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이스토리, 니모를 찾아서, 인크레더블, 인사이드아웃 등으로 유명한 미국의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는 애니메이션 업계 종사자라면 누구나 선망하는 회사입니다. 그런데 이런 회사를, 애니메이션 감독 에릭 오(40·한국 이름 오수형)는 7년간 근무하다 제 발로 떠났습니다.
당시 그는 한창 실력을 인정받으며 달려 나가고 있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입사한 동료들 가운데 가장 빠르게 주요 캐릭터를 맡았고, 특히 ‘도리를 찾아서’에서는 구현하기 가장 까다롭다는 문어 캐릭터 ‘행크’를 만들어 냈습니다.
이대로 픽사에 머물러 있어도 꽤 성공한 인생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가 퇴사를 선택한 것은 애니메이터가 아닌 ‘애니메이션 감독’이라는 오랜 꿈을 좇기 위해서였습니다. 픽사라는 거대한 크루즈 선에서 튜브 하나 걸치고 망망대해에 뛰어내린 격입니다. 그는 꿈꿔왔던 길을 걷고 있을까요? <브렉퍼스트>팀은 에릭 오 감독의 인터뷰를 통해 그의 항로를 따라가 봤습니다.온탕과 냉탕 거쳐 합격한 ‘픽사’
‘나만의 애니메이션은 뭔지 정의를 내려보고 싶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대학원에서 공부하던 20대 중반의 청년은 어느 날 가슴 설레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바로 픽사에서 인턴을 뽑는다는 것.날고 기는 사람들도 픽사 인턴에 뽑히기 위해 맞춤형 포트폴리오를 준비한다는데, 오 씨는 그 정도로 준비된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급한 대로 그간 만들었던 작품을 2~3분 정도로 편집한 작품 모음집을 만들어 지원서를 냈습니다. 지원을 했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완전히 말도 안 되는 일’이 그에게 일어났습니다. 결과는 합격. 그렇지만 기쁨은 잠시뿐이었습니다. 12주간 진행되는 픽사 애니메이션팀 인턴십 프로그램의 채용 전환 인력은 단 두 명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입니다. 그는 체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저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픽사에 입사하기 위한 준비를 이미 완벽하게 했더라고요. 저는 인턴십 기간 첫 몇 주 동안 많이 헤맸고요. 픽사에 남을 수 없다는 것이 그냥 결정된 것 같았어요. 그래도 ‘인턴십 하는 12주간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다 얻어가자’라고 생각하며 열심히 했죠.”
그가 ‘감을 잡았다’고 생각한 건 인턴십 기간이 끝나갈 무렵이었습니다. 애니메이션 ‘업’에 나오는 골든리트리버 캐릭터 ‘더그’를 혼자 만들어 보다, ‘멘토들이 얘기했던 게 바로 이거구나’하고 감이 오더랍니다. 누가 보기에도 그럴싸한 결과물이 나왔고요. 하지만 최종 결과가 바뀌기에는 이미 늦었고, 오 씨는 그렇게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 했습니다.좌절을 맛본 그는 진로를 고민하며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여행한 지 한 달 반이 됐을 무렵, 그에게 한 번 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픽사로부터 ‘아직 다른 곳에 고용되지 않았다면 픽사로 오라’는 연락을 받은 것이었죠. 픽사는 그가 가진 잠재성에 주목했습니다. 오 씨가 인턴 기간 보여준 성장 속도를 고려할 때, 픽사에서 일하게 되면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좋은 결과물을 낼 것이라 본 겁니다.
까다롭기로 소문난 문어 캐릭터 ‘행크’를 낳다
픽사에서 오 씨는 ‘애니메이터’로 일했습니다. 애니메이터가 생소한 독자분들께 간략하게 설명해 드리자면 애니메이터는 캐릭터가 표정을 짓고 움직이도록 만듭니다. 배우가 연기하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예컨대 애니메이터가 할아버지 캐릭터를 맡았다면 그 캐릭터의 걸음걸이, 표정, 각종 동작을 구현하는 것이죠. 끼와 능력이 있으면 신인 배우가 한순간에 주연을 맡게 되는 것처럼, 경력이 짧더라도 능력이 있는 애니메이터는 주요 캐릭터나 중요한 장면을 빠르게 맡게 된다고 합니다.오 씨가 그런 사례였고요. 픽사의 예상이 맞았던 것이었죠.
