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부터 2014년까지 12년 동안 전국전력노동조합 위원장을 역임하고 22대 전반기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여당 간사로 활동했던 김주영 의원은 “AI시대엔 발전설비 확충만이 아니라 전력망, 저장장치, 수요관리까지 함께 설계하는 ‘통합 에너지 인프라 국가 전략’이 필요하다”며 한국전력공사를 중심으로 한 통합형 전력산업 구조 개편을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김 의원은 “전력산업은 통합적 운영을 할 때 가장 효율적이다”며 “전기요금 결정 구조를 투명하게 개선하고 AI 시대를 뒷받침하는 송전망 확충과 계통 안정성을 위한 제도 개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아일보는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김 의원과 인터뷰를 가졌다. 다음은 일문일답.

―책 ‘AI시대 전력산업의 미래와 한국의 전력산업 구조개편’은 어떻게 나왔나.
“오랫동안 전력산업의 바람직한 발전 방향을 고민해왔다. AI 시대에 전력산업은 가장 중요한 핵심 전략산업이 됐는데, 글로벌 시장에서 새로운 K-전력을 선도하기 위한 바람직한 구조개편 방향을 제시하고자 했다. 그래서 대구대 안현효 교수, 그리고 2003~2004년 노사정위원회 배전분할 공동연구단에서 함께 뛰었던 최용혁 전 전력노조 정책국장과 셋이 힘을 모았다. 2001년 발전분할과 2004년 배전분할 중단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누가 이익을 보고 누가 비용을 지는가 하는 정치경제학적 시각과 안정성·경제성·환경성·형평성이라는 네 가지 가치의 균형이라는 틀로 다시 짚어봤다. 결국 전력산업이 잘 돼야 우리 첨단산업들도 잘 성장할 수 있다. 과거를 평가하는 데 그치지 않고, 마침 정부도 발전공기업 통합을 검토하는 지금 이 시점에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정책제안서로서 대한민국 전력산업을 다시 한 번 되짚어보고 바람직한 방향을 담았다.”
―2001년 한국전력을 발전 5개사와 전력거래소 등으로 분할한 지 25년이 지났다.
“25년 전 전력산업 구조개편은 IMF 외환위기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추진됐다. 당시엔 경쟁과 효율성이 시대정신이었고, 영국식 자유화 모델을 그대로 들여오려 했다. 하지만 영국은 대처 정부의 이념적 신념에 더해 북해 유전이라는 특수한 조건이 있었던 나라다. 에너지 자원이 거의 없어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와는 애초에 전제 자체가 달랐다. 그러니 전력산업의 특수성 때문에 경쟁을 통한 효율성 향상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미국 캘리포니아는 자유화 이후 도매가격이 수십 배까지 폭등하고 대규모 정전까지 겪었다. 지금은 AI, 반도체, 데이터센터, 탄소중립, 에너지 안보라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과거의 구조를 그대로 유지해서는 미래를 준비할 수 없다. ‘어떻게 경쟁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국가 전력시스템을 가장 효율적으로 운영할 것인가’가 핵심이다.”
―노조위원장 시절 발전·배전 분할에 반대했었는데 결국 2004년에 중단 결정을 이끌어냈다.
“전력 노동자들의 분노가 저를 뒷받침해줬다. 당시 40대였던 저는 배전 분할과 민영화를 막겠다고 기치를 들었는데, 2003년 노사정위원회 산하에 공동연구단을 꾸려 9개월간 69차례 회의를 하고 미국·영국·브라질 등 9개국을 직접 찾아가 실사했다. 자유화 이후 도매가격이 폭등한 캘리포니아, 민영 발전사들이 투자를 기피해 전기 배급제까지 실시했던 브라질을 두 눈으로 확인하면서 ‘이대로 배전까지 쪼개면 안 되겠다’는 확신이 쌓였다. 그렇게 조금씩 투쟁에 동참하는 이들이 늘고 근거가 되는 연구도 쌓이면서 2004년 중단 결정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정부가 추진해온 배전부문 분할을 중단시키고 나아가 분할된 발전회사의 민영화 추진을 실질적으로 중단시킬 수 있었던 결정은 아주 애국적인 결정이었다고 자부한다. 국가 정책이 노조의 저항으로 중단된 사례였기에 당시엔 ‘개혁의 후퇴’라는 평가도 있었다. 그러나 오히려 그 덕분에 오늘날 고품질의 전기를 필요로 하는 반도체·데이터센터 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고 본다. 우리나라가 세계적 품질의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었던 이면에는 수많은 전력 노동자들의 희생이 있었다는 점도 꼭 이야기하고 싶다.”
