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5000만원이 사람 살렸다"…'777억' 부자의 고백 [윤현주의 主食이 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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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게 낫다는 말이다. 가짜뉴스 홍수 속 정보의 불균형을 조금이라도 해소하기 위해 주식 투자 경력 18년 8개월의 ‘전투개미’가 직접 상장사를 찾아간다. 회사의 사업 현황을 살피고 경영진을 만나 투자자들의 궁금증을 해결한다. 전투개미는 평소 그가 ‘주식은 전쟁터’라는 사고에 입각해 매번 승리하기 위해 주식 투자에 임하는 상황을 빗대 사용하는 단어다. 주식 투자에 있어서 그 누구보다 손실의 아픔이 크다는 걸 잘 알기에 오늘도 개인투자자 입장에서 기사를 쓴다. <편집자주>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금토로 80번길 37 인피니티타워 E동에 위치한 슈어소프트테크 본사. 성남=윤현주 기자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금토로 80번길 37 인피니티타워 E동에 위치한 슈어소프트테크 본사. 성남=윤현주 기자

지난 2009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서 도요타 자동차를 탄 4명의 가족이 사고로 숨졌다. 당시 전자제어장치(ECU) 메모리 오류로 차량이 제어 불능 상태에 빠지며 인명 피해로 이어진 것이다. 이처럼 자동차 소프트웨어(SW) 결함은 ‘운전 중 갑자기 핸들이 잠기는 것’처럼 예상치 못한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 당시 미국 등에서 1200만대 사상 최대 규모 리콜 사태로 이어졌고 결국 도요타는 수십조 원의 손실이 발생했다.

국내 유일 미션 크리티컬 SW 검증 업체인 슈어소프트테크는 자율주행 시스템의 ‘눈과 귀’에 해당하는 인지 및 판단 알고리즘을 집중적으로 검증한다. 예를 들면 갑자기 튀어나온 보행자를 차량이 정확히 인식하고 제동할 수 있는지 수천 가지 시뮬레이션 시나리오를 통해 확인하는 것이다. 즉 미션 크리티컬 SW 검증이란 원자력 핵반응 제어·항공기 비행 제어·자동차 자율주행 등 주요 산업에서 SW 오류로 돌이킬 수 없는 사고가 발생하는 것을 막는 것이다.

배현섭 대표가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 후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성남=윤현주 기자

배현섭 대표가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 후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성남=윤현주 기자

KAIST 5명 의기투합 “안전한 세상 만드는 SW 만들자”

배현섭 슈어소프트테크 대표(1971년생)는 지난 11일 “안전한 세상을 위한 SW를 만들자는 일념으로 창업했는데, 현재 자동차·원자력·국방 등 관련 고객사를 늘려가며 올해 첫 매출 1000억원 돌파가 가능할 것 같다”고 밝혔다. KAIST 컴퓨터공학 박사 출신인 배 대표는 2002년 같은 학교 학부 후배 1명과 대학원 실험실 후배 3명 등 총 5명과 창업 후 국내 최초 SW 검증 자동화 기술 국산화에 성공한 인물이다.

신예지 대리가 SW 검증 솔루션 서비스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성남=윤현주 기자

신예지 대리가 SW 검증 솔루션 서비스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성남=윤현주 기자

이 회사는 자동차 분야 47개사, 국방 26개사, 원자력 11개사와 거래한다. 주요 고객은 현대차, 삼성전자, LG전자,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현대로템, LIG넥스원, HD현대일렉트릭, 두산에너빌리티 등이다. 본사는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금토로 80번길 37 인피니티타워 E동에 있다. 서울에서 대중 교통을 이용하면 1시간30분가량 걸린다.

하새은 사원이 슈퍼 히어로 명단을 소개하고 있다. 성남=윤현주 기자

하새은 사원이 슈퍼 히어로 명단을 소개하고 있다. 성남=윤현주 기자

슈어소프트테크는 자체 개발한 SW 검증 자동화 솔루션 판매(영구 및 구독형 라이선스)와 검증 서비스 제공을 통해 수익을 창출한다. 라이선스 계약 고객에게는 연간 유지보수 계약을 통해 안정적인 수익원이 확보된다. 이 서비스는 검증 대상 SW의 규모나 위험등급에 따라 매출이 산정된다. 지난해 매출(총 888억원) 비중으로는 빅데이터·인공지능(AI) 36.9%(327억원), 코드 검증 33.6%(298억원), 시스템검증 17.8%(158억원), 모델검증 6.6%(59억원), 미래기술검증 5.1%(46억원) 순이었다.

