지 유럽에서 ‘예술 후원’은 권위를 강화하고, 대중과 소통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예술가들은 개인적 안정과 직업적 성공을 위해 상류층 후원자들과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구축했다. 자크 루이 다비드의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 앙투안 장 그로의 ‘아일라우 전장의 나폴레옹’ 같은 역사화는 직접적인 정치 선전의 성격을 띠는가 하면, 엘리자베트–루이즈 비제-르브룅, 앤서니 반 다이크 등 궁정 공식 초상화가들은 절제된 초상으로 사회적 권력을 표현하기도 했다(-‘1부: 회화와 권력’ 세션 中).
고대의 신화는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요소이기도 했다. 고대 로마를 창조적 원천으로 삼은 15~16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 예술가들은 고전 유산의 부활을 이끌었다. 이 전통이 이어진 이후 두 세기 동안, 이탈리아는 ‘그랜드 투어(Grand Tour)’의 중심지로서 유럽 예술가와 엘리트들에게 고전적 영감을 제공했다 (-‘2부: 신화와 기억’ 中).
고전적 미를 중시했던 예술은 17세기에 이르러, 극적인 명암과 사실주의로 정서적 몰입을 끌어냈다. 절제된 색조와 일상적 소재를 통한 현실의 생생한 아름다움을 전하는 작품들을 중시했다. 후세페 데 리베라와 헤라르트 테르 보르흐의 초상화와 풍속화는 사회 계층을 막론하고 평범한 삶 속에서 발견되는 아름다움을 포착, 폭넓은 수요층을 형성했다. 이 밖에도 그 당시 작품에는 자연스러운 미에 대한 선호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흐름이 나타났다(-‘4부: 삶을 비추는 아름다운 시선).
이처럼 이번 전시에선 거장들의 명작들을 통해 유럽 미술의 양식적 변화와 역사적 서사를 아우르는 포괄적인 통찰을 제공한다.
※ 톨레도 미술관 1901년 설립된 톨레도 미술관(Toledo Museum of Art, TMA)은 미국 오하이오주를 대표하는 문화 기관이다. 유리 산업가 에드워드 드러먼드 리비의 후원으로 탄생해 미국 최고 수준의 공공 미술관으로 자리매김한 이곳은 이탈리아, 네덜란드, 프랑스, 스페인, 영국, 벨기에 등 유럽 전역을 망라하는 거장들의 명작 3만 점 이상을 소장하고 있다.
《렘브란트에서 고야까지: 톨레도 미술관 명작》 展
기간: ~2026년 7월 4일(토)
장소: 더현대 서울 ALT.1 미술관
시간: 평일(월~목요일) 10:30~20:00, 주말(금~일요일) 10:30~20:30
《스페인의 거장 고야:이성이 잠들 때, 괴물이 깨어난다》展
근대 미술의 선구자, 고야의 궤적을 따라가다
앞서 유럽의 거장들을 통해 유럽 미술사의 흐름을 살펴봤다면, 한 예술가의 일생 전반에 걸친 명작을 통해 시대를 초월하는 메시지를 통찰하는 전시도 만나볼 수 있다. 천재 화가의 양면성과 예술적 고뇌를 지닌 프란시스코 고야의 전시다.
《스페인의 거장 고야: 이성이 잠들 때, 괴물이 깨어난다》展은 세계적인 거장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Goya, 1746~1828)의 일생을 단독 조망하는 전시이다. “근대 미술은 고야로부터 시작되었다”(-리오넬리 벤투리)라는 말처럼, 프란시스코 고야는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 격변의 시대를 증언한 목격자이자, 권위와 위선을 가장 날카롭게 응시한 비판자였다. 이번 전시는 빛과 어둠, 이성과 광기, 이상과 현실의 경계 위에 서 있었던 고야의 두 얼굴을 살펴보고, 그가 화려한 궁정화가에서 ‘어둠의 화가’로 미술사에 남기까지 그 변화의 궤적을 따라간다.
시대의 부조리와 맞서 싸운 예술
《스페인의 거장 고야: 이성이 잠들 때, 괴물이 깨어난다》展은 총 6개의 섹션으로 구성돼 있다. △섹션1 빛과 그림자의 초상을 시작으로, △섹션2 스페인의 궁정화가, 고야, △섹션3 빛에서 어둠으로, △섹션4 변덕(카프리초스), △섹션5 귀머거리의 집, △섹션6 어둠에서 빛으로 – 끝나지 않은 고야의 시대로 이어진다.
이번 전시에선 문제의 화제작들도 공개된다. ‘로스 카프리초스(Los Caprichos)’ 원작 판화 세트 80점이 한국 최초로 선보이는 것. 이 판화들은 18세기 말, ‘중세적 사고’에 묶여 있던 당시의 스페인 사회의 부패, 무지, 위선을 담은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또한 ‘섹션5 귀머거리의 집’ 연출을 통해서는, 말년에 청력을 완전히 상실한 뒤 마드리드에 위치한 ‘귀머거리의 집(Quinta del Sordo킨타 델 소르도)’에서 은둔하며 공포와 절망, 침묵 속에서 ‘검은 그림들’(Black Paintings, 인간 존재의 어두운 심연을 담은 고야의 연작 작품. 어두운 색조가 특징) 제작에 몰두했던 고야의 모습을 보여준다.
