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프렌치 레트로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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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년 푸른 뱀의 해가 절반을 향해 가고 있다. 무속인들은 “올해는 성장, 지혜, 번영을 상징하며 새로운 시작과 도전 그리고 지혜로운 판단이 중요하다”고 했다. 60년 전인 1965년 푸른 뱀의 해에 프랑스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1965년 프랑스’를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사진 넉 장이 올라와 있다. 패션 사진 두 장, 음악 사진 한 장이 있고 마지막 한 장은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의 선거운동 사진이다. 프랑스 역사상 문화와 패션이 얼마나 중요한 해인지를 증명한다.

셀린느 2024년 FW 시즌. /Celine

셀린느 2024년 FW 시즌. /Celine

첫 번째 사진은 프랑스 패션 디자이너 앙드레 쿠레주가 1965년 2월 출시한 앙상블 15(L’ensemble 15)이다. 쿠레주는 처음으로 여성 의상에 흰색을 사용했다. 최초로 미래 지향적 소재인 비닐과 인조가죽 등을 활용한 디자이너이기도 했다. 그는 우주복에서 영감을 받은 미니멀한 디자인의 스페이스룩과 미래주의 패션의 거장이 됐다.

이브 생로랑이 디자인한 몬드리안 드레스(Mondrian Dress) /ⓒEric Koch/Anefo

이브 생로랑이 디자인한 몬드리안 드레스(Mondrian Dress) /ⓒEric Koch/Anefo

두 번째 사진은 이브 생로랑이 디자인한 몬드리안 드레스다. 몬드리안 드레스는 목 부분이 둥글고 길이가 무릎까지 내려오는 심플한 원피스로 네덜란드 화가 피터르 몬드리안의 추상화에서 영감을 얻어 수평선, 수직선, 정방형, 장방형 등 기하학적 구성을 살려 표현했다.

가수 프랑수아즈 아르디 /ⓒJean Marie Perier

가수 프랑수아즈 아르디 /ⓒJean Marie Perier

마지막 사진은 프랑스 가수 프랑스 갈이다. 1965년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열린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서 그는 프랑스의 대표 싱어송라이터 세르주 갱스부르가 작곡한 ‘푸페 드 시르, 푸페 드 송(Poupée de cire, poupée de son)’으로 우승하며 세계적인 스타덤에 올랐다.

여성의 법적 지위가 개혁된 1965년

1965년은 프랑스 여성 권리 행사에서 제일 중요한 해이기도 하다. 1804년 나폴레옹 민법에 따라 여성의 법적 지위가 1938년 약간 수정됐지만 여전히 여성은 결혼한 날부터 남편의 보호(?)를 받아야 했다. 남편의 허락 없이는 은행 계좌를 소유할 권리도, 직업을 가질 수도 없었다.

1965년 초 남성 장관으로만 구성된 조르주 퐁피두 국무총리 정부는 여성의 법적 지위 개선에 관해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여론조사 후 여성의 법적 지위 개선 법안이 통과돼 여성도 비로소 자신의 이름으로 은행 계좌를 개설하고, 남편 허락 없이 직업을 선택할 수 있게 됐다. 법적으로 남편이 더 이상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는 시대가 도래한 셈이다.

여성 TV 프로그램 ‘딤담돔’

1960년대 프렌치 레트로가 돌아왔다

1965년부터 1971년까지 방송한 딤담돔(DIM DAM DOM)은 여성을 위한 획기적인 TV 프로그램이다. 여성 잡지 엘르(ELLE) 에디터 데이지 드 갈라르가 제작했다. 딤담돔은 매주 일요일(Dimanches)에 방영됐고 여성(Dammes)을 위한 그러나 남성(D’hommes)도 함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는 의미에서 나온 타이틀이다.

1965년 이전까진 ‘라팜 셰젤(The woman at home)’ ‘푸르 부 마담(For you Madame)’ 같은 오직 여성을 위한 TV 프로그램이 지배적이었다. 여성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가족의 의식주와 아내의 역할 그리고 자녀 교육을 위한 프로그램이었다.

1960년대는 오랜 전쟁과 경제 위기에서 벗어나 삶의 즐거움, 여유, 자유를 추구하는 시대로 접어들게 된 것이다. 편안함보다는 개성을 보여줄 수 있는 옷을 선택하고,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서만 살아가던 여성의 의무와 역할에서 벗어나게 했다.

특히 딤담돔은 단순한 패션 여성 잡지가 아니라 사회문제까지 다루며 여성의 삶과 행복을 생각하게 만드는 중요한 분기점이 됐다.

패션 공식이 뒤집힌 1960년대

파코라반 메탈 드레스 1966. /© Guy Bourdin

파코라반 메탈 드레스 1966. /© Guy Bourdin

1960년대 프랑스는 풍요 시기였다. 집집마다 TV가 보급되고 전기 세탁기와 전기 냉장고 등이 보편화됐다. 유급휴가 정책이 생겨 바캉스 문화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인권 개념이 구체화된 데다 미국에서 비롯된 히피 문화가 프랑스로 번지며 문화적, 정치적, 성적 자유주의가 확산했다.

젊은이들은 ‘예예(YeYe)’ 음악에 맞춰 춤추고, 전쟁과 경제 위기의 어둡고 무거운 과거 대신 해방과 즐거움이 삶의 기조가 됐다. 그 결과 높은 출산율로 이어지고 경제 역시 활황기에 접어들었다.

딤담돔 슈퍼스타인 프랑수아즈 아르디는 샹송뿐만 아니라 여성 잡지의 대표적 패셔니스타로 손꼽힌다. 브리지트 바르도는 1960~1970년대 섹스 심벌로 떠올랐다. 1960년대 이전 여자 배우나 가수와 달리 개성이 뚜렷하고 관습에 얽매이지 않으며 연예계 활동과 사생활을 자신 있게 노출했다.

패션계에도 큰 변화가 나타났다. 히피 문화 때문에 피스&러브(Peace & love)의 플라워 파워로 화려한 꽃과 사이키델릭 패턴이 유행했다. 1960년대 초 영국 디자이너 메리 퀀트를 시작으로 프랑스에서도 1965년 봄여름 컬렉션에 미니스커트가 대표 아이템으로 등극하며 획기적인 패션 혁명이 일어났다. 쿠레주, 피에르 가르뎅, 파코 라반은 1960년대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트렌드 ‘스페이스 에이지’를 탄생시켰다.

1960년대는 기성복이 대중화되기 시작한 시기다. 오트쿠튀르 맞춤복이 상류층 고객을 상대로 강세를 보이다 1960년대 접어들며 기성복이 탄생했다. 같은 스타일의 옷이 대량 생산돼 패션 유행이라는 개념이 더욱 강해졌다. 미니스커트 역시 대량 생산에 힘을 얻어 급속히 유행했다.

60년 만에 돌아온 을사년. 샤넬, 셀린느, 쿠레주 등 럭셔리 명품 브랜드에선 1960년대 프렌치 레트로 스타일이 다시 주요 테마가 됐다. 활기차고 희망이 넘치던 1965년처럼 이 혼란한 시기에 패션이 새로운 활력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되는 이유다.

파리=정연아 패션&라이프스타일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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