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학년엔 부산고 하현승, 2학년엔 대전고 한규민.”
프로야구 10개 구단 스카우터 사이에서 통하는 말이다. 부산고 ‘좌타니’(왼손 투수+오타니 쇼헤이)로 불리는 ‘이도류’ 하현승이 3학년 선수 중 최고라면, 2학년 선수 중엔 SSG 김광현과 같은 등번호 29번을 단 대전고 ‘왼손 에이스’ 한규민이 압도적 기량을 뽐내고 있다는 얘기다.
한규민을 앞세운 대전고는 3일 서울 신월야구장에서 열린 제80회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겸 주말리그 왕중왕전 1회전에서 ‘디펜딩 챔피언’ 성남고를 연장 10회 승부치기 끝에 5-4로 꺾었다.
이날 대전고 두 번째 투수로 등판을 기다리던 한규민은 팀이 0-2로 끌려가던 2회말 1사 주자 1, 2루 위기를 맞으면서 예상보다 일찍 마운드에 올랐다. 한규민은 성남고 1번 타자 정의택의 타석 때 폭투로 주자 2, 3루 위기를 자초했지만, 정의택을 뜬공으로 잡아내 평정심을 되찾았다. 성남고 2번 타자 김건우은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한규민은 이날 7이닝 동안 2피안타 1실점을 기록했다. 삼진 7개를 잡아내는 동안 볼넷은 2개만 내줬다.
경기 후 만난 한규민은 “내가 가진 힘의 80%만 썼다”며 여유 있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면서 “상대 타자들이 내 직구만 노리고 들어오는 것 같아서 체인지업과 스위퍼 비중을 늘린 게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덧붙였다. 올해 패스트볼 최고 시속이 147km까지 나온 한규민은 이날 최고 시속 144km를 기록했다. 평소보다 구속은 떨어졌지만 체인지업, 슬라이더, 스위퍼를 섞어 던지며 노련하게 타자들의 타이밍을 빼앗았다.
1일 최다 투구 수인 105개에 1개 못 미치는 104구를 던진 한규민은 9회 선두 타자로 타석에 들어선 임지우와 풀카운트 승부를 벌인 끝에 시속 135km 직구로 유격수 땅볼을 유도한 뒤 마운드를 내려왔다. 한규민은 “마음 같아선 9회 아웃카운트를 다 잡고 싶었지만 투구 수 제한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내 뒤에 (마운드에) 올라오는 (안)태건이 형만 믿었다”고 했다.
고교 2학년 투수로서 3학년 ‘형’들을 상대해야 하는 부담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한규민은 “프로에선 열 살 넘게 차이 나는 선배들도 삼진을 잡아내야 하지 않나. 한 살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다”며 웃었다. 한규민은 올해 1월 한국야구위원회(KBO)의 유망주 육성프로그램에 선발돼 미국 플로리다주 브레이든턴 IMG 아카데미에서 한 달간 변화구를 가다듬었다. 한규민은 “체인지업을 던지는 방법과 매커니즘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졌다. 요즘엔 새로운 그립의 체인지업도 만들어보고 있다”고 했다. 스위퍼의 궤적도 더 날카로워졌다. 한규민은 “중학생 때부터 스위퍼를 던졌는데 이제야 뭔가를 알고 던지는 느낌이다. 오늘은 위기 때마다 스위퍼가 잘 먹혔던 것 같다”며 웃었다.
대전고는 이번 대회에서 1962년 창단 이래 첫 우승에 도전한다. 대전고는 고교야구 4대 메이저 대회 중 봉황기, 청룡기, 대통령배에서 우승을 차지한 적이 있지만 황금사자기에서는 준우승만 세 번 했다. 한규민은 “(대전고가) 아직 황금사자기 우승이 없는데 내가 있을 때 우승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한 경기 한 경기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던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규민은 이날 0-2로 뒤지던 경기를 뒤집는 득점을 뽑아낸 타자들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았다. 한규민은 “아직 형들에게 고맙단 말을 못했다. 인터뷰를 마친 뒤 형들에게 ‘잘했다, 고맙다’고 말할 것”이라고 했다. 이날 104구를 던진 한규민은 4일간 등판이 제한돼 7일 원주고와의 경기엔 마운드에 오르지 못한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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