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 시작된 中 희토류 공격
트럼프2기, 공급망 무방비 상태
바이든 정부서도 통상쟁점 부상
당시 “동맹 협력이 대안” 진단
최근 美 희토류 업체 테세 전환
中 수요 끊기자 韓·日 수출 확대
韓 공급망 강화 ‘새 모멘텀’ 형성
조선업 잇는 대미협상 의제 가치
트럼프의 반복되는 관세 전쟁처럼 중국도 세계를 상대로 반복하는 공격 패턴이 있습니다. 공격 대상이 경제 대국일 때 꺼내는 ‘희토류 전쟁’이 그것입니다.
지난해 말 시진핑 지도부는 바이든 행정부의 반도체 추가 수출 통제 조치에 맞서 갈륨 등 희토류 관련 대미 수출 불허와 이중용도 규제를 추가했습니다.
이어 올해 1월에는 전기차 배터리에 들어가는 희소금속과 관련 기술 및 공정에 대한 신규 규제를, 또 4월에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전쟁에 맞서 희토류 7종에 대한 정부 허가 규제를 내놓습니다.
수출 불허는 아니지만 수출 시 정부의 허가를 받도록 해 사실상 수출을 못 하도록 하는 저열한 방식입니다.
중국이 희토류 카드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른 역사는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며 쌓아 올린 국력을 토대로 중국이 아시아 지역에서 패권 놀이를 시작한 즈음입니다.
당시 동중국해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 인근에서 일본 해상보안청이 중국 어선을 단속해 선장을 억류하자 중국은 대일본 희토류 통제라는 보복을 가합니다.
갑작스러운 경제 보복 조치에 놀란 일본은 구속했던 중국인 선장을 14일만에 석방 조치합니다. (※9년 뒤 일본은 한국 대법원의 강제노역 피해자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 조치로 반도체 공정에 쓰이는 불화수소 등 핵심 화학제품의 한국 수출을 막는 일명 ‘화이트리스트’ 통제를 시작합니다. 중국이 희토류 공격 때 “우리는 수출 규제를 하지 않는다”고 발뺌하던 중국의 부인 전략까지 그대로 흉내 내며 일본은 한국 반도체 산업의 급소인 화학물질 대일 의존을 겨냥했습니다)
이어 트럼프 1기 관세전쟁 때도 맞불 카드로 희토류 통제를 발동했는데 흥미로운 대목은 후임 바이든 행정부에서 중국의 희토류 압박이 외국 기업의 대미 투자 때 보조금을 주는 산업 지원 전략의 동기가 됐다는 점입니다. 바로 ‘공급망 회복’입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2021년 2월 미국의 주요 산업재료 공급망 점검을 지시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합니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으로 확인된 의료 물자부터 차량용 반도체 부족으로 미국 내 완성차 업체들이 공장 가동을 멈추는 기현상을 목격하고 공급망 안정화를 위한 조사를 지시한 것이죠.
조사 대상인 의약품 및 의료기기, 희토류, 반도체, 차량용 배터리 등 4대 품목으로 연방기관이 즉각적으로 100일 간 검토에 착수할 것을 명령합니다.
이 대목에서 눈치 빠른 독자들의 머리에 하나의 단어가 떠오를 것입니다. ‘IRA(인플레이션 감축법)’입니다.
희토류는 국방 산업부터 MRI 등 중요 의료기기와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에 공통적으로 투입되는 재료인 만큼 중국의 희토류 공격에서 안전한 새 공급망을 구축하는 출발점입니다. 2022년 8월 인플레이션 감축법 탄생의 ‘빌드업’이 바로 희토류 공급망 관리였던 것이죠.
관련해서 바이든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미 상무부 산업안전국(BIS)은 1년여의 조사 결과를 통해 결론을 내리는데 요즘 투자자들에게도 핫한 키워드인 ‘네오디뮴·붕소·철(NdFeB) 자석’이 거론됩니다.
상무부는 NdFeB 자석에 쓰이는 희토류 채굴 생산량의 60%를 중국이, 그리고 정제 능력의 85%, 영구 자석 생산량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며 심각한 공급망 위기를 경고합니다.
특히 전기차와 풍력발전의 모터 수요와 관련해 향후 10년간 미국의 NdFeB 자석 소비량이 두 배로 증가할 수 있다며 채굴과 정제 시장 모두에서 중국에 맞설 미국의 카드가 없다고 당면한 현실을 인정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트럼프식으로 맹목적인 보복 관세를 발동할 수도 없기에 바이든 행정부의 상무부는 별도 관세 조치 없이 백악관에 NdFeB 자석의 국내 생산과 공급역량 강화, 주요 광물에서 동맹과 협력 강화, 연구와 생산 현장에 고숙련 인력 개발 지원 등을 촉구하는 내용으로 결론을 짓습니다.