“‘분할은 되었지만 경쟁은 없는 기형적 구조’라고 평가한다. 전력산업에서 발전연료비는 전기요금 원가의 80% 이상을 차지한다. 발전 경쟁은 각 회사가 최대한 싸게 연료를 도입할 수 있을 때 성립하는데, 화석연료 거의 전부를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애초에 의미가 없는 경쟁이다. 오히려 분할 이후 회사마다 연료를 따로 사다 보니 협상력이 떨어졌고, 통합구매로 되돌리면 연간 수천억 원을 아낄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이미 나와 있다. 처음부터 잘못 설계된 시장이었던 셈이다. 게다가 도매가격은 국제 연료가격에 연동해 시장에서 결정되는데 소매요금은 정부가 정치적으로 묶어두는 이중구조 때문에, 국제 에너지 가격이 폭등한 2021년부터 2023년까지 한전이 3년 동안 48조 원 넘는 적자를 냈다. 이건 특정 경영진의 잘못이 아니라 처음부터 구조가 예고한 결과였다. 경쟁 효과는 없는 반면 관리조직 중복, 거래비용의 증가 등 비효율만 커졌다. 경쟁을 위한 경쟁 구조에 불과했다. 요금 체계 개편 등 전력산업 구조의 대변혁이 필요한 이유다.”

―AI, 데이터센터, 반도체 산업의 급성장으로 전력수요가 크게 증가할 것으로 보이는데…
“전력이 곧 국가경쟁력이다. 반도체 공장 하나가 도시 하나만큼 전력을 소비하고, 데이터센터는 24시간 안정적인 전력을 필요로 한다. 이를 위해서는 효과 없는 경쟁으로 비효율만 커진 전력산업의 재구조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실제로 세계적으로도 시장 논리만으로는 안 된다는 게 확인되고 있다. 영국은 민영화 이후 요금이 오히려 오르고 에너지 빈곤층이 늘면서 다시 규제를 강화하고 있고, 프랑스는 2022년 국영 전력회사인 EDF를 아예 재국유화했다.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전력 공급 체계로 산업 구조를 혁신해야 한다. 복잡한 전력 거래 제도부터 우선 바꿔야 한다. 지금처럼 발전·송전·배전·판매가 따로 움직이는 구조보다 통합적 계획과 신속한 투자 체계가 훨씬 중요하다. AI 시대에는 분절보다 통합이 경쟁력이다.”
―24시간 안정적인 전력 확보를 위해서는 설비 확충 문제도 있어보인다.
“매우 어려운 문제다. 에너지저장장치(ESS, Energy Storage System)나 배터리에너지저장시스템(BESS, Battery Energy Storage System), 양수발전소 등에 추가로 투자해 전력을 저장할 수 있는 설비를 늘려야 하는데 비용이 상당히 많이 든다. 최근엔 태양광이 몰리는 한낮에 순간적으로 전력이 남아도는 이른바 ‘덕 커브’ 현상까지 나타나면서, 발전 설비만이 아니라 저장과 수요관리까지 함께 설계하는 유연성 확보가 관건이 됐다. 송변전 설비 건설에도 막대한 투자가 필요하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처럼 송전망을 지하로 구축하면 지상보다 최소 10~15배 비용이 더 드는데, 지금의 요금 체계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다.”
―전기요금 체계 개편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가.
“콩값보다 싼 두부 공장이 유지가 되겠나. 전기는 생산에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최고급 에너지인데 요금이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국가 차원의 에너지 소비를 심각하게 왜곡시키고 있다. 또 한전이 구입하는 도매요금은 국제 연료가격에 따라 실시간으로 출렁이는데 소매요금만 정치적으로 묶여 있으니, 가격이 뛰면 그 부담이 고스란히 한전 적자로, 결국 국가 재정 부담으로 되돌아온다. 적정 요금을 위한 합리적인 방안을 찾아야 한다. 전기요금은 단순히 올리거나 동결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원가와 에너지 안보, 산업 경쟁력, 기후위기 대응, 취약계층 보호를 함께 고려한 종합적인 설계가 필요하다. 다만 모든 국민에게 동일한 인상률을 적용하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 에너지 취약계층과 영세 자영업자에 대해서는 요금 지원을 강화하고, 산업용 요금도 업종과 사용 패턴에 따라 세분화할 필요가 있다. 전기요금 부담을 국민에게만 전가해서는 안 된다. 전력망과 에너지 전환에 필요한 정책성 투자에는 정부 재정이 참여하고, 민자 발전 사업자와 대규모 전력 소비자도 정당한 몫을 부담해야 한다.”
