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크니 ‘예술가의 초상’ 46년 만에 5017배… 가격 키운 6차례 손바뀜[양정무의 미술과 경제]

1 day ago 5

작품은 어떻게 자산이 되나


데이비드 호크니 수영장 시리즈의 대표적인 두 작품. 1967년 작 ‘더 큰 첨벙’은 미국 로스앤젤레스(LA)로 이주한 뒤 그가 느낀 행복감과 동시에 고독감을 잘 담아냈다. 사진 출처 영국 테이트모던·크리스티

데이비드 호크니 수영장 시리즈의 대표적인 두 작품. 1967년 작 ‘더 큰 첨벙’은 미국 로스앤젤레스(LA)로 이주한 뒤 그가 느낀 행복감과 동시에 고독감을 잘 담아냈다. 사진 출처 영국 테이트모던·크리스티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물놀이의 계절이다. 잠시라도 근심 걱정을 접고 시원한 물에 첨벙 빠지고 싶다. 찬물 속을 허우적거리는 걸 상상만 해도 기쁜데, 마침 물놀이 장면을 그려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화가가 있다. 6월 11일 생을 마감한 영국 대표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1937∼2026)는 수영장을 현대인의 파라다이스로 그려 명성을 얻었다.

●‘LA의 피라네시’ 꿈꾼 호크니

호크니의 수영장 그림 중 가장 유명한 ‘더 큰 첨벙’(1967년)을 보자. 영국 요크셔 출신인 호크니는 1964년에 미국 캘리포니아의 따사로운 햇살과 미국식 자유주의에 매료돼 로스앤젤레스(LA)로 이주한다.

런던과 달리 LA를 그린 화가가 없었다는 점도 주요한 이주 이유였다고 말한다. 그는 18세기 판화가 피라네시가 로마를 그려낸 것처럼 자신은 ‘LA의 피라네시’가 되겠노라고 다짐했다. 또 영국 왕립미술대에서 그림을 배울 때부터 동성애자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냈는데, 미 서부에서 해방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LA는 생각했던 것보다 세 배는 더 좋았다”고 말했다.

호크니에게 가장 LA다운 공간은 수영장이었던 것 같다. 그는 처음 비행기로 LA에 착륙하기 직전 눈앞에 펼쳐진 수영장 풍경에 매료된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온통 푸른 수영장들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영국에서 수영장은 사치였지만, 여기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때부터 호크니는 수영장을 즐겨 그렸는데, 수영장 시리즈는 이렇게 탄생했다.

호크니의 수영장 시리즈를 대표하는 ‘더 큰 첨벙’은 그가 LA에서 느낀 행복감과 함께 이방인으로서 느끼는 고독감까지 잘 담아냈다. 가로 242cm, 세로 244cm의 큰 캔버스 화면에 가정집 수영장 풍경이 자리 잡고 있다.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하늘, 통유리의 핑크빛 단독주택, 그리고 수영장 풍경은 그지없이 평화롭다. 이때 누군가 막 다이빙대를 박차고 물속으로 첨벙 들어가자 물이 사방으로 튀고 있다.

화면 가운데 튀어 오른 물보라와 오른쪽 배경의 두 그루의 야자나무 정도를 빼면 색면 추상이라 할 만큼 평면적으로 압축돼 전체적으로 고요한 느낌을 준다. 여기에 티끌 하나 없이 맑은 화면에 파스텔 색조가 더해져 연극무대처럼 낯설게 보인다. 넓은 면은 균일하게 보이게 하려고 붓 대신 롤러로 그렸지만, 첨벙 튀어 오른 물 자국은 작은 붓으로 2주간 정성껏 그렸다고 한다. 이 부분은 고요한 화면에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면서 미국에서 유행했던 추상표현주의가 즐겨 시도한 물감 뿌리기 기법을 붓으로 흉내 낸 듯해 재치가 넘쳐 보인다. 화면 테두리는 널찍하게 비어 있어 오래전 찍었던 폴라로이드 사진 속에 담긴 행복한 장면을 다시 꺼내 보는 듯하다.

●낙원이자 이별 무대 된 수영장

1972년 작 ‘예술가의 초상’은 2018년 경매 당시 생존 화가 중 최고가인 9031만 달러에 판매됐다. 사진 출처 영국 테이트모던·크리스티

1972년 작 ‘예술가의 초상’은 2018년 경매 당시 생존 화가 중 최고가인 9031만 달러에 판매됐다. 사진 출처 영국 테이트모던·크리스티

호크니의 수영장 그림 중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은 ‘예술가의 초상’(1972년)이다. ‘수영장의 두 남자’로도 불리는데, 2018년 11월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9031만 달러(당시 약 1019억 원)에 판매돼 생존 작가 작품으로 최고가였다. 이 기록은 이듬해인 2019년 5월 제프 쿤스의 ‘토끼’가 9107만 달러에 팔리면서 바뀌게 된다.

