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리스트가 활을 긋자 객석의 공기는 낮게 가라앉았다. 지휘자의 손짓을 따라 음악은 어둠에서 빛으로, 서두르지 않고 나아갔다.
지난 8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홍석원이 지휘한 한경아르떼필하모닉은 엘가 첼로 협주곡과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을 올렸다. 감정의 즉각적 분출보다 작품 내부의 구조와 진행 논리를 앞세운 무대였다. 엘가에서는 절제된 회고의 어법이, 차이콥스키에서는 주제 선율의 순환을 끝까지 밀고 가는 지휘자의 시야가 돋보였다.
1부의 협연자로 나선 첼리스트 문태국은 엘가 첼로 협주곡을 낭만적 비탄의 장면으로 확대하지 않았다. 그는 자클린 뒤 프레 이후 이 작품에 덧씌워진 오열의 이미지와 거리를 두고, 말년의 엘가가 남긴 절제와 품위의 감각에 가까이 다가갔다. 첼로는 울부짖기보다 말을 건넸고 노래해야 할 순간에도 감정을 한꺼번에 풀어놓지 않았다.
1악장 초반 첼로 음색은 다소 건조하게 다가왔다. 완전히 열린 공명이라기보다 선의 윤곽을 먼저 세우는 쪽에 가까웠다. 그러나 화음을 굴려내는 오른손은 선율의 흐름을 해치지 않았고, 비올라가 놓은 주제를 첼로가 이어받는 대목도 자연스러웠다. 다만 주선율 내부의 리듬적 동요가 더 살아났다면 엘가 특유의 무심한 슬픔은 한층 깊어졌을 것이다.
3악장은 긴 활 끝에 남는 잔향, 프레이즈 말미의 무게, 비브라토의 미세한 농담으로 고백의 밀도를 만들어냈다. 후반부 첼로와 오케스트라가 하나의 호흡으로 번지는 순간은 이날 협연에서 가장 아름다운 대목이었다. 피날레의 레치타티보(말하듯 연주하는 대목)는 자유로우면서도 형식을 흐트러뜨리지 않았고, 되풀이되는 주제에는 활기와 씁쓸함이 함께 배어 있었다. 마지막 회상과 종결도 슬픔에 함몰되지 않은 채 단정하게 마무리됐다.
공연의 무게는 2부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에서 더 커졌다. 홍석원의 구상은 명확했다. 감상주의적 비장미로 몰아가기보다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 선율을 축으로 삼아 하나의 순환적 드라마로 조직했다.
1악장 서주는 무겁게 가라앉았으나 장송곡처럼 과장되지 않았다. 홍석원은 템포를 느리게 잡아 음형 하나하나를 또렷이 발음하게 했고, 성부를 따로 들리게 해 수직적 구조까지 명확히 드러냈다. 켜켜이 쌓인 긴장은 클라이맥스에서 거대한 스케일을 얻었고, 음악은 끌려가기보다 넓게 펼쳐졌다.
2악장 호른 독주는 아리아처럼 노래했다. 중간부의 고조에서는 오페라적 색채가 살아났다. 주제 선율의 난입은 절망의 외침이라기보다 음악의 문을 밀고 들어오는 사건처럼 다가왔다. 3악장 왈츠는 희미한 회상이 아니라 살아 있는 춤이었다. 홍석원은 이 악장을 피날레 앞의 완충지대로 흘려보내지 않고, 주제 선율이 다른 표정으로 몸을 숨기는 장면처럼 처리했다.
피날레에서 홍석원은 확실한 장악력을 보였다. E장조의 시작은 억지로 덧칠한 승리가 아니라 앞선 악장들이 축적한 긴장의 귀결처럼 놓였다. 홍석원은 마지막 코다를 향한 계단을 정확히 알고 있었고, 승리로 나아가는 과정을 과시적 음향으로만 연출하지 않았다.
이날 무대에 남은 것은 뜨거운 감정의 흔적보다, 음악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확신이었다. 문태국의 첼로는 슬픔을 낮고 차분하게 가라앉혔고, 홍석원의 지휘는 그 어둠을 서두르지 않고 건너 끝내 빛으로 이끌었다.
이상권 음악칼럼니스트

6 hou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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