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카메라 앞 무표정, 북한 카메라 앞 활짝 — 같은 선수, 다른 표정[청계천 옆 사진관]

20 hours ago 5
백년사진 No. 166

● 같은 사람, 다른 표정

우선 이 글의 제목에 대한 제 생각부터 말씀 드리면, “예수천국 불신지옥” 같은 이분법으로 세상을 보는 거라서 꺼려졌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일단 이렇게 시작해보았습니다. 우리 눈 앞에 보인 북한 여자 축구단의 모습은 분명히 극단적인 형태였으니까 말입니다.

사진 두 장을 나란히 놓아보겠습니다.

북한 여자축구 클럽팀인 내고향여자축구단이 17일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내고향여자축구단은 오는 20일 수원종합경기장에서 수원FC위민과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4강전을 치른다. 변영욱 기자cut@donga.com

북한 여자축구 클럽팀인 내고향여자축구단이 17일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내고향여자축구단은 오는 20일 수원종합경기장에서 수원FC위민과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4강전을 치른다. 변영욱 기자cut@donga.com

한 장은 5월 17일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입니다. 북한 여자 축구 클럽팀 내고향여자축구단이 입국하는 장면인데 현장에서 제가 찍었습니다. 그날 입국한 인원은 선수와 스태프를 합쳐 35명. 당초 AFC에 통보된 예비선수 4명이 빠진 숫자입니다. 사진 속 그들은 누구도 웃지 않았습니다. 시선은 카메라를 향하지 않았고 표정은 굳어 있었습니다. 환영 현수막을 든 실향민들을 비롯한 한국 단체들의 환영 연호에도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입국장을 빠져나갔습니다. 결승을 치르고 24일 출국할 때도 똑같았습니다. 한국 사진기자들의 카메라 앞에서 그들은 끝내 웃지 않았습니다. 수원에서 훈련 도중 아주 잠깐 웃는 모습이 포착된 정도 였습니다.

다른 한 장은 이틀 뒤 평양 순안공항입니다. 북한이 노동신문을 통해 외부에 노출시킨 모습입니다. 같은 선수들인데 이번에는 활짝 웃고 있습니다. 꽃다발을 안고, 손을 흔들고, 카퍼레이드 버스 창밖으로 환하게 미소 짓습니다. 화려한 꽃장식을 한 버스를 타고 평양순안공항을 출발해 시민들이 양손을 번쩍 든 거리를 지나가는 그들은 일사분란하게 웃었습니다.

수원서 AWCL 우승한 北 내고향여자축구단, 평양서 대대적 환영 /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6일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챔피언스리그(AWCL)에서 우승한 ‘내고향여자축구단’ 선수들이 평양에 귀국해 환영을 받았다고 27일 보도했다. 이들은 지난 17일 방남해 수원에서 열린 AWCL 4강전(20일)과 결승전(23일)을 치르고 귀국했다./ 노동신문 뉴스1

수원서 AWCL 우승한 北 내고향여자축구단, 평양서 대대적 환영 /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6일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챔피언스리그(AWCL)에서 우승한 ‘내고향여자축구단’ 선수들이 평양에 귀국해 환영을 받았다고 27일 보도했다. 이들은 지난 17일 방남해 수원에서 열린 AWCL 4강전(20일)과 결승전(23일)을 치르고 귀국했다./ 노동신문 뉴스1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한국 카메라 앞의 얼굴과 평양 카메라 앞의 얼굴이 정반대입니다. ● 사진은 거짓말을 하지 않지만, 사진을 고르는 사람은 거짓말을 할 수 있다

사진은 있는 그대로를 기록하는 것 맞겠죠? 그렇다면 뭐가 진짜인가요? 카메라는 두 순간을 모두 있는 그대로 기록했습니다. 사진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을 겁니다. 인천의 무표정도 진짜였고, 평양의 미소도 진짜입니다.

다만, 사진의 진실은 카메라 셔터가 열린 순간에만 있지 않았을 뿐입니다. 두 사진이 정반대인 이유는 사진기자가 무엇을 찍을지를 선택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피사체가 무엇을 보여줄지 그리고 어떤 표정을 지을지 선택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피사체였던 북한 내고항축구단의 선택이 인천공항에서는 무표정이었고, 평양에서는 웃음이었습니다.

● 감정 표현도 누군가에게 맡겨야 하는 상황

우리가 집에서 제사를 치르는 경우 웃으면 안 됩니다. 엄격하게 적용되는 사회적 룰입니다. 결혼식에서는 웃어야 하고 장례식에서는 울어야 합니다. 사람의 감정 표현은 생각보다 자율적이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어떤 자리, 어떤 상대, 그리고 눈 앞의 카메라가 어떤 표정을 요구하는지를 본능적으로 알고 그에 맞춰 얼굴 표정을 통제하는 상황이 있을 수 있습니다.

북한 선수들이 한국 사람들과 만날 때도 그런 것 같습니다. 최소한 2026년 봄과 여름에는 말입니다. 오랜만에 한국에 온 ‘반쪽’을 환영하는 사람들 앞에서도 웃으면 안 됩니다. 그 규칙이 어디서 시작되었고 누가 정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35명 전원이 두 장소에서 같은 방향으로 표정을 바꿨다는 사실은 사진에 또렷이 남아 있습니다.

