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최초 타전한 잭 제임스, 美자택 차고에 있던 유품 한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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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5일 오전, 비가 내리고 있었다. 서울은 늘 우중충한 회색빛 도시였지만 그날은 유독 더 침울해 보였다. 전날 저녁, 북한이 국경에서 군사작전을 계획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 한국에 주재한 10개월 반 동안 그런 소문을 최소 25번은 들었던 터였다. 새벽 1시에 국방부 본부에 전화를 걸었을 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모든 게 조용합니다.’”


6·25 전쟁의 발발을 세계에 처음으로 보도한 미국 종군기자 잭 제임스(1921~2000·사진)는 전쟁 당일 아침을 이렇게 회고했다. 19일부터 서울 종로구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열리는 특별전 ‘6·25 종군기자 잭 제임스’에 전시된 국제문제협의회 연설문 내용이다.

UP통신(현 UPI) 한국 특파원이었던 제임스 기자는 1950년 6월 25일 오전 9시 50분 ‘북한군, 남한 침략’이란 제목의 기사를 본사로 보냈다. 미 대사관이 워싱턴에 타전한 보고보다 더 빨랐다고 한다.

이번 전시는 그의 아들 데이브 제임스 미 라스베이거스 네바다대(UNLV) 교수가 보관하고 있던 유품 25점을 처음으로 외부에 공개하는 것이다. 제임스 기자가 1947~1949년 종군기자로 활동하는 동안 전쟁터에서 입었던 야전상의나 취재원 정보를 적은 수첩 등이 포함됐다. 우리나라 해군 장병들과 함께 음악을 연주하던 모습이 담긴 사진과 당시 불었던 하모니카도 전시됐다.

전쟁이 끝난 뒤 제임스 기자가 ‘아시아재단(The Asia Foundation)’에서 근무하며 쓴 가죽 서류 가방 등도 관람객을 만난다. 그는 이 재단에 근무하며 전쟁으로 황폐화된 한국이 다시 문화적 초석을 놓는데도 공헌한 것으로 평가 받는다. 우리나라 최초의 해외 순회전인 1957년 ‘한국 국보전’이나 경북 경주에 있는 신라시대 사찰 터인 황룡사지 발굴을 지원한 것 등이 대표적이다.

미국 UP 종군기자였던 잭 제임스(왼쪽 사진 맨 오른쪽)가 6·25 전쟁 당시 미군 2명을 인터뷰하는 모습.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제공.

미국 UP 종군기자였던 잭 제임스(왼쪽 사진 맨 오른쪽)가 6·25 전쟁 당시 미군 2명을 인터뷰하는 모습.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제공.
역사박물관 관계자는 “제임스 기자는 1950년 7월 경기 수원에서 포격에 부상당해 기자 생활을 접은 뒤 1958년부터 1960년까지 아시아재단 한국지부장으로 재직했다”며 “해외에 한국의 독자적인 문화를 알리고자 여러 문화 사업을 펼쳤다”고 설명했다. 미국으로 돌아간 뒤에도 그의 한국 문화를 향한 사랑은 각별했다고 한다. 1960년 귀국 길엔 높이 150cm, 무게 300kg에 이르는 17세기 동자석(童子石)을 가져가기도 했다. 데이브 교수는 “서울의 한 공사판에서 동자석을 부셔서 공사 재료로 활용하려고 하자 아버지가 이를 만류했다고 들었다”며 “집 마당에 두고서 돌아가실 때까지 애지중지하셨다”고 전했다. 이번 전시품들은 자칫하면 세상의 빛도 보지 못하고 사라질 뻔했다. 원래 데이브 교수가 한국에 기증하려던 유품은 동자석뿐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현장 조사를 나갔던 강임산 국외소재문화재재단 미국사무소장이 다른 유품들이 있다는 걸 알고 설득 끝에 한국으로 기증을 받을 수 있었다. 당시 퇴임을 앞두고 있던 데이브 교수는 멀리 이사갈 예정이었기 때문에 모두 처분할 생각이었다고 한다.

강 소장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동자석의 취득 경위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데이브 교수의 아버지가 잭 제임스 기자임을 알게 됐다”며 “라스베이거스 자택 차고에 전쟁 현장이 생생히 담긴 기록물이 차곡차곡 쌓여있어 깜짝 놀랐다. 우리 역사의 한 챕터가 담긴 소중한 사료들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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