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 후 귀가하던 말단 공무원, '영끌' 명품을 강도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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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ttyImages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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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투는 때로 당신의 신분증입니다. 계절에 맞는 적당한 외투를 입었는지, 옷감이 해지진 않았는지, 어떤 브랜드에서 나온 어느 정도 가격대의 외투를 구매했는지, 직장의 복장 규정은 어떠한지… 외투는 당신의 많은 것을 말해줍니다. 요즘처럼 번듯한 외투가 간절한 겨울에는 더욱 그렇지요.

1842년 발표된 니콜라스 고골의 단편소설 <외투>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매서운 칼바람을 견뎌야 하는 9급 말단 관료가 새 외투를 장만하면서 벌어진 일을 다룹니다.

외투가 당신을 설명한다

주인공 아까끼 아까끼예비치의 새 외투는 그냥 옷이 아닙니다. 요즘으로 치면 '영끌' 부동산이나 외제차입니다. 새롭게 얻은 신분증 같기도 합니다.

아까끼예비치게 외투는 과거와 미래를 저당잡혀 얻은 행복이에요. 그는 한 해 400루블을 받는 9급 관료인데 외투를 새로 맞추기 위해 연봉 절반을 털어넣었습니다. 사치가 아니에요. 이전에 입던 외투가 해져서 재봉사가 도저히 더는 기울 수가 없다고 선언했거든요. 그는 허리띠를 졸라매기로 하고 저축한 돈을 털어 새 외투를 맞춥니다. 그래봤자 고양이 가죽이지만 멀리서 보면 담비 가죽처럼 보이는.

외투는 그에게 새로운 미래를 약속할 것처럼 보였어요. 존재감 없는 정서(正書) 일을 하던 그는 동료들의 조롱과 괴롭힘에 시달렸어요.
"관청에서는 모두 그를 아무렇게나 대했다. 경비는 그가 지나가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날아온 파리 한 마리가 응접실을 지나가는 듯 전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상관들은 그를 냉정하고 난폭하게 대했다."
그런데 아까끼예비치가 멋진 외투를 입고 나타나자 그를 대하는 동료들의 태도가 달라져요. 관청에서는 외투를 출근길에 경비실에 맡겨두고 일했는데, 그의 새 외투를 구경하러 사람들이 경비실로 달려가요. 마치 동료가 새로 뽑은 고급 외제차를 보러 주차장으로 달려가는 꼴입니다.

동료들은 그가 외투를 마련한 걸 축하하기 위해 회식까지 잡아요. 그런데 그날 밤, 불콰하게 술에 취한 아까끼예비치는 집에 가던 길에 강도에게 외투를 빼앗기고 맙니다. 그는 열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맙니다.

니콜라이 고골과 그의 소설 <외투>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영화 '고골 더비기닝'의 한 장면.

니콜라이 고골과 그의 소설 <외투>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영화 '고골 더비기닝'의 한 장면.

멸시가 사람을 얼려죽인다

아까끼예비치를 죽인 건 러시아의 강추위가 아닙니다. 그를 향한 냉대죠.

폐쇄회로(CC)TV도 없던 시대, 아까끼예비치는 외투를 잃어버린 다음날 절박한 심정으로 고위 관료까지 찾아가요. 그를 마주한 고위 관료는 불쾌해합니다. 하급 관료가 중간 관리자들을 건너뛰고 자기를 직접 찾아왔다고 성을 냅니다. 그가 관료제를 무시하거나 우회한 것에 분노해요. "그런 일이라면 먼저 관공서에 문서로 제출했어야지. 그러면 관공서에서 계장과 부장을 거쳐 비서에게 전달될 테고, 그다음 비서가 내게 보고할 텐데."

고위 관료는 "지금 얘기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아나? 누구 앞인지 아느냐고?" 고함칩니다. 이 질문은 거꾸로 말하면 이런 의미죠. "네까짓 게 뭔데?"

아까끼예비치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수사적 표현이 아니라 말 그대로 입을 쩍 벌리고 눈보라 속을 걸어 후두염을 얻어요. 누군가에게 그토록 호되게 혼난 건 평생 처음이었거든요.

"사소한 일이 우리를 위로한다. 사소한 일이 우리를 괴롭히기 때문에." 17세기 프랑스 철학자이자 수학자, 신학자였던 블레즈 파스칼은 말했죠. 사람의 영혼을 훼손하는 건 거대한 사건, 야심찬 음모가 아니라 사소한 순간들입니다.