아울러 미국 지질조사국(USGS) 조사에 따르면 채굴과 정제 시장을 중국이 장악해 미국에 가장 위협이 되는 희토류로 갈륨, 코발트, 네오디뮴, 디시프로슘, 알루미늄, 플루오르스파르, 프라세오디뮴, 세륨, 란탄, 비스무트를 지목하고 있습니다.
주목할 점은 미국의 희토류 공급망 재건 작업이 트럼프 관세 전쟁을 기화로 최근 본격화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바로 미국 토종 업체인 ‘MP 머티리얼즈’를 통해서입니다.
이 회사의 짐 리틴스키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포브스 인터뷰에서 한국과 일본을 거론하며 새로운 공급망 강화가 이뤄지고 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이 회사는 미국 유일의 희토류 광산인 캘리포니아주 소재 마운틴패스 광산을 운영하며 NdFeB 자석의 필수 희토류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생산량의 상당수를 중국으로 수출했는데 트럼프 관세전쟁 때문에 상호 보복관세가 더해지면서 최대 거래처인 중국 거래처의 선적이 중단됐습니다.
이 업체는 대신 일본과 한국의 신규 고객을 대상으로 판매를 늘리고 있다며 “우리의 귀중한 핵심 소재를 중국에 판매하는 것은 상업적으로도 (높은 관세 때문에) 합리적이지 않고 미국의 국익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전합니다.
작년 12월 코트라 로스앤젤레스 무역관 보고서에서도 미국 유일의 희토류 광산을 운영하는 업체로 MP머티리얼즈가 거론되고 있는데 이 업체는 공급망 안정화를 이유로 미 국방부로부터 4500만 달러의 지원금을 받았습니다. 보고서를 보면 MP 머티리얼즈가 생산한 희토류를 판매하는 상위 수출국 중에 한국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보고서는 “미국은 중국의 자원 무기화 움직임에 대응하기 위해 그 환경적 (부정) 영향에도 불구하고 자국 내 희토류 광산 개발 프로젝트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고, 캐나다와 호주, 일본 등 다른 우방국으로 공급선 확보에 적극 노력하고 있다”고 소개합니다.
이어 미국의 우방국 공급선 확보 노력을 한국이 현명하게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합니다.
“한국 역시 희토류 영구자석 중국 의존도는 약 85%로 매우 높은 수준이다. 미국의 희토류 공급망 전환 노력을 주시해 우리 기업의 기회요인이 없는지 모색하는 것은 물론 해외 광물 기업에 대한 선제적 투자 등 공급선 다변화 정책을 참고해 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또 지난 3월 미국에 상장한 희토류 기업 ‘USA레어어스’의 조슈아 밸러드 CEO 역시 최근 매일경제 실리콘밸리 특파원과 인터뷰에서 한국과 협력 강화를 모색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USA레어어스는 텍사스주에 희토류 매장지(deposit)를 채굴할 권리를 갖고 있으며 오클라호마주에 영구자석 생산시설을 짓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는 미국 내에서 완전한 영구 자석 공급망을 구축하는 것이 목표”라며 “2026년 초반 영구 자석을 생산할 계획”이라고 전했습니다.
USA레어어스가 미국에서 만드는 영구 자석 생산시설은 한국 ‘KSM메탈스’로부터 원료금속을 쓰는 방식입니다. KSM메탈스는 호주 광산기업 ASM의 한국 법인입니다.
중국이 세계 희토류 시장을 90% 이상 장악하는 가운데 이처럼 미국-한국-호주로 이어지는 ‘차이나 프리’의 새로운 희토류·NdFeB 공급망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 조선업 몰락으로 인해 한국과 일본에 새로운 민관 겸용 선박과 수리·정비 수요를 맡길 태세인 트럼프 행정부에 또 하나의 통점은 중국의 희토류 공격에 마땅한 대응 수단이 없다는 점입니다.
한국 내 희토류 및 NdFeB 자석 관련 기업들을 묶어 미국과 안정적인 공급망 연대를 구축하는 방안도 조선업 분야의 새로운 협력과 함께 경제·안보 분야에서 한국의 동맹 가치를 키울 수 있는 유효한 협상 카드가 될 수 있습니다. 이미 2022년 작성된 미 상무부 보고서는 백악관에 “동맹과 공급망 협력을 하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첨단 제조업에서 중국과 경합 관계인 한국과 일본은 향후 중국으로부터 얼마든지 희토류 전쟁이라는 보복 공격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미국을 희토류를 비롯한 비연료 광물의 선두 생산·가공 국가로 만들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을 실현하는 데 한국의 기여가 클 것임을 어필해 알래스카 LNG 개발과 같은 고위험 협력 의제를 회피하는 전략적 접근도 필요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