픽사에서 오 씨가 구현한 대표적인 캐릭터는 ‘도리를 찾아서’의 문어 캐릭터인 ‘행크’를 꼽을 수 있습니다. 문어는 끊임없이 몸을 수축하고 확장하며 굉장히 유연하고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특성이 있죠. 게다가 픽사는 현실을 잘 고증하는 것으로 알려진 스튜디오고요. 그런 의미에서 행크는 애니메이터들이 부담스러워하는 캐릭터였습니다. 실제 문어의 움직임을 그대로 구현하면서 애니메이션 특유의 연기적인 요소도 넣어야 했으니까요.그런 행크를, 픽사는 오 씨에게 맡겼습니다. 주목받는 애니메이터였던 그에게도 행크는 힘든 과제였습니다. 행크를 구현해 내는 데만 꼬박 2년여의 시간이 걸렸다는데요. 그는 문어 전문가의 강의를 들으며 문어는 감정에 따라 어떤 행동을 취하는지, 몸 색깔은 어떻게 바뀌는지 공부도 하고요. 미국 몬터레이베이 수족관에 가서 문어를 직접 만져보기도 했다고 합니다.
“영화 ‘도리를 찾아서’를 보면 행크가 파이프를 잡고 날아다니면서 매달렸다가 어디론가 기어들어 가기도 하는, 역동적인 장면이 있어요. 10여 초 되는 움직임을 전통적인 수작업 방식으로 구현했는데, 정말 힘들었어요. 그랬던 만큼 ‘행크는 내 자식이야’라고 할 수 있게 됐죠.”
“문어에 관한 공부를 정말 많이 하다 보니 더 이상 문어를 먹을 수 없겠더라고요. 문어가 정말 똑똑한 생명체거든요.”
두려움을 딛고 픽사를 떠난 원동력은
직장 생활 3년 차, 6년 차, 9년 차에 퇴사 고비가 한 차례씩 지나간다고 하던가요. ‘꿈의 회사’에서 한창 실력을 인정받으며 근무한 지 5년 정도 됐을 무렵, 그의 마음 한편에서도 퇴사에 대한 마음이 스멀스멀 피어났습니다.“제가 만약 더 멋진 애니메이터로 성장하겠다는 꿈을 꾸고 있었다면, 픽사에 뼈를 묻을 생각을 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애니메이터로 일하면서도 ‘난 감독이어야 하는데, 내 연출을 해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픽사를 떠나기가 너무 두려운 거예요. 쉬운 결정이 아니어서, 실제로 픽사에서 퇴사하는 데까지 2년이 더 걸렸어요.”
마침 픽사에서 함께했던 마음 맞는 동료들이 오 씨보다 먼저 퇴사해 ‘톤코하우스’라는 작은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차렸고, 그에게 감독으로서 일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그렇게 그는 퇴사라는 결단을 내렸고요.
그런데 퇴사를 한 달가량 앞둔 시점, 그의 굳건했던 퇴사 결심도 잠시 흔들렸습니다. 라따뚜이, 인크레더블, 아이언 자이언트 등을 연출한 업계의 거장, 브래드 버드 감독이 픽사로 돌아온다는 소식 때문이었습니다.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버드 감독이 들어온다는 소식을 들으니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나가면 감독으로 활동하게 되는 것이긴 하지만, 작은 단칸방 같은 곳에서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작업을 해야 하는 것이었거든요. ‘용의 꼬리냐, 뱀의 머리냐’ 두 갈림길에 서 있던 셈이었죠. 그런데 ‘지금이 아니면 못 나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감독으로서 여정을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골방에서 대상까지
2016년, 드디어 애니메이션 감독으로서 첫발을 뗀 오 씨는 ‘댐 키퍼 포엠즈(Pig: The Dam Keeper Poems)’라는 시리즈물을 만들었습니다. 빡빡한 예산 속에서, 약 1년간 밤낮없이 작업한 결과물이었습니다. 그는 회상했습니다. ‘그 시간이 굉장히 행복하면서도 정말 힘들었다’고요.“사실 용감하게 픽사에서 나오긴 했지만, 그 결정이 옳은 결정이었다고 항상 확신할 수는 없었거든요. 저는 픽사에서 나와 골방에서 이것저것 하고 있는데, 제 친구들은 브래드 버드 감독과 신나게 작업하고 있는 것 아니겠어요? 현타(현실 자각 타임)가 오더라고요. ‘그래도 이런 거를 하는 게 나한테는 소중한 일이니까’라고 생각하며 꾸역꾸역 완성까지 해냈죠.”
