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신광영]英 새 총리에 ‘북부의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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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월드컵 예선이 열리면 영국에서만 4개의 국가대표팀이 나온다. 정치적으론 하나의 연합국이지만 축구팀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로 나뉜다. 가장 큰 잉글랜드는 그 안에서도 남부와 북부 간에 감정의 골이 깊다. 런던을 중심으로 한 남부에선 맨체스터 같은 북부 지역 사람들을 “상스럽고 가난한 사람”으로, 북부에선 남쪽 사람들을 “가식적이고 돈에 집착하는 속물”로 보는 선입견이 있다고 한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에서 뿌리 깊은 남북 간 격차를 지적하며 “사실상 별개의 나라가 됐다”고 논평했을 정도다.

▷최근 사임한 키어 스타머에 이어 영국 총리에 오르게 될 앤디 버넘 의원은 ‘북부의 왕(King of the North)’이란 별명을 갖고 있다. 노동당 소속의 버넘은 잉글랜드 북부 중심 도시인 맨체스터 시장을 세 번 연임했던 인물이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 북부 지역에 고강도 봉쇄 정책을 펴려 했던 런던의 보수당 정부에 맞서 “북부 노동자들을 제물로 삼지 말라”며 지역민들 생계 보상을 강하게 요구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버넘은 ‘북부의 왕’답게 런던에 집중된 주택 교통 등 인프라를 맨체스터 등 북부로 대폭 분산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런던 다우닝가 10번지에 있는 총리실의 일부 기능을 북부로 옮겨 ‘북부 총리실(No. 10 North)’도 설치하겠다고 공약했다. 영국은 우리 못지않게 수도권 집중이 심각한 나라다. 남북 간 경제력 격차가 갈수록 벌어져 런던의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은 북부 도시들보다 두 배 이상 높다.

▷산업혁명 이후 오랫동안 맨체스터, 리버풀, 뉴캐슬 같은 북부 공업도시들이 영국 경제를 먹여 살렸다. 하지만 조선 철강 등 제조업이 몰락하고, 1980년대 마거릿 대처 정부가 대대적 민영화를 추진하면서 북부는 쇠락의 길을 걸었다. 반면 런던은 금융 등 고부가가치 산업을 육성하려는 정부의 전폭적 지원 속에 급성장했다. 한국인들이 주로 찾는 런던, 옥스퍼드 등 남부와 달리 북부 도시에선 폐업한 상점들과 텅 빈 번화가를 흔히 볼 수 있다.

▷버넘이 ‘초강력 지방분권’ 정책을 내건 건 자신의 지지 기반이자 노동당의 주요 지지층이 북부 노동자층이란 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스타머 총리의 최근 지방선거 참패 이유 중 하나도 어설픈 중도주의였다. 하지만 버넘이 넘어야 할 산이 만만치 않다. 무너진 영국 경제를 일으키려면 유럽연합(EU)과 결별한 ‘브렉시트(Brexit)’를 이제라도 되돌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노동당에서도 커지고 있는데, 브렉시트를 주로 지지했던 게 북부 노동자들이었다. 이들을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북부의 지갑’을 채워줄 해법을 찾지 못하면 그 역시 전임자들처럼 또 한 명의 단명 총리로 남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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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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