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억 그림 팝니다"…130년 금기 깬 베네치아 발칵 [여기는 베네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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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 비공개 전시가 열리는 저택 '팔라초 카 다리오' 입구.

크리스티 비공개 전시가 열리는 저택 '팔라초 카 다리오' 입구.

지난 10일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 옆 골목길. 간판도 없는 평범한 문 하나가 살짝 열려 있었다. 이 문 너머에는 베네치아에서 가장 유명한 흉가 '팔라초 카 다리오'가 있다. 15세기 베네치아 공화국 관료가 지은 이 건물은 연약한 지반 때문에 한쪽으로 눈에 띄게 기울어 있고, 내·외장에 고딕 양식이 가미돼 다소 음산한 느낌을 준다. 게다가 이곳을 거쳐간 집주인들이 잇따라 파산하거나 의문사를 당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흉가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런데 이날 이 집에는 세계 미술시장의 '큰손' VVIP들이 차례로 들락거렸다. 경매사 크리스티가 베네치아비엔날레 기간을 틈타 연 비공개 판매 전시 '고스트 파빌리온'을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이 집 벽에는 앤디 워홀, 루이스 부르주아 등 현대미술 대가부터 에두아르 마네, 티치아노, 윌리엄 터너 등 미술사 거장들의 작품이 걸렸다. 가격대가 최소 7억원에서 최대 700억원에 이르는 작품들이다.

내부 전시 전경.

내부 전시 전경.

운하 쪽에서 바라본 저택.

운하 쪽에서 바라본 저택.

130년에 달하는 베네치아비엔날레 역사를 통틀어 행사 기간 중 경매사가 판매전을 연 건 이번이 처음이다. 비상업성을 표방하는 이 행사에서 작품을 거래하지 않는 건 그간 미술계의 불문율이었다. “베네치아에서 보고 아트바젤이 열리는 스위스 바젤에서 사라”는 말이 있었던 이유다. 하지만 최근 들어 비엔날레 기간 동안 대놓고 작품을 거래하는 사례가 급증했다는 게 미술계 얘기다.

불문율이 깨진 데는 최근 전시 비용이 오른 영향이 컸다. 비엔날레의 한정된 예산으로는 전시에 나오는 작품들의 제작·운송·설치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 그래서 최근 비엔날레 전시 비용은 대개 갤러리들이 댄다. 마크 글림처 페이스갤러리 대표는 미술 전문 매체 아트뉴스페이퍼에 “전시 비용을 회수하려면 작품을 판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정부가 지난해 7월부터 미술품 판매·수입 부가세를 22%에서 5%로 일괄 인하한 것도 간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프랑스(5.5%), 독일(7%)보다 낮은 유럽연합(EU) 최저 수준 세율이다.

이에 따라 경매사들은 이번 비엔날레에서 적극적으로 작품 판매에 나서고 있다. 크리스티는 판매전을 열었고, 소더비는 올해 VVIP 회원을 대상으로 비공개 관람 및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 등 주요 미술관에서 조찬·만찬 서비스를 제공했다. 아드리안 메이어 크리스티 프라이빗세일 총괄은 "아트바젤이 파리에 진출했던 것처럼, 베네치아도 전시와 판매가 양립하는 도시로 진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700억 그림 팝니다"…130년 금기 깬 베네치아 발칵 [여기는 베네치아]

비엔날레 기간 작품 판매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사례는 갈수록 늘고 있다. 팔라초 브라가딘 카라바에서 열리는 미국 출신의 화가 멜 라모스의 회고전은 약 100점 중 대부분이 구매 가능하다. 작품당 가격은 최대 26억원에 이른다. 전시장 안에서는 일반 고객을 대상으로 수백만원 상당의 석판화도 팔고 있다. 알제리계 작가 리디아 우라흐만의 니콜레타 피오루치 재단 전시에서도 작품 일부를 판매 중이다. 미술계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베네치아 비엔날레의 권위는 이전보다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베네치아=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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