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 30주년] 〈4〉 지자체가 도시문화 바꾼다
낡은 도서관 고쳐 아동문화공간 조성… 곳곳에 노인 커뮤니티-일자리 센터
“주민 함께 어울리며 공동체 회복”… ‘사람 중심 15분 도시’ 他시도도 주목
들락날락은 부산시가 추진하는 ‘15분 도시’ 정책의 대표 시설이다. 책을 읽는 공간은 물론이고 영어 교육, 증강현실(AR) 체험 등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무엇보다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이 함께 모이고 교류할 수 있는 ‘지역 거점’ 역할을 한다. 이희정 시 창조교육과 어린이복합문화공간팀장은 “날씨와 관계없이 걸어서 쉽게 방문할 수 있어 지난해에만 약 150만 명의 시민이 이용했다”고 밝혔다.
● 이웃과 함께하는 도시 공동체 ‘15분 도시’
부산시는 2022년 9월 시청 1호점을 시작으로 낡은 도서관과 유휴공간을 개보수해 3년 만에 75곳의 들락날락 공간을 마련했다. 현재도 30곳을 조성 중이며, 내년까지 200곳으로 늘릴 계획이다. 15분 도시 구축을 위해서다.15분 도시는 집에서 도보나 자전거로 15분 이내에 문화, 복지, 의료, 체육 등 주요 생활 기반시설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된 도시 모델이다. 단순히 시설을 가까이 배치하는 것을 넘어, 주민들이 함께 이용하며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공동체 회복을 도모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현재 테니스장, 탁구장, 배드민턴장 등 체육시설이 마련돼 있다. 시 관계자는 “이웃 간 따뜻한 관계를 회복하고,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커뮤니티를 형성할 수 있는 공간을 생활권 안에 마련하는 것이 15분 도시 정책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15분 도시는 2016년 프랑스 파리 팡테옹 소르본대의 카를로스 모레노 교수가 처음 제안한 개념이다. 모레노 교수는 공동체 해체와 환경오염 같은 대도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법으로, 사람 중심의 도시 그리고 가까운 거리에서 이웃과 소통하며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도시 구조를 제시했다.
인구 감소와 공동체 붕괴 등의 문제를 겪고 있던 부산시는 이 도시 모델에 주목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380만 명대를 유지하던 부산 인구는 지속적으로 줄어 지난해 3월 기준 329만5000명까지 감소했다. 특히 청년층과 기업의 이탈이 두드러지면서 “부산엔 노인과 바다만 남았다”는 자조 섞인 말까지 나왔다. 이에 박형준 시장은 2021년 취임 이후 “청년과 기업이 떠나지 않고 머물고 싶은 도시를 만들겠다”며 삶의 편의성과 공동체 회복을 동시에 추구하는 15분 도시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ESG-하하센터’로 환경 보호에 일자리 창출도
이들 시설 역시 단순한 복지시설을 넘어 어르신들의 건강과 자립을 돕고 이웃 간 소통을 이끄는 공간을 표방하고 있다. 해운대구 재송동 하하센터에서 동화책 읽기 동아리를 운영하고 있는 김정희 관계코칭연구소장은 “손주들에게 더 재미있고 감동적으로 책을 읽어주고 싶다는 어르신 10명이 매달 두 차례 모여 수업을 듣고 있다”며 “같은 수업을 들으며 자연스럽게 친분을 쌓고, 동네 친구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 다른 지역으로 번지는 ‘부산 모델’
시민 공동체 회복이 목표인 만큼 부산시는 정책에 시민 목소리를 적극 반영하고 있다. 현장 의견 수렴을 위한 ‘비전투어’를 13차례 실시해 지금까지 17개 정책 과제를 발굴했다.올해 3월 부산을 찾은 15분 도시 창시자 모레노 교수는 “부산만의 15분 도시를 잘 구축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며 “앞으로 아시아의 허브 도시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했다.
부산 모델을 벤치마킹하려는 다른 지방정부의 발길도 이어지고 있다. 제주도는 지난해 ‘15분 도시 제주’ 시범지구 계획을 수립하고 전략 과제를 추진하고 있으며, 지난해 11월엔 부산과 ‘15분 도시 연대 업무협약’을 맺었다. 광주, 경북 포항 등에서도 부산시에 운영 사례를 문의하고 있다.
남광우 경성대 도시계획학과 교수는 “부산시의 15분 도시는 ‘사람 중심’의 도시로 나아가는 의미 있는 도시 계획 정책”이라며 “집 주변에서 도보로 여가, 복지 등이 가능한 양질의 친환경 생활권 문화가 갖춰지면 인구 감소 등 지방이 겪는 위기를 해소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강성명 기자 smkang@donga.com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개
- 슬퍼요 0개
- 화나요 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