지능형시험자동화실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다. 성남=윤현주 기자

지능형시험자동화실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다. 성남=윤현주 기자

배현섭 대표 “SW 검증 사업 순항…AI 사업 강화, 해외 진출도 확대”

배 대표는 “주력 산업의 SW 검증 사업 성장과 테스트 AI 사업 순항, 해외 진출 확대로 올해도 15% 이상 성장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그는 “전기차, 자율주행차, 커넥티드카, 소프트웨어중심차량(SDV) 등 점점 SW 역할과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며 사업 분위기를 전했다. 이어 “국내 대형 원자력 발전소 건설 재개 및 소형모듈원자로(SMR) 약진과 K방산·우주항공청 개청 등 우호적인 사업 환경으로 수년간 고속성장이 예상된다”고 자신했다.

임기현 대리가 사내 홍보 영상을 편집하고 있다. 성남=윤현주 기자

임기현 대리가 사내 홍보 영상을 편집하고 있다. 성남=윤현주 기자

실제 자동차 SW 검증의 경우 올해 상반기 계약 목표금액(250억원)을 이미 1분기에 달성했다. 미국 관세 폭탄으로 車산업이 위축되고 있는 와중에 이뤄낸 성과다. 양산 대수와 실적이 상관없는지 묻자 “우린 차종이 많아질수록 SW 검증 수요가 늘어난다”며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SDV 시대 전환으로 일거리가 점점 더 쌓이는 구조다”고 답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베리파이드 마켓 리포츠(Verified Market Reports)에 따르면, 전 세계 소프트웨어 검증 서비스 시장은 외부 전문업체를 통한 테스트 및 QA를 중심으로 형성돼 있으며 2030년까지 약 15조1000억원(104억5000만달러) 규모로 성장(연평균 성장률 9.4%)할 전망이다. 한편 포춘 비즈니스 인사이츠(Fortune Business Insights)는 자동차 소프트웨어 검증 시장을 별도 산업으로 분류하고, 2032년까지 약 133조원(918억6000만달러) 규모로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자동차 분야 특성상 완성차 및 티어1 공급사의 임베디드 SW 개발 과정 전반에 포함된 다양한 검증 활동이 시장 규모에 반영되기 때문인데 연평균 14.2% 성장할 것으로 봤다.

조민근 팀장이 코딩 작업을 하고 있다. 성남=윤현주 기자

조민근 팀장이 코딩 작업을 하고 있다. 성남=윤현주 기자

원자력도 마찬가지다. 작년 50억원 수주를 했는데, 올해 80억원 수주(전년 대비 50% 이상 증가)가 예상된다. 이는 국내 원자력 정책 변화 수혜로 원전 추가 건설(신한울 3,4호기/신규 원전 3기 계획)이 진행됐기 때문이다. 또 24조원 규모 체코 두코바니 신규 원전 수주 최종 계약 시 해외 원전 SW 검증도 기회가 될 수 있다.

K방산 질주로 최근 3년간 연평균 36%의 매출 증가를 기록 중이다. 유럽, 아프리카, 중동, 동남아시아 등 해외 무기체계 수출이 증가하고 있어 올해 100억원 정도 매출이 기대된다. 배 대표는 “전차의 경우 한국과 외국의 지형이 다르듯 그 나라에 맞춰 SW가 변경하기 때문에 무기 다변화가 SW 검증 실적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오병욱 과장이 청년친화강소기업 인증패 등을 보여주고 있다. 성남=윤현주 기자

오병욱 과장이 청년친화강소기업 인증패 등을 보여주고 있다. 성남=윤현주 기자

전방산업 선도 기업과 이미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현대차와 하이브리드 차량 제어 로직 개발을 했고,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미사일 운용체계 SW 검증을 했다. 두산에너빌리티와는 신고리 5,6호기 안전설비 SW 검증 실적이 있다. ‘대기업 디지털 전환 파트너’라고 볼 수 있는데 순수 자체 기술로 국산 솔루션을 개발했고, 국내외 지적재산권이 130개(특허 등록 55개, 출원 75개) 있다. 23년 업력답게 약 2000건의 업무 수행 경험이 있다.

