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준비생 이모씨(29)는 낮에는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하고 밤에는 유튜브 채널 두 곳의 영상을 편집한다. 시간급이 아니라 ‘영상 편당 단가’를 받는 구조이다 보니 투입 시간 대비 소득이 최저임금에도 못 미친다. 이씨는 “채널 운영자로부터 카톡으로 실시간 수정 지시를 받으며 사실상 전속으로 일한다”며 “하지만 계약서는 ‘콘텐츠 공급 계약’으로 돼 있다”고 했다. 행여 불이익을 받을까 봐 근로계약서를 쓰자는 말은 꺼내기도 어렵다. 휴가와 퇴직금은 남의 나라 이야기다.
정보기술(IT) 개발자 정모씨(34)는 출퇴근 지옥철과 경직된 회사 생활에 질려 제주로 내려갔다. 회사 다닐 때 인연을 맺은 업체와 관계를 이어가며 안정적인 수입원을 확보했다. 플랫폼을 통해 다른 업체의 의뢰를 받아 많이 벌 땐 연 소득이 1억5000만원에 달한다. 정씨는 “언론에서 플랫폼의 착취 사례가 많이 부각되지만 나에겐 경직된 삶에서 벗어나게 해준 해방구”라며 “불안정한 소득은 자영업을 선택한 대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1953년 틀로 2026년의 노동 현실 재단
똑같이 플랫폼에 의존해 공급 계약서를 쓰고 일하지만 이씨는 ‘보호’가 절실하고 정씨는 ‘자유’가 더 소중하다. 문제는 현행 제도가 이 둘을 구별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플랫폼과 서비스산업 발전으로 프리랜서가 늘고 스펙트럼도 넓어졌는데, 1953년 제정된 근로기준법은 여전히 굴뚝공장 시대에 머물러 있어서다.
국가데이터처 경제활동인구조사의 마이크로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올해 3월 기준 부업 취업자(n잡러)는 57만5000명에 달했다. 2014년 3월 37만7000명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10여 년 새 52.5% 증가했다. 한 가지 정규직 대신 다양한 형태의 노동을 선택하는 사람이 그만큼 늘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현행 근로기준법은 일하는 사람을 ‘근로자’ 아니면 ‘사업주’로 가른다. 이는 이씨같이 보호가 필요한 사람을 사각지대로 내모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해외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불거지자 선진국들은 입법과 판례를 통해 해결책을 찾아가고 있다. 2021년 영국 대법원의 우버기사 판결이 대표적이다. 영국은 1996년 고용권리법을 제정하면서 근로자도 자영업자도 아닌 회색지대의 노동자를 ‘워커(worker)’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정의했다. 워커는 근로자만큼 강력한 해고 보호는 받지 못해도 최저임금, 유급휴가 등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받도록 했다. 영국 대법원은 2021년 출퇴근은 자유롭지만 알고리즘에 의해 통제받는 우버 기사를 워커로 규정했다.
프랑스 이탈리아 캐나다 등에서도 유사근로자, 의존적 자영업자 등으로 개념을 세분화해 보호망을 재정비하려는 논의가 활발하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산업별 단체협약시스템이 잘 마련된 독일은 근로기준법 등을 확대 적용하기보다 노사 협의를 통해 취약근로자를 보호하는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근로자의 울타리 안으로
반면 한국에서는 새로운 형태의 노동자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라는 울타리 안으로 밀어 넣으려고 한다. 정부 여당이 추진하는 ‘근로자추정제’가 대표적이다. 배달 라이더 등 특수형태근로종사자가 퇴직금 등을 받기 위해 ‘근로자성’을 주장할 경우 일단 근로자로 추정하는 제도다. 이견이 있으면 ‘근로자가 아님’을 사용자가 입증해야 한다.
경제계에선 산업 특성을 감안하지 않은 이런 시도가 오히려 일자리를 감소시킬 것이라고 우려한다. 택시산업에서 이미 한 차례 경험했다. 정부는 택시 ‘사납금제’의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해 택시발전법을 통해 월급제 전환과 최저임금 적용을 강제했다. 그러자 택시 회사들은 운행 택시와 근로 시간을 크게 줄였다.
박 교수는 “그런 면에서 근로자추정제는 노동시장의 흐름과 충돌한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정부가 패키지로 추진 중인 ‘일하는 사람 기본법’은 국제적인 입법 추세에 부합한다고 평가했다. 노무제공자에게 안정적 계약 체결, 차별 금지, 휴식권 보장, 안전 및 보건 등 ‘보편적 권리’를 보장하는 법이다.
곽용희 기자

2 day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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