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경 시인의 유작 산문집 '아는 사람 집'은 벤야민이 꾼 하나의 꿈에서 시작된다. 괴테의 작업실에 들어선 유대인 벤야민은 고대 꽃병 하나를 선물받는다. 또 옆방으로 가자 그의 가족과 친척들을 위한 식사가 차려져 있었다. 괴테는 벤야민의 조상을 위해서도 상을 차려놓은 듯했다. 저자 허수경은 벤야민의 꿈을 살피면서 고대의 꽃병을 '유럽 문명을 관통하는 전통'으로 읽어낸다. 또 식탁에 초대받은 벤야민의 가족과 조상은 유대인이 배제돼야 할 타인이 아니라 함께 식탁에 앉아야 하는 존재들임을 보여준다고도 쓴다.
폐허가 된 옛 도시에서 발굴 작업에 참여했던, 그러면서도 언제나 시인이었던 허수경은 발굴지였던 시리아와 자신의 고향 진주를 함께 호명한다. 죽은 자들의 땅에서 흔적을 찾은 고고학과 잊힌 기억에서 '나'를 살피는 일은 겹쳐진다. 한 사람의 유작을 읽는 건 한 인간의 정신을 도굴하는 일일까. 그러나 그 도굴은 기꺼이 미소 지으며 감행할 만하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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