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코딩 어시스턴트 ‘커서’를 개발한 미국 AI 스타트업 애니스피어가 이달 초 9억달러(약 1조200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하며 기업 가치가 99억달러(약 13조7000억원)로 평가받고 있다. 설립 3년 만에 이룬 성과로, 자체 개발한 AI 모델 없이 AI 서비스를 제공하는 ‘AI래퍼(Wrapper)’ 기업의 성장 가능성을 입증했다는 평가다.
AI 생태계는 크게 인프라와 모델 그리고 AI래퍼가 속한 앱(응용) 서비스로 구성된다. AI래퍼란 대규모언어모델(LLM)인 챗GPT, 제미나이 같은 외부 AI 모델을 불러오고, 그 위에 고객을 위한 기능을 결합해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는 AI 서비스다. 자신들만의 특화된 서비스로 기존 AI 모델을 ‘감쌌다(wrap)’는 의미에서 래퍼로 불린다. 예컨대 사용자가 AI 모델에 연구 논문을 검색하면 인용 시 자동으로 각주를 달아준다거나 하는 서비스다.
대표적 AI래퍼로 퍼플렉시티를 들 수 있다. 챗GPT, 제미나이 등 외부 AI 모델을 호출해 자체 검색, 문서 요약, 데이터 시각화 기능을 접목한 AI 검색 엔진 서비스다. ‘PDF.ai’도 AI래퍼 기업으로서 성장 중이다. PDF 문서를 업로드하면 요약뿐만 아니라 사용자가 마치 대화하듯 자유롭게 질문을 던지면 그에 맞춰 PDF 문서를 처리, 분석해준다. 연매출이 2023년 30만달러(약 4억원)에서 지난해 60만달러로 두 배로 늘었다.
AI 스타트업 관계자는 “고객으로선 AI 모델명보다는 자신들이 원하는 기능이 실제로 잘 작동하느냐가 중요하다”며 “AI래퍼는 이 수요에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라고 말했다. 최병호 고려대 인공지능 연구소 교수는 AI래퍼를 ‘킬러서비스’라고 부르며 “AI래퍼 기업의 성장은 AI산업 전체의 성장에 긍정적 신호”라고 했다.
국내에서도 래퍼 전략을 채택한 AI 스타트업이 늘고 있다. 생성형 AI 콘텐츠 작성 도구를 제공하는 뤼튼테크놀로지스는 외부 AI 모델 위에 글쓰기 전용 인터페이스를 적용하는 등 에디터 중심 AI 플랫폼으로 성장 중이다. 올 3월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발표에 따르면 현재 국내 생성 AI 스타트업 열 곳 중 여섯 곳이 오픈소스 모델을 기반으로 자체 서비스를 개발 중이다.
최영총 기자 Young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