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예술가의 사후에 작품이 더 빛난다. 미술에서는 빈센트 반 고흐가, 음악에선 구스타프 말러(1860~1911)가 그랬다. 고흐의 고국인 네덜란드는 오스트리아 출신 유대인 지휘자인 말러가 작곡가로 활약한 무대다. 암스테르담 공연장인 콘세르트헤바우는 말러 사후인 1920년과 1995년 축제를 열어 그의 음악을 불멸로 만들었다.
2025년 봄 말러 페스티벌이 30년 만에 열렸다. 클래식 음악계가 그 어느 때보다 바란 축제였다. 2020년 열릴 예정이던 축제가 코로나19로 좌절된 적이 있어서다. 이번 축제엔 로열콘세르트헤바우오케스트라(RCO)뿐 아니라 베를린필하모닉, 시카고심포니오케스트라(CSO), 부다페스트페스티벌오케스트라(BPO), NHK심포니오케스트라 등 세계 최고 수준의 악단이 오로지 말러의 곡을 연주하기 위해 몰려들었다. 지난 8~18일 11일간 열린 23번의 공연에 동원된 음악가만 1100명. 축제를 찾은 ‘말러리안’(말러 음악 애호가)은 56개국 5만6000명에 달했다.
137년 역사를 자랑하는 콘세르트헤바우 곳곳엔 말러 기념물이 깔렸다. 말러가 쓴 악보, 말러의 초상화가 그려진 포스터가 벽면을 채웠다. 말러 조각상은 무대 뒤편 복도 한가운데에 자리했다. 시내에도 말러가 가득했다. 운하 곳곳에 놓인 다리와 반고흐미술관 앞 광장에는 축제를 알리는 깃발들이 펄럭였다. 길가에선 말러의 초상화 배지를 재킷에 단 사람들이 서로를 스쳐 지나갔다.
암스테르담국립미술관은 말러의 초상화와 유품을 전시했다. 영화 ‘헤어질 결심’에 나온 말러 교향곡 5번 4악장인 ‘아다지에토’의 선율이 미술관 한편을 채웠다. 시내 공원엔 저녁 공연을 실시간으로 송출하는 스크린이 설치됐다. 시몬 레이닝크 콘세르트헤바우 대표는 “서라운드 마이크를 무대에 둬 공원에서도 홀에 있는 것처럼 몰입형 음향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며 모두가 함께 즐기는 축제임을 강조했다. 클래식 음악 애호가부터 거리의 시민까지 모두 말러리안이 된 세기의 축제에서 관객과 숨결을 함께했다.
말러를 위한 클래식 성찬…암스테르담의 봄은 찬란했다
말러 페스티벌 뜨겁게 달군 오케스트라 명가들
오스트리아 태생인 말러는 암스테르담을 ‘제2의 고향’으로 불렀다. 그를 가장 먼저 인정해준 도시였기 때문이었다. 1860년생인 말러는 전업 작곡가를 꿈꾸며 작곡 대회인 ‘베토벤 상’에 도전했지만 입상에 실패했다. 먹고살기 위해선 지휘자로 일할 수밖에 없었다. .
틈틈이 작곡을 하던 말러의 진가를 알아봐 준 건 네덜란드 음악가 빌럼 멩엘베르흐였다. 1895년부터 50년간 로열콘세르트헤바우오케스트라(RCO) 수석지휘자로 있던 그는 1903년 말러를 암스테르담으로 불러 교향곡 3번을 선보일 기회를 줬다. 멩엘베르흐는 말러가 타계하고 9년 뒤인 1920년 말러 페스티벌을 열어 그의 작품을 죽음에서 소생시켰다. RCO가 공연장으로 쓰는 암스테르담의 콘세르트헤바우가 말러 축제의 장이 된 이유다.
파도처럼 몰려든 말러 교향곡 5번
이번 축제의 핵심은 초청된 악단들이 선사하는 교향곡 공연이었다. 개막일인 8일을 제외한 모든 날에 순차적으로 말러 교향곡 1~10번이 연주됐다. 콘세르트헤바우의 특성을 가장 잘 살린 공연은 지휘자 이반 피셰르와 부다페스트페스티벌오케스트라(BFO)가 선보인 5번이었다.
1악장은 장송행진곡이다. BFO가 시작과 함께 터뜨린 음산한 트럼펫 소리 뒤로 현악이 등장하자 공연장엔 음악의 파도가 감돌았다. 현악 소리는 처음엔 좌석 앞에서 관객을 덮쳤다. 이윽고 벽면에 반사돼 뒤에서 다시 관객을 휘감았다. 바이올린이 사방에서 감싸고, 베이스의 진동이 듣는 이의 발등에 쌓였다. 하프 소리가 빛나던 2악장을 지나 3악장에선 호른의 독백이 성난 파도를 가라앉혔다. 피셰르는 자유롭게 속도를 조절하면서 긴장과 이완을 반복했다. 지루할 틈이 없었다. 이 때문에 오히려 말러 곡 중 가장 인기가 많은 5번 4악장이 밋밋하게 들리기도 했다. 마지막 5악장은 생명이 꽃피는 시간이었다. 바이올린이 힘차게 활질을 하다가 갑작스럽게 속도를 내 음을 뚝 끊어낼 때면 싱그러움이 감돌았다.
