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노현진은 전문가가 더 알아주는 신예다. 중견 피아니스트들이 한국의 유망 음악가들을 소개할 때면 그녀의 이름을 쉽게 들을 수 있다. 노현진은 지난해 11월 폴란드에서 열린 파데레프스키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1위에 오르며 실력을 입증했다. 이 대회에서 준결선 리사이틀상, 모차르트 협주곡상, 파데레프스키 작품 최고연주상 등도 휩쓸며 상금 3만3000유로를 얻었다.
노현진이 한국으로 돌아와 독주회를 연다. 오는 28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슈만과 브람스의 곡을 연주한다. 콩쿠르 결선에서 그녀가 보여줬던 담백한 음악을 만끽할 기회다. 노현진은 서울 중구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에서 기자와 만나 하고 싶은 음악에 대해 소개했다. “친구와는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 달라지는 모습을 공유하게 되잖아요. 제 음악도 관객분들께 어쩌다 만난 친구처럼 다가갔으면 합니다.”
눈물 주던 ‘황제’, 우승을 선사
파데레프스키 콩쿠르는 폴란드 출신 피아니스트였던 파데레프스키를 기리고자 1961년 창설된 대회다. 1998년부터 3년 주기로 열리며 유망 피아니스트를 알리는 역할을 해왔다. 김현정(2010년), 문지영(2013년), 이혁(2016년) 등이 1위로 올라 한국 음악계에도 친숙하다. 지난해 대회 결선에서 노현진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로 평단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결선에서 다섯 작곡가의 작품을 고를 수 있었는데 그중 황제가 있었어요. 황제를 들으면 옛날부터 눈물이 나곤 했어요. 연주하고 싶은 곡이었죠.”
결선은 첫날 3명, 둘째 날 2명이 각각 연주한 뒤 둘째 날 밤에 우승자가 가려지는 방식이었다. 노현진은 첫날 마지막 연주자였다. 응원하러 오겠다는 부모님께도 관람을 만류할 정도로 부담이 컸다. “걱정이 많았는데 무대에 올랐을 땐 별 생각이 없었어요. 떨기보다는 ‘그냥 친다’는 느낌이었죠. 끝나고선 관객분들의 반응이 좋다는 게 느껴졌어요. 말로 표현하기 힘든 뿌듯함과 해방감이 왔죠. 연주를 돌이켜봤을 때 실수하거나 아쉬운 부분이 뭐였는지 생각해봤는데 정확히 안 떠오르는 거예요! 치명적인 실수를 안 했던 것 같아요.”
콩쿠르를 치르면서 기억에 남는 곡은 따로 있다. 준결선에서 연주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3번이다. “모차르트는 공부할수록 ‘천재’란 생각이 들어요. 경이로우면서도 가볍고 재밌어요. 협연 곡은 새로 공부하는 작품이었지만 자연스럽게 즐기면서 연습했어요. 보통 협연할 땐 리허설에서 지휘자와 타이밍이나 악상 등을 논의하잖아요. 그 당시엔 리허설이 꽤 수월하게 흘러갔어요.”
시야를 넓혀준 은사 주희성
노현진은 피아노를 전공했던 어머니 밑에서 음악을 배웠다. 친구 따라 초등학교 4학년 때 입문했으니 시작이 늦은 편이다. 중학교에서 피아노를 전공할지 고민하며 10대들의 무대인 틴에이저 피아노 콩쿠르에 도전했다. 입상 여부로 음악 매진 여부를 결정하려 했다. 결과는 입상 끝자락이었던 3위. “당시 1등이던 피아니스트 이혁이 대상을 받으면서 2등이 1등으로, 3등이 2등으로 한 계단씩 올라갔어요. 덕분에 저에게 3등이란 자리가 왔죠.” 노현진은 서울예술고등학교에 재학하면서 2017년 이 콩쿠르에 재도전해 대상을 거머쥔다.
피아노 실력은 예원학교에 다니던 중학교 3학년생 때 확 늘었다. 입문을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다는 압박감이 그녀를 연습에 더 매진하게 했다. 서울예고엔 수석 입학했다. 이후 서울대 음악대학을 거쳐 미국 뉴잉글랜드 음악원에서 공부를 계속했다. 서울대에서 가르침을 준 피아니스트인 주희성 교수는 노현진이 감사해 마지않는 스승이다. “대입을 준비할 땐 음을 틀리지 않으면서 정해놓은 방향으로 음악을 금방 표현하는 데 신경 썼어요. 그런데 주희성 선생님은 입시에서 벗어나 음악과 삶이 연결돼 있다는 점을 알려주셨어요. 인간적으로 성장할 기회를 주셨죠.”
