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기 공포·살인 물가에 ‘탈미국’ 택해
2008년 침체때보다 이주희망 더 늘어
생활비 저렴한 알바니아·멕시코 등지
공교육 환경 우수한 유럽에 영구 이주
미국에서 대공항 이후 처음으로 미국으로 들어오는 사람보다 떠나는 사람이 더 많은 ‘순이동 감소’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일(현지시간) 미국 시민들이 더 안전하고 생활비가 저렴한 국가를 찾아 고국을 등지는 ‘기록적인 엑소더스’가 일어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자 추방 및 신규 비자 제한 정책이 표면적인 이유로 주목받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훨씬 더 근본적이고 조용한 지각 변동이 일고 있다는 분석이다.
과거 미국인들의 해외 이주는 모험심 강한 젊은이나 엘리트, 혹은 여유로운 부유층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하지만 최근 짐을 싸는 이들의 면면은 지극히 평범한 미국인들이다.
이주 컨설팅 업체 익스팻시(Expatsi)에 따르면, 최근 이주민들은 이전과 확연히 다르다. 원격 근무를 하는 중산층 직장인부터 의료비 부담을 줄이려는 건축가와 엔지니어, 값비싼 등록금을 피해 유럽으로 유학을 떠나는 학생들, 노령 연금을 아껴 쓰려는 은퇴자들까지 계층과 세대를 가리지 않고 이민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갤럽에 따르면 2008년 경기 침체 당시 해외 이주를 희망하는 미국인은 10명 중 1명이었으나, 지난해에는 5명 중 1명으로 급증했다. 한 설문에서는 15~44세 미국 여성의 40%가 기회만 된다면 영구적으로 해외로 이주하고 싶다고 답했다.
미국인들이 정든 고국을 떠나는 주된 이유는 일상의 팍팍함과 두려움 때문이다. 경제 지표상으로는 미국이 타 선진국들을 압도하고 있지만, 시민들이 실제 체감하는 삶의 질은 다르다는 분석이다.
미국의 살인적인 주거비와 의료비에 지친 이들은 물가가 저렴한 알바니아, 멕시코 등으로 향한다. 알바니아는 외국 소득에 대해 1년간 세금을 면제해 주는 특별 비자를 제공하며, 한 달 1000달러(약 130만 원)만으로도 풍족한 생활이 가능해 많은 미국인들의 대안이 되고 있다.
아이를 둔 부모들은 5살 유치원생 때부터 ‘총기 난사 대피 훈련’을 받아야 하는 미국의 현실에 절망한다. 총기 범죄에서 비교적 자유롭고 전반적인 공교육 환경이 우수한 유럽이 가족 단위 이주자들에게 강력한 유인책이 되고 있다.
심화되는 정치적 피로감과 양극화도 큰 몫을 차지한다. 일각에서는 최근의 이주 급증을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의 ‘도널드 대시(Donald Dash)’라 부르기도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를 단순한 선거 결과가 아닌 원격 근무의 보편화와 미국 사회 구조에 대한 깊은 환멸이 맞물린 장기적 추세로 분석한다.
미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목적지는 단연 유럽이다. 지난해 독일에 정착한 미국인은 미국으로 향한 독일인보다 많았다. 포르투갈의 미국인 거주자는 팬데믹 이후 무려 500% 이상 폭증했고, 영국 국적 취득 신청과 아일랜드 여권 발급 수치 역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대학생들 사이에서도 영국 스코틀랜드의 명문 세인트 앤드루스 대학은 미국 학생이 너무 많아 ‘미니 난터켓(미국의 대표적 휴양지)’이라 불릴 정도다.
역설적이게도 이민 간 미국인들이 타국에서 여유로운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미국 기업들의 높은 임금과 강달러 기조 덕분이다.
게다가 막강한 달러와 높은 실리콘밸리식 연봉을 앞세운 미국인들의 유입은 현지 지역사회에 짙은 그림자도 드리우고 있다. 포르투갈 리스본, 스페인 바르셀로나, 인도네시아 발리 등지에서는 밀려드는 미국인들로 인해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며 거처를 잃게 된 현지인들이 “디지털 노마드는 집으로 돌아가라”며 시위를 벌이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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