야외수영장에서 수영을 즐기는 남자와 물 밖에서 그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남자를 그린 그림 한 점이 이렇게 경이로운 가격에 거래된다니 놀랍게 보일 수 있다. 호크니의 증언에 따르면 1971년 어느 날 작업실 바닥에 수영하는 사람을 찍은 사진과 한 남성이 서 있는 사진이 나란히 떨어져 있는 것을 보고, 두 사진을 합친 그림을 구상하게 됐다. 그는 처음 시도한 그림은 마음에 들지 않아 폐기했고, 이듬해 다시 시도한 그림이 지금의 작품이다.

‘더 큰 첨벙’에서 매끈했던 수영장 물결은 이번에는 햇살을 받아 그물처럼 일렁이고 있다. 그 속을 유유히 수영하는 남자의 신체가 굴절 현상으로 변형된 점도 절묘하게 표현해냈다. 수영하는 남자의 추상적인 신체는 물 밖에서 그것을 바라보는 남성과 대비돼 두 사람은 전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듯하다. 실제로 물 밖에 서 있는 남성은 화가의 헤어진 파트너라고 한다. 그는 자신에게 헤엄쳐 오는 친구에게 작별을 고하려는 듯 표정이 다소 어두워 보인다. 호크니는 수영장 시리즈와 함께 2인 초상화도 자주 그렸는데, 이 두 주제가 한 화면 속에 등장하고 있어 더욱 주목되는 작품이다.

●작품보다 흥미로운 소장 이력

‘예술가의 초상’은 처음 화랑에서 거래된 가격이 공개돼 있어 호크니 그림 가격의 변화를 읽어낼 수 있다. 1972년 미 뉴욕 안드레 에머리히 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에서 처음 전시된 후 거래됐는데, 이때 가격이 1만8000달러로 알려져 있다. 2018년 거래가를 고려하면 46년 만에 가격이 5017배나 뛴 것이다. 연간 상승률로 치면 20.3%인데, 동일 기간 미 증시 대표지수 S&P500의 상승률(10% 수준)을 크게 뛰어넘는 고수익을 낸 셈이다.

물론 이 수익을 한 사람이 모두 가져간 건 아니다. 경매사 크리스티가 공개한 소장·유통 이력과 기타 언론 자료를 종합하면, 이 작품은 2018년 경매 이전 최소 6번의 손바뀜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1983년 이 그림의 다섯 번째 소장자는 미 억만장자 기업가이자 영화·음악계의 거물 데이비드 게펀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2018년 경매 이후 LA타임스 인터뷰에서 1995년 이 그림을 판매할 때 충분히 이익을 남겨 별로 아쉬움이 없었다고 말했다. 당시 그는 수백만 달러의 이익을 내고 이 그림을 재판매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작품으로 가장 큰 수익을 낸 진정한 승자는 여섯 번째 소장자 조 루이스다. 그는 투자 지주회사 ‘타비스톡 그룹’ 대표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토트넘 홋스퍼의 구단주였다. 열렬한 미술 컬렉터이기도 한 그는 1995년 게펀으로부터 이 작품을 수백만 달러에 구매한 후, 2018년 경매에서 되팔아 막대한 이익을 얻었다.

현재 이 작품은 대만 부자 2위인 기업가 천타이밍(陳泰銘)의 YAGEO재단 컬렉션에 있다. 다만 2018년 경매 당시 낙찰자의 신원은 공개되지 않아 그가 경매에서 직접 구입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호크니의 사망 이후 그의 작품 세계를 재평가하는 대규모 전시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돼 작품 가격은 더 오를 것으로 보인다.

●소장 이력이 시장을 키운다

6월 작고한 호크니를 대표하는 수영장 그림을 이야기하다가 논점이 그의 작품 가격으로 옮겨간 건 경매 기록에서 소장자 목록에 자꾸 눈길이 갔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같은 소장자 목록은 한국 미술시장에 꼭 필요한 부분으로 보였는데, 때마침 이 점을 제도적으로 보완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

2023년 제정된 미술진흥법에 따라 이달 26일부터 미술서비스업 신고제가 시행된다. 이 법 15조 5항 1호는 화랑업자에게 자신이 유통한 미술품의 내역을 관리하도록 요구한다. 다만 법 규정만으로 관리 대상에 거래 가격과 구매자 실명이 반드시 포함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고, 기록 관리 의무와 대외 공개 의무도 구분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차제에 국내 미술계가 소장 이력에 관한 일정한 정보공개를 전향적으로 검토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예를 들어 한국 미술시장이 확대되려면 미술 구매층이 확대되고 미술품 거래가 활성화돼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앞서 호크니의 ‘예술가의 초상’ 사례처럼 그림 가격이 오르면서 구매에 참여한 소장자들이 충분한 이익을 얻는 구체적인 사례가 쌓여야 한다.

비약적으로 도약하는 한국 경제와 달리 한국 미술시장은 매출 기준으로 수십 년째 박스권을 맴돌고 있다. 미술계가 어렵게 마련한 미술진흥법을 지혜롭게 살려 K아트가 K팝만큼 한국 문화를 대표하는 주자로 날아올랐으면 좋겠다. 그래서 한국 화가의 삶과 작품 세계도 호크니처럼 전 세계 주요 뉴스로 다뤄질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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