고위 관료의 냉대에 아까끼예비치의 몸과 마음은 무너져 버립니다. 그는 열병으로 시름시름 앓다 세상을 떠나고, 그를 닮은 유령을 밤거리에서 마주쳤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아요. 아까끼예비치의 유령은 고위 관료의 외투를 빼앗는 복수를 한 뒤에야 어둠 속으로 사라집니다. 죽어버린 유령에게 외투가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자신을 무시했던 고위 관료의 위세를 벗겨내고 싶었던 거겠죠.

아까끼예비치가 빼앗긴 외투는 사회에서 인간으로 대접받기 위해 필요한 외피였습니다. 우리는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모두 각자의 외투를 입고 있죠. 소설은 나는 어떤 외투를 입고 있는지, 외투를 잃어버린 사람 앞에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돌아보게 만듭니다.

관료주의 체제, 관성을 유지하려는 조직 대(對) 돌출된 개인이라는 구도는 시대 불문 유효한 화두죠. 지난해 무대에 올랐던 창작 뮤지컬 '데카브리'는 <외투>를 모티브로 당대 제정 러시아에서 젊은 장교들이 일으킨 반란을 그리며 권력과 억압, 개인의 신념에 대해 노래합니다.

도스토옙스키 "우리 모두는 고골에게서 나왔다"

오토 프리드리히 테오도르 폰 묄러가 그린 니콜라이 고골의 초상화. 트레치야코프 미술관 제공

오토 프리드리히 테오도르 폰 묄러가 그린 니콜라이 고골의 초상화. 트레치야코프 미술관 제공

작가 니콜라이 고골(1809~1852)은 요즘 한국 서점가에서도 팬을 찾아볼 수 있는 19세기 소설가입니다. 엉뚱한 상상력과 날카로운 풍자로 '웃프다'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작품들을 썼거든요. 예컨대 그의 또 다른 대표작인 단편 '코'는 내 얼굴에 붙어 있던 코가 어느 날 사라지더니 상사가 돼 나타나는 이야기죠.

고골은 러시아 제국 하급 관료로 일하며 관료 사회의 부조리를 몸소 겪은 경험이 있습니다. 이를 문학적 자양분으로 삼아 소설을 썼죠. 한때 배우가 되기를 희망했지만 꿈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필명으로 냈던 초기작이 멸시받자 '틈새시장'을 노리기로 합니다. 우크라이나 출신이던 고골은 러시아 도시 사람들이 잘 모르던 고향 우크라이나의 전설과 괴담, 풍습을 버무려 소설로 썼어요. 그렇게 1831년 출간한 <디카니카 근교 농촌에서의 밤>이 대박을 터뜨리며 스타 작가가 됐습니다.

<디카니카 근교 농촌에서의 밤>의 성공 뒤에는 당시 러시아 민족주의가 부상하던 시대적 파도가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원고를 "악마의 유혹에 빠져서 쓴 보잘 것 없는 글"이라며 태워놓고 곧 하인에게 "악마의 장난"이라고 말하며 울부짖었다죠. 이른바 '11월 봉기'를 잔혹하게 진압한 니콜라이 1세는 제국을 하나로 묶기 위해 '전제 정치, 정교회, 민족주의'라는 서슬 퍼런 원칙을 세웠습니다. 우크라이나를 포함한 여러 변방을 하나의 제국으로 묶으려 했어요. 이런 시대를 감안하면 <외투> 속 경직된 관료제는 더욱 엄혹해 보입니다.

근대 러시아 문학의 시발점이자 리얼리즘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습니다. 러시아 문학의 거장 도스토옙스키는 "우리 모두는 고골의 <외투>에서 나왔다"고 말했다죠.

작품만큼이나 삶에서도 기이한 결말을 보여요. 그는 1952년 2월의 어느날 밤, 평생의 역작인 <죽은 혼> 2부 원고를 불태웁니다. 앞서 발표한 <죽은 혼> 1부가 러시아의 타락한 현실을 예술적으로 풍자하며 호평을 받았는데, 2부에 대한 부담감을 이겨내지 못한 것으로 보여요. 그는 자신의 원고가 "악마의 유혹에 빠져서 쓴 보잘 것 없는 글"이라며 태워놓고 곧 하인에게 "악마의 장난"이라고 말하며 울부짖었다죠. 이 사건이 일어나고 며칠 뒤 고골은 43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습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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