―AI 시대 통합을 강조했는데 정부도 발전공기업 5사 통합 의지를 밝혔다.
“한전이 통합관리를 하면 효율성이 높아질 수 있다. 2011년 9·15 순환정전 때는 발전과 계통운영, 배전이 따로 놀다 보니 권한이 주어지지 않아 사실상 한전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통합이 되면 내부 소통이 원활해지면서 전력산업을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된다. 사고가 발생했을 때 책임 소재가 분명해진다는 장점도 있다. 다만 다섯 회사를 하나로 합치는 데서 끝나서는 안 되고, 통합을 넘어 어떤 거버넌스를 만들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완전히 하나로 합치는 방안부터 원자력·재생에너지 중심으로 한수원과 묶는 방안까지 여러 시나리오가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일본 도쿄전력이나 이탈리아 에넬처럼 지주회사 체제 아래 발전·송배전·신사업 자회사를 두는 모델을 눈여겨보고 있다. 발전과 송전, 계통운영, 재생에너지, 해외사업까지 종합적으로 연결되는 통합 국가에너지 플랫폼으로 전력공기업을 재편해야 한다.”
“한전은 단순히 전기를 판매하는 기관이 아니라 국가전략산업을 책임지는 핵심 기관 역할을 해야 한다. 2010년에 ‘글로벌 톱5 유틸리티’를 목표로 내세웠던 것처럼, 이제는 AI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는 미래형 에너지 플랫폼 기업으로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한다. 원전 수출, 재생에너지 프로젝트, 스마트그리드 기술 수출까지 아우르는 국가대표 에너지 기업, 이른바 내셔널 챔피언으로 다시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한전이 발전·송전·배전·판매를 한데 책임지는 큰 우산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권한과 책임을 부여해야 한다.”
―AI 시대 늘어난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재생에너지와 원전 추진 얘기도 나온다.
“필요하지만 재생에너지와 원자력발전소만으로 탄력적인 수요 대응이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에너지 믹스 측면 뿐만아니라 계절적 수요를 고려한 스윙컨슈머로서 가스터빈 발전소를 병행하거나, 석탄발전소를 폐지하는 대신 다른 발전 설비를 증축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산화탄소 배출은 불가피하기에, 무탄소 전원으로 꼽히는 재생에너지와 원전을 적절히 섞어가야 할 것이다. 다만 재생에너지는 태양광이 몰린 지역과 수요가 많은 수도권이 떨어져 있어 계통이 막히는 문제, 그리고 간헐성 문제를 함께 풀어야 하는 게 관건이고, 원전에 대해서는 불안을 느끼는 국민이 많다. 전력산업은 아직까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오락가락하고 있다. 범정부 차원에서 여야가 함께 지혜를 모아 가장 효율적이고 최적인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할 시기가 됐다. 지금도 이미 너무 늦었다.”
―AI 시대 전력산업 구조개편을 위해 추진하고자 하는 입법은.
“전력산업을 전반적으로 감독하고 규제할 수 있는 법안이 필요하다. 그래서 전기사업법이나 한국전력공사법을 일일이 고치는 대신, 다른 법률에 우선하는 별도의 특별법을 만드는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 발전5개사를 통합하고, 한전은 발전·송전·배전·판매를 아우르는 전력지주회사로 전환하되 국가 지분을 51% 이상으로 법에 못박아 민영화 논란을 차단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전기요금은 금융통화위원회처럼 정치와 분리된 전력규제위원회가 원가에 따라 결정하도록 하고, 취약계층은 에너지바우처로 따로 보호하려 한다. 계통한계가격, 즉 SMP 중심 시장은 원가정산 방식으로 바꾸고, 전력거래소는 재생에너지·저장장치·수요반응을 통합 운영하는 에너지시스템운영자로 격상시켜야 한다. 석탄화력 퇴출 로드맵도 법에 담아 일정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사람이다. 석탄발전소 폐지로 일자리를 잃는 노동자는 재생에너지 사업에 우선 고용·재교육하고, 기후대응기금으로 공정전환 재원을 마련하며, 폐지지역에는 대체산업과 세수 보전을 지원하는 법적 장치가 필요하다. 결국 관건은 분명한 경제적 근거와 2004년 같은 사회적 합의, 정치적 일관성, 요금 개혁의 병행, 그리고 에너지 전환이라는 큰 그림 속에서 이 모든 걸 함께 풀어가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핵심 현안인 송전망 확충과 계통 안정성을 위한 제도 개선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이승우 기자 suwoong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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