이동규 선임이 차량 검증 자동화 부품을 점검하고 있다. 성남=윤현주 기자

이동규 선임이 차량 검증 자동화 부품을 점검하고 있다. 성남=윤현주 기자

슈어소프트테크는 화이트박스 테스팅 원천기술을 보유했다. 모든 제품 라인업의 소스코드를 글로벌 수준으로 결함 없이 파악하고, 클릭 하나로 시험 업무 자동 수행 등 편리성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경쟁력을 바탕으로 화이트박스 시장에서 종횡무진하고 있다. 화이트박스란 쉽게 말하면 내부를 들여다보고 진단하는 것으로 SW 내부 구조를 다 뜯어보고 조건별로 체크를 꼼꼼히 하는 것으로 병원에 환자가 가면 MRI와 CT를 찍으며 정밀 검진을 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쉽다. 이 회사는 작년 말 기준 임직원 468명 중 86%가 SW 전문 인력이다.

해외 시장도 놓치지 않는다. 미국(2014년)과 중국(2017년)에 지사를 설립했는데 해외 SW 검증 시장을 정조준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아직 매출의 유의미하진 않지만, 중국은 작년 5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중국 제일자동차 등 거래처만 34곳을 확보했다. 일본에서도 작년 대리점을 만들었고 올해 유럽 중량급 기업과 ‘동맹(얼라이언스) 계약’이 8부 능선까지 왔다. 글로벌 마케팅에 도움이 될 것으로 사측은 판단하고 있다.

신현지 전임이 신기술 SW 상장패를 보고 있다. 성남=윤현주 기자

신현지 전임이 신기술 SW 상장패를 보고 있다. 성남=윤현주 기자

국내 첫 AI 검증 시장 진출…5년간 연평균 15% 매출 증가

배 대표는 AI 시대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그는 “AI를 SW 검증의 생산성을 높이는 데 활용하는 테스트 바이 AI, 그리고 AI 자체의 신뢰성을 검증하는 테스트 오프 AI 두 가지 방향으로 미래 기술 개발에 투자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테스트 바이 AI의 경우, AI가 접목되면 SW 검증 생산성은 50% 높아지는 것으로 자체 실험평가에서 확인한 바 있다. 예를 들어 1000줄짜리 SW 검증에 1시간이 소요됐다면 지금은 1500줄짜리까지 가능한 것이다.

배 대표는 “테스트 오프 AI의 경우, AI가 도덕적·윤리적으로 문제가 없는지 검증도 중요한데, 국내 통신사와 첫 계약(5억원 규모)을 통해 AI 검증 시장 진출한 것에 대해 의미가 있다”고 언급했다. 국내 통신, 금융, 전자 등 AI 서비스를 확장하고 있는 대기업들의 사업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SW 검증 수요 증가와 인수합병(M&A)으로 최근 5년간 연평균 15%의 고성장을 하고 있다. 2010년 매출 317억원, 영업이익 45억원에서 지난해 매출 888억원, 영업이익 79억원으로 180.13%, 75.56% 증가했다. 5년간 평균 영업이익률은 16.32%로 1억원의 매출을 올리면 1632만원을 남긴다. 특히 2023년 8월 229억원(지분 43.7%)을 주고 첫 M&A를 진행한 빅데이터 전문 기업 모비젠의 경우 연결 재무제표 편입 효과도 상당했다. 모비젠(현 지분 50.5%) 작년 매출만 330억원(영업손실 10억원)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신승범 팀장이 네트워크 검증 장비를 살펴보고 있다. 성남=윤현주 기자

신승범 팀장이 네트워크 검증 장비를 살펴보고 있다. 성남=윤현주 기자

배 대표는 “국내 스타트업 투자는 벤처캐피털과 연계하고, 현재 해외 SW 회사를 인수하려 살펴보는 단계다”며 “우리 사업 방향과 시너지가 난다면 언제든지 공격 M&A로 회사 덩치를 불리겠다”도 강조했다. 이를 통해 2030년 매출 1조원 기업으로 거듭난다는 것이다. 다소 허황될 수 있지만 작년 말 기준 현금성 자산(단기금융상품 포함) 408억원, 유형자산 460억원을 갖고 있어 현금 동원력은 충분하다. 혹시 부족한 자금은 유상증자로 메꿀 것이냔 질문엔 “지분 희석과 주주 가치가 훼손되는 건 경계한다”며 가용 자금 내에서 M&A를 진행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슈어소프트테크 주가 월봉 그래프 캡처.

슈어소프트테크 주가 월봉 그래프 캡처.

주가는 고점 대비 70% 폭락…“SW 검증 산업군 영업 확대”

실적 고공 행진에도 주가는 내리막길이다. 1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4400원으로 2023년 5월 고점(1만4900원)보다 70.47% 폭락했다. 2023년 4월 상장해 벌써 2년을 넘긴 만큼 탄탄한 성장과 전략적 M&A로 실적·주가 퀀텀점프를 노린다. 이를 통해 올해 1000억원 매출, 내년 1500억~2000억원 매출 등 단계적으로 배 이상 성장을 꿈꾼다.