천상의 목소리에 관객들도 환호
화제성 면에선 클라우스 메켈레가 RCO와 들려준 교향곡 8번이 압도적이었다. 메켈레는 2027년부터 RCO 수석지휘자를 맡는다. 1·2부로 구성된 말러 교향곡 8번은 합창단을 포함해 1000명 이상이 동원돼 ‘천인 교향곡’이란 이름으로 불린다. 이번 공연에선 콘서트홀 크기에 맞춰 420명 정도로 인원을 조정했다. 성령을 찬미하는 내용의 1부에선 섬세하게 소리를 다듬어나가는 메켈레의 지휘가 두드러졌다. 오르간 밑에서 어린이 합창단이 부르는 소리는 살짝 먼 거리에서 은은하게 퍼지며 천사들이 속삭이는 이미지를 구현했다.
괴테 <파우스트> 마지막 장면을 음악으로 구현한 2부에선 성모 마리아 역할을 한 소프라노가 발코니에서 노래했다. 지상이란 무대를 성모가 위에서 내려다보는 구도가 연출되며 성스러운 존재가 인간을 구원하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RCO의 지칠 줄 모르는 연주와 함께 네덜란드 국립 라디오 합창단, 파리 오케스트라 합창단 등이 마지막 합창을 마치자 관객들이 일제히 기립해 박수를 쳤다.
다른 공연도 저마다의 매력이 가득했다. 야프 판즈베던이 지휘한 시카고심포니오케스트라(CSO)는 교향곡 7번에서 두꺼운 질감을 살려 중후한 음악을 만들었다. NHK심포니오케스트라의 교향곡 4번도 관객들의 기립박수를 이끌어냈다. 교향곡 9·10번과 ‘대지의 노래’를 맡은 베를린 필하모닉은 남다른 응집력으로 무대를 장악했다. 공연장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공원인 본델파크에서 생중계를 지켜본 시민도 박수로 열연에 화답했다. 암스테르담 도심이 말러 음악에 취한 밤이었다.
"어디 앉든 환상적"…말러가 사랑한 무대 콘세르트헤바우
말러 페스티벌의 완성도를 높인 건 공연장으로 쓰인 콘세르트헤바우의 풍부하면서도 꽉 차 있는 음향이었다. 오늘날 이 공연장은 세계 3대 클래식 음악 공연장으로 꼽힌다. 오스트리아 빈의 무지크페어라인, 미국 보스턴의 심포니 홀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놀라운 건 이 콘세르트헤바우가 음향학 이론이 건축에 쓰이기 전인 1888년 지어졌다는 사실이다.
축제가 한창이던 지난 15일 이곳에서 활약하는 로열콘세르트헤바우오케스트라(RCO)의 대표인 도미니크 빈터링을 만나 음향의 비밀을 물어봤다. 콘세르트헤바우에선 관객이 가득 찬 소리의 중심에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렇다고 고음이 귀를 날카롭게 찌르지도 않는다. 이 소리에 대해 빈터링 대표가 내놓은 답은 놀라웠다. 그는 “비용을 아끼려던 실용적 접근과 운이 맞물린 결과”라고 말했다.
빈터링 대표는 “콘세르트헤바우를 지을 땐 암스테르담 시민이 공연장을 갖고 싶다는 마음에 직접 자금을 모아야 했다”며 “예산이 제한되다 보니 저렴한 해결책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후대 학자들은 콘세르트헤바우 음향의 비결로 몇 가지를 추정하고 있다. 하나는 슈박스(신발 상자) 구조다. 길이 44m, 폭 27.5m, 높이 17.5m의 직사각형 상자 구조가 반사음을 자연스럽게 잡아두는 최적의 값이 됐다는 설명이다. 목재 바닥, 석고 벽 등도 따뜻한 잔향에 일조했다.
이런 공연장 특성은 RCO가 섬세한 소리를 만드는 데도 일조했다. “콘세르트헤바우에선 단원들이 소리를 더 세심하게 들어야 하는 상황에 놓여요. 이 홀에선 소리가 잘 어우러지다 보니 연주자들이 서로의 소리를 더 주의 깊게 들어야 하죠. 작은 공간에서 서로의 연주에 더 민감해져야 하는 실내악을 하는 것처럼 집중도가 더 높아져야 해요. 이 집중력이 RCO 특유의 소리를 내게 하는 힘이에요.”
콘세르트헤바우 메인 홀에서 가장 좋은 좌석은 어디일까. “잘 섞인 소리를 듣기 위해선 조금 멀리 앉는 게 좋아요. 전 보통 발코니 첫 번째 줄에 앉아요. 전체 소리가 어우러져 듣기 좋죠. 무대 뒤편 자리도 좋아요. 악단과 가까워 주변 악기 소리가 명확히 들리거든요. 지휘자가 뭘 하는지 세세히 볼 수 있어요. 중요한 건 나쁜 좌석이라고 할 만한 곳이 없다는 겁니다.”
암스테르담=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