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대에도 50대 기억력…‘슈퍼 에이저’의 뇌 조건 [노화설계]

9 hours ago 2

망토를 두른 채 밝게 웃는 고령의 남녀가 힘차게 팔을 뻗고 있는 모습. 나이가 들어도 활력과 자신감을 유지하는 ‘슈퍼 에이저’의 이미지를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게티이미지뱅크

망토를 두른 채 밝게 웃는 고령의 남녀가 힘차게 팔을 뻗고 있는 모습. 나이가 들어도 활력과 자신감을 유지하는 ‘슈퍼 에이저’의 이미지를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게티이미지뱅크
94세에도 또렷한 사고와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는 이길여 가천대학교 총장 사례처럼, 나이가 들어도 인지 기능이 유지되는 ‘슈퍼 에이저’의 뇌 조건이 확인됐다.

슈퍼 에이저는 일반적으로 80세 이상이면서도 50~60대 수준의 기억력을 유지하는 집단을 의미한다. 단순한 유전적 차이가 아니라, 뇌에서 새로운 신경세포를 만들어내는 ‘재생 능력’의 유지가 핵심이라는 분석이다.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에 최근 게재된 연구에 따르면, 슈퍼 에이저의 뇌에서는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 부위에서 새로운 신경세포가 지속적으로 생성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는 약 35만 개에 달하는 개별 세포핵을 정밀 분석한 대규모 데이터 기반 연구로, 뇌의 미세한 변화까지 추적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연구진은 신경세포 생성 과정을 단계별로 분석한 결과, 슈퍼 에이저는 일반 노인보다 미성숙 뉴런(새로 생성된 신경세포)의 수가 약 2배, 알츠하이머 환자보다 최대 2.5배 많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주목할 점은 알츠하이머 환자의 뇌에도 신경 줄기세포 자체는 충분히 존재했다는 점이다. 다만 이 세포들이 성숙한 뉴런으로 자라지 못하고 중간 단계에서 멈춰 있었다.

즉, ‘씨앗’은 남아 있지만 이를 실제 기능으로 키워내는 과정이 멈춰 있는 상태다. 이는 뇌가 손상에 대응해 새로운 세포를 만들어내려는 ‘보상 반응’을 보이지만, 실제 기능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막혀 있는 상태로 해석된다.

● 죽는 세포보다 태어나는 세포가 많다: 뇌의 ‘재생 구조’

이 차이는 단순히 세포가 얼마나 남아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었다.오히려 새로운 세포를 얼마나 만들어내고, 이를 실제 기능으로 연결시키느냐의 문제에 가까웠다.

연구진은 슈퍼 에이저의 뇌에서 ‘회복 탄력성(resilience)’과 관련된 유전자 패턴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는 신경세포가 노화나 외부 자극에도 쉽게 손상되지 않도록 보호하는 일종의 ‘유전적 방패’ 역할을 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즉, 단순히 튼튼한 뇌를 타고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포를 만들고 이를 유지·보호하는 시스템이 함께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 뇌 기능을 유지하게 하는 ‘지속적인 자극’

이길여 총장처럼 고령에도 활발한 사회 활동을 이어가는 사례는 이러한 뇌의 재생 구조와도 무관하지 않을 수 있다.

이길여 가천길재단 회장이 3월 25일 인천 남동구 가천대 길병원 암센터에서 열린 ‘가천이길여길’ 명예도로명 지정 기념 제막식에서 참석자들에게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이길여 가천길재단 회장이 3월 25일 인천 남동구 가천대 길병원 암센터에서 열린 ‘가천이길여길’ 명예도로명 지정 기념 제막식에서 참석자들에게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시스

강의, 경영, 대외 활동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는 과정은 끊임없이 새로운 정보를 처리하고 판단해야 하는 고강도 인지 활동에 해당한다.

이처럼 다양한 자극을 지속적으로 받는 환경은 신경세포의 생성과 연결 유지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전문가들은 뇌 노화를 늦추는 핵심 요소로 ‘지속적인 자극’을 꼽는다.

새로운 것을 배우거나, 사람을 만나고, 신체를 움직이며 다양한 경험을 반복하는 과정 자체가 뇌 기능 유지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기존 연구에서도 학습, 운동, 사회적 활동이 활발한 사람일수록 인지 기능 저하 속도가 느린 경향이 반복적으로 확인돼 왔다.

● “생각도 노화를 만든다”

이 같은 차이는 신체 활동뿐 아니라 인식과 태도에서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미국 오리건 주립대 연구에 따르면 스스로를 늙었다고 인식할수록 스트레스와 통증 수준이 높고, 신체 기능 저하도 더 빠르게 나타나는 경향이 확인됐다.

전문가들은 “마음과 신체는 밀접하게 연결돼 있어, 활동적인 생활과 긍정적인 자기 인식이 함께 작용할 때 노화 속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 같은 흐름은 이번 연구 결과와도 맞닿아 있다. 노화를 단순한 ‘감소’가 아니라 ‘유지 여부’의 문제로 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같은 나이라도 어떤 사람은 기능을 유지하고, 어떤 사람은 빠르게 저하되는 이유가 뇌의 재생 능력 차이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번 연구 역시 관찰 기반 분석으로, 특정 생활 방식이 직접적으로 신경세포 생성을 늘린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이번 연구는 뇌가 멈추는 기관이 아니라, 계속 변화하고 반응하는 구조임을 시사한다. 노화 속도 역시 단순한 나이보다, 뇌의 지속적인 활동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관련 논문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86-026-1016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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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정 기자 phoe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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