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성과급이 더 많겠지만, 그래도 메모리 직원들은 만족하는 분위기예요. 팀이 좋아서 남는다는 사람도 많고요."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을 맡는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 직원 A씨는 지난달 말 노사가 2026년 임금교섭을 마무리한 직후 내부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사업성과의 10.5%를 재원으로 하는 특별경영성과급이 신설되면서 경쟁사로 옮길 매력이 이전만 못해졌다는 얘기였다. 실제로 반도체 인재들이 기존 회사에 눌러앉고 있다는 흐름이 데이터로도 포착됐다.
'무한 이직의 시대' 끝났다?
12일 한경닷컴이 비즈니스 네트워크 서비스 리멤버와 함께 반도체 업계 핵심 기술·사무 인력의 경력 이동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메모리 슈퍼사이클이 본격화한 이후 동종 업계 이직자 수는 반도체 한파가 덮쳤던 2022년보다 약 40%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주가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성과급은 역대급으로 늘면서 굳이 이직을 택할 유인이 사라졌다는 얘기다.
최근 5~6년간 반도체 인력 흐름은 산업의 부침과 궤를 같이하며 요동쳤다. 2020~2021년 팬데믹 시기에는 전 세계적 반도체 공급 부족(쇼티지) 사태와 비대면 정보기술(IT) 호황이 맞물리며 몸값을 높여 옮겨 다니는 '무한 이직의 시대'가 펼쳐졌다. 그러나 2022년 들어 분위기는 정반대로 바뀌었다. 금리 인상과 IT 수요 절벽이 겹친 메모리 다운턴으로 감원과 구조조정, 사업 축소가 이어졌고 미래가 불안해진 인재들이 살길을 찾아 떠나거나 밀려나면서 이동이 가장 많았던 시기로 기록됐다.
타오르던 이직 시장을 식힌 건 인공지능(AI). 2023년 챗GPT발 AI 붐을 기점으로 바닥을 찍은 메모리 시장은 AI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와 맞물려 슈퍼사이클에 올라탔다. 고대역폭메모리(HBM)는 물론 범용 D램과 낸드까지 가격이 뛰면서 역대급 성과급과 주가 상승으로 직원들에게 보상하기 시작했다. 리스크를 안고 모험에 나설 이유가 사라진 인재들이 이젠 짐을 싸는 대신 자리를 지키는 쪽을 택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기에 불을 댕긴 게 SK하이닉스다. 지난해 9월 노사 합의로 성과급 상한을 없애고 매년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 재원으로 못 박았다. 재계에서 이른바 '하이닉스 룰'로 불리는 이 합의로 직원 1인당 평균 1억원 안팎의 성과급이 거론됐다. 삼성전자도 지난달 DS부문 특별경영성과급을 신설하며 뒤를 따랐다. 메모리사업부 기준 기존 초과이익성과급(OPI)을 합치면 1인당 수억원대에 달할 것이란 추산도 나왔다.
SK하이닉스의 경우 슈퍼사이클에 접어든 이후 연평균 이직자 수가 불황기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 것으로 추정됐다. 리멤버 관계자는 "이직 동력 자체가 사라지면서 호황이 만든 '황금 수갑'이 직원들을 자발적으로 묶어두고 있는 것"이라고 짚었다.
'이중고' 스타트업은 어쩌나
다만 호황의 온기가 업계 전체에 고르게 퍼진 것은 아닌 분위기다. 대기업·중견기업·중소기업 이직자 수가 유의미하게 감소하는 동안 반도체 스타트업에서는 정반대 흐름이 나타났다는 게 업계 중론. 기존 인력 유출을 막을 보상 여력이 없는 데다 시장에 나오는 인재 자체가 줄면서 새 인력 수혈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반도체 생태계의 '허리'가 사라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경력 인재를 뽑으면 장비사 인력이 고객사로 빠지고, 장비사는 다시 규모가 작은 로컬 회사에서 사람을 뽑는 먹이사슬 구조"라며 "로컬 회사들은 사람을 키워도 2~3년 뒤 기술이 쌓이면 떠날 거란 걱정을 안고 있다. 결국 반도체 인재가 깔때기처럼 한 곳으로 몰리게 되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인재 공급 자체가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구조도 스타트업의 부담을 키우는 요인이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에 따르면 국내 반도체 산업 인력 수요는 2021년 17만7000명에서 2031년 30만4000명으로 불어날 전망이지만, 직업계고와 대학(원)에서 배출되는 반도체 인력은 연간 5000명 수준에 그친다. 현 추세대로라면 2031년엔 약 5만4000명의 인력이 부족할 것으로 협회는 내다봤다.
이대로라면 한정된 인재풀을 두고 줄다리기가 벌어지는 시장에서 내놓을 보상 카드가 마땅찮은 구조다. 리멤버 관계자는 "규모가 큰 회사들과 비교해 반도체 인재 시장의 유동성이 스타트업에 불리하게 작동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짚었다.
홍민성/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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