지금도 그녀는 스승의 연주를 들을 때면 울컥함이 차오른다고. “개인적인 연이 없는 분들 중에선 플레트네프의 연주를 실황으로 들으면서 연륜을 느꼈어요. 어두우면서도 따뜻한 매력이 있는 포고렐리치, 스토리텔링으로 음악을 풀어내는 손열음 선생님의 연주도 좋아합니다.”
‘배꼽 도’에서 다시 시작
노현진은 나무보다 숲을 바라본다. 자신의 연주뿐 아니라 이 소리가 2층, 3층 좌석 끝의 관객에게 어떻게 전달될지를 상상한다. 그녀가 연주 중 이따금 하늘을 보듯 먼 곳에 시선을 두는 이유다. “피아노 연주자는 자기 피아노를 들고 다니는 사람은 드물잖아요. 매번 다른 무대와 다른 피아노에 적응해야 하니 귀가 섬세해야 해요. 앞만 보고 치면 당장 미스 터치에 주의를 기울이게 되는 것 같아요. 멀리 하늘을 보고 치면 이 무대가 어떤 음향을 지녔는지, 이 소리가 어디까지 뻗어나갈지를 가늠하면서 연주를 할 수 있게 됩니다.”
피아니스트이기 전에 한 명의 사람으로서 자신을 생각한다. 그녀는 됨됨이를 가리키는 인간성, 줏대를 지키는 일관성, 주관을 진심으로 표현하는 진정성이 필요하다고 본다. 노현진이 정한 나름의 세 가지 심성, 삼성이다. “이런 삼성이 제 연주에도 나타났으면 해요. 기교가 뛰어난 연주보다는 인간적인 모습을 봤을 때 제가 듣는 연주의 울림도 더 크곤 했습니다. 제 역할 중 하나는 감정을 전달하는 일입니다. 이 감정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이 때문에 연주자로서 감정을 단정하듯 명확하게 전달하진 않으려고 합니다.”
오는 28일 공연은 슈만과 브람스의 다장조 곡들로만 채운다. 도를 으뜸음으로 해 흰 건반만 쓰는 기본 조성이다. “이번 콩쿠르를 우승한 뒤 처음부터 ‘나로서’ 음악을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에 다장조를 골랐어요. 피아노 학원에 가면 배꼽을 ‘도’ 앞에 놓고 앉으란 말을 듣곤 하잖아요. 근본인 도에서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이죠. 브람스는 이번 기회에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음악가예요. 슈만의 내면의 불확실성이 혼돈처럼 느껴지면서 인간적으로 보이기도 해서 평소 궁금하게 여겼던 작곡가죠.”
“콩쿠르 우승에 매몰돼 치던 곡만 하면 안 돼”
노현진은 레퍼토리도 늘려갈 생각이다. 콩쿠르 우승에 매몰돼 자신 있는 곡들만 치다 보면 음악인으로서 지속 가능한 삶이 어려울 거라고 봐서다. 특히 슈베르트는 그녀가 뛰어넘고 싶은 벽이다. “처음 피아노를 배울 때 슈베르트 작품번호 90-4(즉흥곡 중 하나)로 시작했어요. 체르니도 거치지 않았던 때라 어머니가 악보에 계이름을 하나씩 써주셨죠.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연주를 했던 거죠. 그러다 보니 이후엔 슈베르트 연주에 겁을 느꼈는데 다시 쳐보고 싶어요.”
지난해부터는 라벨의 색채감과 쇼팽의 시적인 감수성에 빠졌다. 동료 연주자들과 깊이 교감하는 실내악도 좋아한다. 올해엔 파데레프스키 콩쿠르의 우승자로서 일본을 비롯한 해외에서 공연한다. 이 콩쿠르 우승자는 쇼팽 콩쿠르 본선으로 직행할 수 있기에 2030년 쇼팽 콩쿠르에도 도전할 생각이다. “그게 인생 마지막 콩쿠르가 될 것 같아요. 그전까지는 진짜 하고 싶은 음악이 무엇인지를 신중하게 고민하면서 나아가고 싶습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

15 hours ago
2















.jpg)

English (U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