● 평양에서 열린 카퍼레이드

한국에서는 시민단체 공동응원단이 폭우 속 경기장 자리를 지켰습니다. “오 필승 코리아”를 “오 필승 내고향”으로 바꿔 부르고, 실향민들이 그리운 고향의 팀을 남쪽 땅에서 본다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재명 대통령도 우승 직후 축하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그러나 평양은 그 환대를 거의 모든 층위에서 거절했습니다. 한국 기자가 “북측”이라고 부르자 코치 리유일은 국호를 제대로 불러달라고 요구하며 회견장을 떠났습니다. 노동신문과 조선중앙TV 어디에도 한국 공동응원단은 단 한 줄, 단 한 컷도 등장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혹시 언급된 게 있으면 댓글로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사진이라는 게 때론 실수로 노출시킬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북한은 대신 성대한 환영 행사를 열었습니다. 평양순안공항에 도착한 선수단은 당과 정부 간부들, 체육인들, 가족들의 환영을 받았고, 꽃목걸이를 걸고 카퍼레이드 버스에 올랐습니다. 그과정에서 선수들은 시종일관 환하게 웃었습니다.

● 노동신문에 실린 결승전 사진은 누가 찍었을까

여기서 잠깐 다른 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노동신문에는 가끔 초점이 완전히 나간 사진이 실립니다. 지난 5월 15일자 노동신문에 실린 김일경 선수 사진이 그렇습니다. 아시아 역도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 3개를 쟁취했다는 자랑스러운 보도인데, 정작 사진은 포커스가 흐려 선수 얼굴조차 알아볼 수 없습니다. 전문가가 아닌, 현장에 따라 나간 코치진이나 수행원들이 찍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움직임이 크고 멀리 떨어져서 찍는 사진의 경우 전문가가 찍느냐 비전문가가 스마트폰으로 찍느냐에 따라 차이가 많이 납니다.

그런데 같은 날짜 노동신문에 함께 실린 AFC U-17 여자축구 결승 진출 사진은 또렷합니다. 차이가 무엇일까요. 답은 단순합니다. AFC(아시아축구연맹)처럼 주최측이 사진을 제공했느냐 여부입니다. 이번 내고향 우승 사진들도 마찬가지로 AFC가 홈페이지 등에 올린 사진이 노동신문에 실렸습니다.

북한에도 사진기자가 있습니다. 2026년 현재 기준 노동신문에 대략 15명 전후가 있는 것 같습니다. 북한에도 각종 신문과 뉴스통신사가 있고, AP 소속 북한인 사진기자도 있고 하니 전국적으로 100명~200명 정도의 사진기자가 있지 않을까 추정합니다. 한국의 경우 신문 쪽이 약 450명, 인터넷 매체 약 350명 수준인 것과 비교하면 작은 규모지만 분명히 존재합니다.

이들은 나라의 월급을 받으며 살고, 그래서 당이 원하는 방식의 사진을 찍습니다. 미사일 발사 실험, 건축물 준공, 식료품 창고가 가득 찬 모습. 때로는 장진강에 뗏목이 흐르는 풍경, 아름다운 농촌, 편안해 보이는 유치원도 찍습니다. 그렇지만 정치적 의미가 있지 않은 스포츠 경기만을 찍기 위해 해외로 사진기자가 출장가는 경우는 거의 없어 보입니다. 이번 결승전에도 북한 사진기자는 오지 않았던 것으로 현장의 한국 기자들은 파악했습니다.

지난 24일 북한 평양 거리에서 북한 주민들이 내고향여자축구단의 2025-26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 챔피언스리그 우승 소식이 실린 노동신문을 읽고 있다. 평양=AP 뉴시스

지난 24일 북한 평양 거리에서 북한 주민들이 내고향여자축구단의 2025-26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 챔피언스리그 우승 소식이 실린 노동신문을 읽고 있다. 평양=AP 뉴시스

노동신문과 북한 방송은 주최측인 AFC가 제공한 사진을 사용했습니다.

북한 사진기자들은 평양순안 공항에 도착한 이후부터 북한 여자 축구 선수들의 모습을 촬영했습니다.

● 카메라 뒤에서 한 번, 카메라 앞에서 또 한 번 선택되는 표정

같은 피사체 다른 표정을 보면서 사진을 선택하는 일은 현장의 사진기자와 사무실 안의 에디터들만의 역할은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카메라 렌즈 앞에 서 있는 피사체도 사진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북한 선수들은 한국 카메라 앞에서 웃지 않았고, 평양 카메라 앞에서 웃었습니다. 찍히는 쪽에서 자기가 어떻게 보일지를 정한 겁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6일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챔피언스리그(AWCL)에서 우승한 ‘내고향여자축구단’ 선수들이 평양에 귀국해 환영을 받았다고 27일 보도했다. 이들은 지난 17일 방남해 수원에서 열린 AWCL 4강전(20일)과 결승전(23일)을 치르고 귀국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6일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챔피언스리그(AWCL)에서 우승한 ‘내고향여자축구단’ 선수들이 평양에 귀국해 환영을 받았다고 27일 보도했다. 이들은 지난 17일 방남해 수원에서 열린 AWCL 4강전(20일)과 결승전(23일)을 치르고 귀국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뉴스성이 있어 한국과 북한의 카메라가 관심을 갖고 팔로우를 했던 북한 선수들의 무표정과 미소는 누구의 선택이었을까요. 한국에서도,평양에서도 일사분란했던 선수들의 표정이 현재의 남북관계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러운 감정을 담는다는 것이 이렇게도 어려운 일이구나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 계기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좋은 댓글로 여러분의 생각을 나눠주시길 바랍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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