김현우 전임이 도구 CT를 보며 차량용 제어기를 검증하고 있다. 성남=윤현주 기자

김현우 전임이 도구 CT를 보며 차량용 제어기를 검증하고 있다. 성남=윤현주 기자

투자 긍정 요인으로는 조선, 철도, 로봇, 의료 등 SW 검증 도입 산업군이 다양해지고 있다. 작년 신산업 매출은 61억원 수준이었다. 올해 두 자릿수 이상 성장을 기대하고 있다. 최종적으로는 해당 산업군마다 매출 50억원이 찍히는 것이다.

또 임직원 90%가 SW 전문 인력인데 빅데이터·AI 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있고, 내년까지 약 400억원을 투자해 3년 뒤 빅데이터·AI 600억원 매출을 목표로 한다. 작년 AI 모델 검증 도구를 출시했고 학계와 연구개발(R&D) 파트너십을 통해 원천 기술 연구도 다양하게 진행 중이다.

김혁태 사원이 ESG 우수 중소기업 인증패를 자랑하고 있다. 성남=윤현주 기자

김혁태 사원이 ESG 우수 중소기업 인증패를 자랑하고 있다. 성남=윤현주 기자

국내 산업은 성장세고 주목할 만한 경쟁사도 없다. 다만 SW 핵심 인력 확보가 큰 과제다. 대기업 자금력에 비해 인건비를 후하게 줄 수 없는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사측은 해외 고급 인재를 유치하기 위한 노력도 분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새로운 AI 기술이 나와 미래엔 사업 모델을 위협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AI가 우리를 대체하기 전에 우리가 AI를 선도하자”는 게 배 대표의 생각이다. 큰 기회이자 예측하지 못한 위험이 될 수 있는 ‘양날의 검’인 AI에 대해 자금력을 쏟아붓는 이유이다.

빅데이터 사업 영역 확장에 속도를 내고 있다. 자회사 슈어데이터랩은 빅데이터 기반 돌봄 서비스 기술을 보유했는데 슈어이케어 시스템으로 전력 사용 빅데이터 패턴 분석을 통한 독거노인 생활 안전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 또 모비젠과 기술 협업으로 AI 검증 기술 공동 개발로 시장 선점에 나선다.

SQA실 직원들이 테스트 프로세스 리뷰 회의를 하고 있다. 성남=윤현주 기자

SQA실 직원들이 테스트 프로세스 리뷰 회의를 하고 있다. 성남=윤현주 기자

총 주식 수는 5261만 9061주로 배 대표(지분 33.54%) 외 특수관계인 7인이 지분 40%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이중 오승욱 최고기술책임자(2.74%), 최경화 연구소장(0.93%)이 창업 멤버다. 현대차 7.32%, 자사주 0.81%, 외국인 1.9%로 사실상 유통 물량은 50% 정도다. 현대차가 2대 주주인 이유는 2008년 자동차 검증 프로젝트로 인연을 맺었는데 총 2회에 걸쳐 52억원을 투자한 후 보유 지분 절반가량은 매각했다. 현재 잔여 지분 가치는 169억원으로 투자 당시보다 7배 가까이 뛰었다.

등록금도 교회 장로가 내준 흙수저…“현대가 5000만원 프로젝트가 사람 살려”

13일 기준 777억원 주식 부자인 배 대표는 소위 말하는 ‘흙수저’ 출신이다. 수원 지역 과학고와 KAIST 박사 출신으로 공부 머리는 대한민국 상위 1%에 해당할지 몰라도 경제력은 하위 1%에 해당됐다. 그는 “중학교 등록금은 교회 장로님이 내주시고, 미술 선생님이 국가 장학금 받게 추천서도 써주실 정도로 집안 형편은 녹록지 않았다”고 과거를 회상했다. 2남1녀 중 장남인 그가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는 압박도 상당했음을 짐작케 한다.

