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지 않는 사람들/나오미 배런 지음·전병근 옮김/412쪽·2만2000원·웅진지식하우스
기업 채용도 다르지 않다. 2024년 기업 리더 대상 설문조사에선 절반가량이 채용에 AI를 활용하고 있었다. 상당수는 AI가 인간의 개입 없이 지원자를 탈락시키도록 맡기고 있었다. AI가 작성한 자기소개서를 또 다른 AI가 읽고 평가하는 시대다.
미 아메리칸대 언어학 명예교수인 저자는 이러한 사례를 통해 인간이 가장 중요한 능력 가운데 하나인 ‘읽기’를 AI에 “외주화”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요즘 AI 시대의 읽기를 다룬 책은 적지 않다. 그럼에도 이 책은 읽기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인간의 손을 떠나고 있는지를 구체적인 사례들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새삼 서늘하다.
2024년 5월 출시된 구글의 AI 개요(AI Overview)에 “미국에 무슬림 대통령이 몇 명 있었나?”라고 묻자 “미국에는 무슬림 대통령이 한 명 있었는데, 버락 후세인 오바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명백한 오류다. AI는 ‘버락 후세인 오바마: 미국의 첫 무슬림 대통령?’이란 제목의 학술서를 근거로 삼았지만, 제목 끝의 물음표를 읽지 못했다.실제 책을 읽었다면 오바마가 무슬림이란 주장이 그 책에 전혀 담겨 있지 않다는 사실을 바로 알 수 있다. 하지만 AI는 맥락보다 단편적인 정보를 우선하고, 그 결과 읽기를 가장한 오독을 만들어낸다.
문학 읽기의 힘을 보여주는 연구도 흥미롭다. ‘해리 포터’ 시리즈를 활용한 연구에선 주인공 해리에게 자신을 동일시한 독자일수록 이민자와 난민, 성소수자 등 사회적 소수자를 향한 편견이 낮아졌다. 그리고 그 변화는 실제 행동으로도 이어졌다. 만약 AI가 정리한 ‘해리=영웅, 볼드모트=악당’ 수준의 요약만 읽었다면 이런 공감이 가능했을까. 읽기는 줄거리를 이해하는 행위가 아니라 타인의 삶을 통과해보는 경험이란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뭣보다 인상적인 건 폴란드 화가 유제프 차프스키의 이야기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 포로수용소에 갇혔던 그는 굶주림과 강제노동에도 동료들의 정신을 지탱하기 위해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주제로 강연을 이어갔다. 훗날 이 강연은 ‘무너지지 않기 위하여’란 얇은 책으로 남았다. 영어판 기준 56쪽에 불과하지만, 이 책은 결코 프루스트의 줄거리 요약이 아니다. 차프스키는 자신의 사유와 해석을 덧입혀 하나의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냈다.
결국 저자가 주장하는 건 단순히 “책을 읽자”는 권유가 아니다. 읽기를 AI에 넘긴다는 건 그저 한 단계를 생략하는 게 아니다. 의미를 구성하고 판단에 이르는 사고의 과정 전체를 외주화하는 일이다. 읽기를 잃으면 판단도 함께 잃게 된다. AI가 무엇이든 대신 읽어주는 시대일수록, 우리가 끝까지 붙잡아야 할 건 읽기 자체가 아니라 ‘읽으며 생각하는 능력’이다. AI는 소설을 요약할 순 있어도 차프스키를 만들어낼 수는 없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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