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여름 과일 중 하나는 단연 멜론이다. 특히 샤랑트멜론은 프랑스 대표 품종으로, 한국의 머스크멜론보다 크기는 작지만 향은 훨씬 진하다. 좋은 멜론은 칼을 대기 전부터 향으로 알아볼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멜론의 수도로 불리는 곳은 프로방스의 작은 도시 카바용이다. 매년 7월이면 멜론 축제가 열린다. 프랑스 사람들은 잘 익은 멜론을 생햄과 함께 전채요리로 즐기는데, 여름철 식탁에서 빠지지 않는 풍경이다.
한국인 여행자들 사이에서 소문난 납작복숭아는 프랑스의 인기 과일이다. 당도가 높고 산미가 적어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모두 좋아한다. 여름이면 슈퍼마켓과 시장에서 가장 먼저 품절된다. 살구는 시장을 걷다 보면 가장 먼저 향으로 존재를 알리는 과일이다. 론 계곡과 드롬 지방에서 생산되는 살구는 향이 진하고 과즙이 풍부하다. 프랑스인들은 살구를 타르트나 잼으로 만들어 즐기는 것을 좋아한다.
8월이 되면 프랑스 북동부 로렌 지방은 황금빛 과일로 물든다. 바로 미라벨이다. 노란 자두처럼 생긴 작은 과일로, 프랑스 전체 생산량의 대부분이 이 지역에서 나온다. 미라벨은 지역의 자부심에 가깝다. 수확철이 되면 메스와 낭시에서는 축제가 열리고, 거리에는 미라벨 타르트와 잼, 증류주가 넘쳐난다. 미라벨은 프랑스인들에게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긴 특별한 과일이다. 미라벨을 보면 할머니집 정원과 여름방학이 떠오른다고 한다.여름의 마지막을 알리는 과일은 무화과다. 특히 지중해 연안의 솔리에스퐁에서 생산되는 보라색 무화과는 프랑스 최고의 품질로 평가받는다. 치즈와 함께 먹거나 오리 요리에 곁들이고, 잼으로 만들어 아침 식탁에 올리는 경우도 많다.
흥미로운 점은 프랑스인들이 과일을 소비하는 방식이다. 한국과 달리 계절에 따라 기다렸다가 먹는 문화가 여전히 강하다.
이런 제철 문화는 프랑스 곳곳에서 열리는 재래시장에서도 잘 드러난다. 대형마트 과일은 장거리 운송과 유통을 위해 덜 익은 상태에서 수확하거나 냉장 보관을 오래 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시장에서는 “오늘 먹을 거예요”라고 말하면 상인이 가장 잘 익은 과일을 골라 준다. “내일 먹을 거면 이걸 가져가라”면서 익은 정도에 맞춰 권해 주기도 한다. 그래서 여행자라면 프랑스에서 과일을 맛볼 때 재래시장을 찾기를 권한다. 실패할 확률이 훨씬 작다. 프랑스의 여름 시장은 단순한 장터가 아니다. 지역의 풍토와 계절, 그리고 프랑스인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보여주는 작은 여행지에 가깝다. 멜론 향이 골목을 채우고, 납작복숭아가 바구니 위에 수북이 쌓이며, 황금빛 미라벨이 햇빛 아래 반짝이는 풍경 속에서 프랑스인들은 짧은 여름을 만끽한다. 어쩌면 프랑스인들이 여름을 기다리는 가장 큰 이유는 휴가가 아니라 시장에 다시 돌아온 제철 과일들 때문인지도 모른다.정기범 작가·‘저스트고 파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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