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리다 억만장자들, 수백억 들여 사립학교 직접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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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플로리다주의 사립학교 더 그린 스쿨의 교육 모습 / 더 그린 스쿨 홈페이지

미국 플로리다주의 사립학교 더 그린 스쿨의 교육 모습 / 더 그린 스쿨 홈페이지

플로리다 남부의 억만장자들과 금융·기술업계 부유층이 사립학교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직접 학교 설립에 나서고 있다. 주택과 오피스 공급보다 교육 인프라가 더 큰 병목으로 떠오르면서 지역 이주 수요와 교육 시장 구조를 함께 바꾸는 흐름으로 번지고 있다.

엄격한 명문 사립보단 테크 캠퍼스 성격

19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최근 캘리포니아에서 플로리다 팜비치로 이주한 부동산 개발업자 제프 그린은 늘어나는 부유층 가정의 자녀를 수용할 사립학교 자리가 부족하다는 점에 주목하고 직접 유치원부터 12학년까지 아우르는 학교 설립에 나섰다. 웨스트팜비치의 그린스쿨은 학급당 교사 2명을 두고, 디지털 대기 시스템에 맞춰 하교가 이뤄지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학교의 성격도 전통적인 사립학교와는 다르다. 캠퍼스에는 3D프린팅 수업과 비행 시뮬레이터가 마련돼 있고, 학생들은 소형 비행기를 직접 제작하고 있다. 테니스 아카데미와 범선 프로그램도 운영돼 기술 교육과 체험형 활동을 결합한 형태를 띤다. WSJ는 이 학교가 엄격한 전통 명문학교보다는 기술기업 캠퍼스나 여름 캠프에 가까운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같은 움직임은 플로리다 남부로 몰려든 기술기업 창업자, 헤지펀드 매니저, 고소득 전문직 가정이 기존 교육 체계에 들어가지 못한 결과다. 마이애미와 웨스트팜비치 일대 사립학교들은 대부분 정원을 채운 상태이며, 증설에 나서고 있어도 새로 유입되는 가정의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자녀가 있는 고소득 가정이 수년짜리 대기명단에 묶이면서 아예 이주를 포기하거나 다른 지역으로 방향을 바꾸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배경에는 플로리다의 인구 이동과 세제 환경 변화가 있다. 최근 수년간 플로리다는 상대적으로 낮은 세금과 따뜻한 기후, 새 주거·업무 인프라를 바탕으로 고액 자산가와 기업 인력을 대거 끌어들였다. 그러나 교육 부문은 이런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스타우드캐피털그룹의 배리 스턴리히트는 코네티컷 본사 인력을 마이애미비치로 옮기고 싶었지만, 직원 자녀들이 들어갈 사립학교 자리가 없어 이전이 어렵다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플로리다주는 최근 사립학교 선택 가정에 학생 1인당 연평균 약 8000달러의 바우처를 지급하는 등 비용 부담을 낮추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부유층에게 핵심 문제는 학비가 아니라 공급 부족이다. 이에 따라 지역 부호들은 수억달러를 들여 사립학교와 차터스쿨을 새로 짓거나 기존 학교 확장을 지원하고 있다.

3D 프린팅 활용 제품 제작까지 경험

실제 학교 설립에는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들어간다. 그린은 웨스트팜비치에서 폐차 매장을 매입한 뒤 인접 부지를 추가로 사들이며 7에이커 규모 부지를 확보했다. 그 과정에서 지붕 공사업체 부지까지 사들였다. 부지 매입과 건설에 5000만달러, 추가 건물에 1000만달러가 투입됐다. 연간 학비는 5만달러이지만, 학생의 절반가량은 재정 지원을 받는다. 그는 과거 연간 200만달러 적자를 봤지만 최근 손익분기점에 근접했다고 밝혔다.

스티븐 로스도 웨스트팜비치 도심 개발과 맞물려 사립학교 2곳을 추진 중이다. 팜비치 서쪽 승마 커뮤니티 웰링턴에 들어설 윙그로브 아카데미는 44만제곱피트 규모 캠퍼스에 공연예술 프로그램과 수영 시설을 포함할 예정이다. 도심에서 8마일 떨어진 곳에도 추가 학교 설립을 계획하고 있다. 로스는 이를 위해 국제 사립학교 어베뉴스스쿨 출신 경영진을 영입하는 등 인력 구성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플로리다의 마라라고 리조트 / 연합뉴스

플로리다의 마라라고 리조트 / 연합뉴스

마이애미비치에서는 기술기업가 존 마셜이 초등학교를 세운 뒤 중학교와 고등학교로 확장하고 있다. 이 학교 베이스캠프305는 로봇공학과 3D프린팅을 활용해 유치원생들까지 장난감 자동차를 직접 만들게 하며 창업가 정신을 강조한다. 학비는 약 3만달러이고 학생 수는 약 50명이다. 교사 연봉은 8만달러 이상으로 지역 사립학교 상단 수준이며, 태국식 볼과 망고 찹쌀밥 같은 유기농 식사도 제공한다. 학생들이 직접 급식을 준비하는 과정에 참여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매년 수백만달러의 적자가 발생하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지역 사회 반발도 커

이 같은 학교들은 지역 사회 반발에도 직면해 있다. 마셜은 운동장 조성을 위해 아르데코 양식의 옛 유스호스텔을 철거하려 했지만, 역사보존위원회가 외관 보존을 요구하면서 계획이 막혔다. 그는 역사적 요소를 복원하겠다고 제안했지만 아직 최종 허가를 받지 못했다. 애덤 뉴먼 부부가 마이애미 엘포털 지역에서 추진하는 학교 SOLFL도 교회 건물을 철거한 뒤 학교를 세우는 과정에서 지역 주민 반발을 샀다. 현재 학생 약 80명은 임시 공간에서 수업을 받고 있으며, 부지 승인을 받기 위한 절차가 진행 중이다.

이 사안은 단순한 지역 교육 뉴스에 그치지 않는다. 고소득층 유입이 주택과 사무실 수요를 넘어 교육 서비스 공급까지 바꾸고 있다는 점에서, 플로리다의 도시 재편이 생활 인프라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명문 보딩스쿨이나 북동부 전통 사립학교가 우위를 점했다면, 이제는 지역 자본이 직접 커리큘럼과 시설을 설계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경쟁 구도가 만들어지고 있다.

다만 모든 신설 학교가 성공을 보장받는 것은 아니다. 새 학교는 우수 교사를 확보해야 하고, 새 교육과정을 설계해야 하며, 100년 넘는 역사를 가진 북동부 사립학교들과 경쟁해 신뢰를 쌓아야 한다. 비영리 형태가 대부분인 것도 이런 이유다. 영리 학교는 초기 투자비가 워낙 커 흑자 전환이 쉽지 않다.

앞으로 봐야 할 것은 이들 학교가 단순히 부유층 수요를 흡수하는 데 그칠지, 아니면 플로리다 교육 지형 자체를 바꿀지 여부다. 동시에 사립학교 좌석 부족이 고소득층 이주의 제약 요인으로 계속 남을지, 그리고 억만장자 주도의 교육 투자가 지역사회와 얼마나 충돌 없이 안착할지도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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