현타는 곧바로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작품은 정말 열심히 만들었는데, 픽사나 디즈니와는 다르게 일본과 프랑스에서만 개봉할 수 있었고요. 작품에 대해서도 그가 직접 일일이 설명해야 했습니다. ‘픽사에서 퇴사한 게 옳은 결정이었을까.’머릿속에 맴돌던 생각은 2018년이 되어서야 확신으로 바뀌었습니다. 프랑스 안시 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에서 TV 프로덕션 부문 최고상인 ‘크리스탈’ 상을 받으면서요. 이 부문에서 한국 아티스트가 상을 받은 건 영화제 역사에서 처음이었습니다.
“상상도 못 했던 최고상을 받았잖아요. ‘에릭, 너 정말 픽사에서 잘 나왔고, 계속 너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도전을 계속해 봐’라는 사인처럼 느껴졌어요. 그때부터 스스로에 대한 의구심을 지우고 힘차게 스토리텔러의 길을 가보자라고 생각하게 됐죠.”
그렇게 오 씨는 픽사의 애니메이션과는 전혀 다른, 자신만의 작품의 길을 개척해 나갔습니다. 메타와 협업해 ‘나무’라는 작품을 만들어 가상현실(VR)로 체험 형식의 스토리텔링을 구현하기도 했고요.
작가로서의 시선을 개인적인 경험을 넘어 사회 구조로 확장해 ‘오페라’라는 작품도 만들었습니다. 오페라는 2021년 한국 애니메이션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 아카데미상 단편 애니메이션 부문 최종 후보로도 올랐습니다.
“오페라는 우리 인류가 정말 나아지고 있는지, 아니면 그저 똑같은 역사를 되풀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보여주고자 만들었어요. 처음과 끝이 없는, 러닝타임이 없는 콘텐츠인데요. 영화관에서도 감상할 수 있지만 전시관에서도 감상할 수 있는 독특한 형태의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에서 아카데미가 주목했던 것 같아요.”
사실 처음부터 오페라를 영화제에 낼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콘텐츠 형식상 작품을 전시관에서 선보이는 편이 더 알맞겠다는 생각에 전시용 작품으로 준비하고 있었는데, 문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면서 모든 전시장이 문을 닫았다는 것이었습니다.“오페라라는 작품을 만드는 데 거의 4년이 걸렸거든요. 그런데 이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 플랫폼이 다 셧다운 돼버린 거예요. 굉장히 좌절스러웠어요. 고민 끝에 편집을 통해 영화 버전을 만들었고, 그나마 비대면으로라도 활성화돼 있는 영화제에 출품하기 시작했죠. 그런데 영화제에서 인정을 받기 시작하더라고요. 정말 사람 일은 알 수 없구나 싶었어요.”
그는 올해 제주도에서 대형 미디어 체험전 상설 전시를 통해 드디어 ‘전시 버전’의 오페라를 선보였습니다. 재해석 과정을 통해 오페라뿐 아니라 그의 작품 일곱 개가 음악과 함께 전시장 내 각기 다른 공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돌아가도록 기획했습니다. 단순 애니메이션을 넘어 미디어아트로 확장된 셈입니다.
“제 출발점이 담긴 곳에서 전시를 시작해도 좋겠다고 생각해 한국에서 전시를 기획하게 됐어요. 전시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것과 폐허가 잘 어울린다고 판단해서 일부러 전시할 공간으로 폐허만 찾아다니다 제주도에서 알맞은 장소를 발견했고요. 어떤 이야기든 그것에 맞는 옷이 따로 있는 것 같아요.”
그는 애니메이션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움직이는 그림.’ 너무 심플하다고요? 그는 ‘움직이는 그림’의 확장성에 주목한다고 했습니다. 멈춘 그림 24장이 이어 붙어 움직임을 만드는 1초의 흐름 이야깁니다.
“움직이는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는 폭이 굉장히 광범위하다고 생각해요. 시간성 아래 흩어지는 개념인 듯하면서도 굉장히 영속돼 있기도 하고, 흐르고 있기도 하면서도 또 정적이기도 하고요. 다양하고 폭넓은 스펙트럼을 갖고 있다는 특성이 제일 멋있는 매력이 아닌가 싶어요.”
“지금까지 장편 스튜디오에서 애니메이터로서 활동해 봤고요. VR도, 전시도 해봤고, 단편 애니메이션도 만들어봤지만, 여전히 안 해본 매체가 너무 많더라고요. 계속 다양하게 저 자신을 신나게 해줄 수 있는 매체를 찾아다니며 도전을 계속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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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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