고야는 당시 페르난도 7세의 억압 통치로 불안정했던 스페인의 낱낱을 해부한 예술적 비판과 풍자, 나아가 인간의 욕망과 광기를 극적으로 시각화해 성찰과 계몽을 촉구했다. 그가 그린 왕실과 귀족의 초상에는 빛나는 권력과 함께 균열이 서서히 포착된다. 또 인간의 이성이 무너진 자리에는 괴물들이 태어나 적나라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고야는 자신의 시대를 거스르며, 아직 도래하지 않은 언어로 그림을 그렸다. 또한 병마 앞에서도 인간 존재의 심연을 탐구한 그의 작품은 새로운 깊이와 풍부함을 담고 있다.
《스페인의 거장 고야: 이성이 잠들 때, 괴물이 깨어난다》展
기간: 2026년 6월 26일(금)~9월 30일(수)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7전시실
시간: 화~일요일 10:00~19:00(*월요일 휴관)
김상유 100주년 전시 《쉽게 닳지 않는 사람》展
자극의 시대, 무해함의 미학을 전하다
세계 미술사의 거장들뿐만 아니라 한국 거장의 예술 세계를 총망라하는 전시도 우리 곁으로 찾아왔다. 서울미술관은 2026년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는 김상유의 생애와 예술 세계를 다룬 《쉽게 닳지 않는 사람》展을 오는 8월 17일까지 선보인다.
끝없는 자극과 정보로 가득 차 있는 현대 사회. ‘디지털 디톡스’, ‘도파민 줄이기’ 같은 해결책마저도 유행이 되어버린 시대 속에서 자기 자신의 중심을 지켜 나가는 일은 중요해지고 있다. 서울미술관 2026년 기획전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한 가지 답으로, 한국 근현대 화가 김상유를 조명한다. 한국 최초로 동판화를 시도하며 한국 현대 판화사의 지평을 연 김상유는, 1960년대 초 추상을 표현하고자 한 독자적 실험과 그 결과로 화단의 주목을 받았다. 세상의 조명과는 반대로 그는 평생 외부 자극을 차단하고, 자기만의 리듬으로 작업하며 예술 세계를 천천히 쌓아왔다. 동판화, 목판화, 유화를 넘나들며 명상과 침잠을 작품의 핵심으로 삼아, 화면 속 고요와 멈춤을 시각화했다.
전시 《쉽게 닳지 않는 사람》展은, 자극이 넘치는 시대에 중심을 지키며 오래도록 지속되는 힘을 시사한다. 관람객은 천천히, 하지만 견고하게 쌓아 올린 김상유의 작품들을 마주하며 ‘무해한 힘’을 느끼고 자기 자신을 돌아보며 삶의 중심을 세우는 경험을 할 수 있다. 한 작가가 평생을 바쳐 구축한 예술 세계를 한눈에 조망해보도록 하자.
잊혀진 이름, 다시 빛나는 예술
김상유는 한국 최초로 동판화를 시도한 데 이어 목판화와 유화로 영역을 확장하며 자신만의 독자적인 조형 언어를 구축한 작가다. 《쉽게 닳지 않는 사람》展은 800평 규모의 서울미술관 제1전시실에서 초기 동판화의 비정형 실험에서부터 한국적 정서와 전통적 미감이 자리한 판각, 그리고 ‘무위자연’을 구현한 유화까지 150점이 넘는 작품을 연대기적으로 선보인다. 더불어 그간 공개되지 않았던 유족 소장 작품을 포함해, 1990년 제2회 이중섭미술상 수상 직후 열린 생애 회고전보다 더 큰 규모로 관객을 맞이한다.
총 6장으로 구성된 전시에서는 김상유의 동판화·목판화·유화를 초기·중기·후기로 나누었다. 작품과 함께 작가의 예술도구, 유품, 전시 도록, 생전 신문 기사 등이 함께 배치돼 있어 그의 삶과 예술 세계를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김상유의 예술 세계뿐 아니라, 그 세계를 지켜온 세 명의 후견인, 김용원·박주환·이우복도 함께 조명했다는 점이다. 대한민국 1세대 컬렉터이자 미술애호가인 이들은, 작가의 창작 활동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격려하며 재정적·사회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현대에 이르러, 세상에서 잊혀져 가던 작가 김상유가 다시금 대중의 주목을 받는 일이 있었다. 지난 2022년, 그룹 BTS의 RM(김남준)이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직접 구매한 작품 ‘대산루’를 공개하면서 작품명과 작가의 이름이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는 등 큰 화제를 모은 것. 이번 전시에서는 김상유의 대표작 ‘대산루’ 시리즈 중 2점이 출품되어 관람객들에게 그의 절제된 미감과 단정한 조형 언어를 선보이는 동시에, 김상유가 ‘대산루’를 작업하게 된 배경에도 주목한다.
시력 저하, 그리고 어깨를 짓누르는 통증에도 멈추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로 깊이 침잠한 존재. 김상유의 세계가 다시 한번 세상 위로 떠 올라 관객을 찾는다.
김상유 탄생 100주년 기념전 《쉽게 닳지 않는 사람》展
기간: ~2026년 8월 17일(월)
장소: 서울미술관 본관 M1 제1전시실
시간: 수~일요일 10:00~18:00(*월, 화요일 휴관)
[글 매경 시티라이프부 이승연 기자lee.seungyeon@mk.co.kr][사진 각 미술관 및 제작사 제공]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1032호(26.06.02)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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