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진영]트럼프 생일날 백악관 격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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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역대 대통령 가운데 생일을 국가적 행사로 기념하는 이는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이 유일하다. 독립 전쟁의 영웅인 워싱턴의 생일(2월 22일)이 되면 낮엔 축포를 쏘고 밤엔 성대한 무도회를 열었다. 그의 사후엔 생일이 법정 공휴일로 지정됐고, 지금은 2월 셋째 주 월요일로 옮겨 사흘 연휴를 쉰다. 공식 명칭은 ‘대통령의 날’로 바뀌었지만 몇몇 주에선 여전히 ‘워싱턴 탄생일’로 부른다. 이후 대통령들에게 생일은 개인적 기념일일 뿐인데 각자 성향에 따라 스타일이 다 달랐다.

▷농구광인 버락 오바마는 생일 주간에 대통령 휴양지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고교 동창들과 농구를 즐겼다. 소아마비를 앓았던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소아마비 퇴치를 위한 기금 모금 무도회를 열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45번째 생일에 할리우드 스타들을 초대해 민주당 모금 행사 겸 생일 파티를 했는데 매릴린 먼로의 축가 ‘해피 버스데이, 미스터 프레지던트’로 지금껏 회자되는 행사다.

▷팔순이나 구순을 맞는 대통령은 전현직 구분 없이 각별한 축하를 받는다. 제2차 세계대전에 공군 조종사로 참전했던 아버지 부시는 75세부터 5년 단위로 생일 기념 스카이다이빙을 했다. 특히 2014년 90번째 생일에는 파킨슨병으로 휠체어에 의지하는 몸으로 스카이다이빙에 성공해 박수를 받았다. 지미 카터가 2024년 100세 생일을 맞자 미국 전역에서 그가 퇴임 후 헌신했던 해비타트 사랑의 집짓기 운동 특별 행사가 펼쳐졌다. 조 바이든은 2022년 미 역사상 처음으로 백악관에서 팔순을 맞았지만 나이 문제가 부각될까 봐 조용한 브런치로 생일상을 대신했다.

▷초대 대통령 이후 처음으로 자신의 생일을 국가적 행사로 치른 이가 도널드 트럼프다. 지난해 6월 14일 79번째 생일에는 미 육군 창설 250주년 군사 열병식을 열었다. 공교롭게도 그의 생일과 미 육군 창설일이 같다. 1991년 걸프 전쟁 기념 열병식 이후 최대 규모의 열병식이 사실상 대통령 생일 축하쇼로 진행되는 동안 미국 전역에선 최대 규모의 반(反)트럼프 시위인 ‘노 킹스(No Kings)’ 시위가 펼쳐졌다.

▷올해 80세 생일엔 백악관 남쪽 잔디밭(사우스론)에서 종합격투기(UFC) 대회를 개최한다. 미 건국 250주년 기념행사라지만 행사일이 독립기념일인 7월 4일이 아니라 트럼프 생일이다. 총 8만5000장의 무료 관람권을 발행할 계획이며 주최 측이 댄다는 비용이 적게 잡아도 6000만 달러(약 900억 원)다. 로마 제국 쇠락기에 굶주린 민중의 분노를 피 튀는 검투사 경기로 달랬듯, 전쟁과 고물가로 흉흉한 민심을 수습하려는 ‘서커스 정치’라는 해석이 나온다. 민주국가에선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트럼프다운 권력자의 팔순 잔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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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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