김건식 팀장이 차량 주행 성능 평가 자료를 보고 있다. 성남=윤현주 기자

김건식 팀장이 차량 주행 성능 평가 자료를 보고 있다. 성남=윤현주 기자

돈은 없지만 창업에 대한 열망은 끓어올랐다. 2002년 3월 5일 회사를 세웠는데 자본금이 없어 학교 선배가 1억5000만원을 빌려줬다고 한다. 사무실도 다른 회사 프로젝트를 도와주면서 더부살이를 했다. 배 대표를 포함한 5인의 창업 멤버는 2층 침대를 4개 놓고 사무실에서 먹고 자며 코딩 작업에만 몰두했다. 1억5000만원의 자본금은 1년 만에 사라졌다. 여기저기서 투자도 받고 벤처캐피털 지원에 매달려보기도 했지만 창업 후 6년은 그야말로 보릿고개였다.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집에도 생활비를 가져다 주지 못하는 생활의 연속이었다. 연구과제 실적과 정부 R&D 프로젝트 등으로 연명하고 있었다.

하지만 2008년 현대차 SW 프로젝트 발주로 당시 10여명의 동료들이 숨통이 트이게 됐다고 한다. 금액은 5000만원 정도였지만 이를 발판으로 다른 대기업들과 의미 있는 계약이 이어졌다. 배 대표는 “현대차가 사람을 살린 거나 다를 바 없다”며 대기업 투자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빨간색 쏘나타를 주로 타는 그는 “운전하는 재미는 쏘나타만한 게 없다”고 웃기도 했다. 현대차는 지금도 귀인이다. 2008년 5000만원 실적이었지만 지난해 말 기준 현대차 계열사 포함 300억원의 매출을 올려주는 VIP다.

권민혁 실장이 아콘Z 퍼징 하드웨어를 점검하고 있다. 성남=윤현주 기자

권민혁 실장이 아콘Z 퍼징 하드웨어를 점검하고 있다. 성남=윤현주 기자

LS증권 “원전·방산 등 관련 산업 호조”…목표가는 제시 안해

청춘들에게 인생 조언을 부탁하자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이 없으면 뭔가를 이루기 쉽지 않은 게 사실이지만, 20년 넘게 사업을 하고 50세가 넘어 확신한 게 자본주의도 결국 사람이 만드는 것이다”며 “선한 마음을 갖고 서로 도우려는 좋은 사람들이 세상을 바꿔갈 수 있기에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 서로 도우려는 마음을 품으면 복이 온다”고 답했다. 사업가는 셈법을 따져 ‘기브 앤 테이크’를 우선할 것 같지만, 배 대표는 돌발 상황이 생기면 돈 안 따지고 그 일에 몰두해 완벽한 처리를 하는 것에 만족한다고 한다. 이 때문에 한 번 고객이 된 회사들은 20년 넘게 장기 고객이 됐다고 한다. 업무 시간과 범위를 벗어나도 신뢰를 위해 물불 안 가리는 게 그의 사업 스타일인 것이다.

황규환 팀장이 사내 AI 시스템을 소개하고 있다. 성남=윤현주 기자

황규환 팀장이 사내 AI 시스템을 소개하고 있다. 성남=윤현주 기자

회사를 다섯 글자로 표현해 달라고 하자 “의욕덩어리”라고 답했다. 그는 “우리 직원들은 벤처 정신이 살아있다”며 “눈앞에 닥친 기회나 어려움을 회피하지 않고 팔을 걷어부치면서 달려들기 때문이다”고 강조했다.

인터뷰 말미에 고생한 창업 멤버들과 직원들에게 감사함을 표했다. 특히 “주주총회에 참석한 개인투자자들을 잊지 못한다”며 “주가가 받쳐주지 못해 정말 속상하지만 초심을 잊지 않고 열심히 본업에 매진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AI 시대에도 성장할 수 있는 회사가 되기 위해 마케팅 역량도 강화하고 좋은 동맹 기업도 찾았다”며 “글로벌 SW 기업으로 도약하고 3년 내 실적과 주가 모두 퀀텀점프하는 기업이 되겠다”고 말을 마쳤다.

조은주 전임이 솔루션 개발 테스트를 하고 있다. 성남=윤현주 기자

조은주 전임이 솔루션 개발 테스트를 하고 있다. 성남=윤현주 기자

정우성 LS증권 연구원은 “주요 고객은 현대차 그룹과 중소형 자동차 부품 기업, 방산 부문에서는 한화그룹과 한국항공우주(KAI), 원자력 부문에서는 두산에너빌리티 등이다”며 “M&A를 통한 외형 확대로 매출이 늘고 있고 국내 자동차 전장화 흐름과 전방산업 고객의 부품 국산화 흐름이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별도의 목표주가는 제시하지 않았다.

"현대차 5000만원이 사람 살렸다"…'777억' 부자의 고백 [윤현주의 主食이 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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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윤현주 기자 hyunj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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