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맹국과 관세 협상 타결로 中 고립 나선 美… 중국도 ‘결사항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4월 11일(이하 현지 시간) 미국과의 관세전쟁과 관련해 처음 언급한 내용이다. 시 주석은 이날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중국을 방문한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와 정상회담을 하며 “외부 환경이 어떻게 변하든 중국은 확고한 신념과 인내심을 유지해 스스로의 일에 집중할 것”이라면서 미국을 겨냥해 ‘결사항전’ 의지를 피력했다.
‘쌍순화’ 무장한 中, 트럼프 1기와 다르다
중국 정부는 이날 모든 미국산 수입품의 관세율을 84%에서 125%로 올린다고 발표했다. 중국 정부의 이번 조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월 9일 중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들에 부과한 상호관세를 90일간 유예한 반면, 모든 중국산 제품의 관세율을 125%로 인상한 데 대해 맞대응한 것이다. 이로써 중국에 대한 관세는 펜타닐 원료 불법 유통을 이유로 한 추가관세 20%에 상호관세를 합쳐 145%가 됐다. 미·중 양국이 각각 145%, 125%라는 초고율 관세를 상대 제품에 부과하면서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다.
중국은 2020년부터 미국의 전방위적인 경제 통제에 맞서 이른바 ‘쌍순환’ 전략을 추진해왔다. 자국 내 민간소비를 확대하고 수입 의존도를 낮춰 독자적인 공급망을 구축한 것은 물론, 대외적으로는 기술력을 기반으로 첨단·고부가가치 상품의 수출을 늘려 수출시장을 다변화한 것이다. 실제로 중국은 미국 대신 아시아·유럽·중남미와의 경제 협력을 대폭 확대하고, 한국·일본·호주 등이 참여하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과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과 해상 실크로드) 사업 등을 적극 추진해왔다.
여기에 미국의 첨단기술 봉쇄는 중국의 기술 자립도를 높였다. 중국이 지난 7년간 추진해온 제조업 발전 전략인 ‘중국 제조 2025’ 정책에 따라 첨단기술 자립은 목표의 86%를 달성했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중국의 전 세계 제조업 점유율은 2000년 6%에서 지난해 32%로 늘었고, 중국의 제조업 생산량은 미국·독일·일본·한국·영국의 생산량을 합친 것보다 많다.
미국이 공급망과 기술 분야에서 중국에 쓸 수 있는 카드가 제한된다는 점도 중국의 거센 반격에 한몫했다. 중국은 미국과의 관세전쟁에서 가장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는 에너지와 식량 분야에서도 상당한 준비를 해왔다. 중국은 2020년부터 석유와 천연가스 수입 및 저장 시설을 대폭 늘렸고, 식량 비축량을 사상 최대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다. 더욱이 중국은 지난해부터 과잉 생산된 제품들을 저가로 대거 수출했다. 중국은 미국을 압박할 카드를 많이 갖고 있다. 전 세계 희토류 생산량의 90%를 장악한 중국은 2023년 이후 다섯 차례나 수출 제한 조치를 내렸다. 사실상 미국을 겨냥한 조치다. 히든카드도 있다. 세계 2위 미국 국채 보유국인 중국이 보복 조치로 미국 국채를 매각할 수도 있다. 국채 가격 하락은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우려하는 점 중 하나다. 또 인위적인 위안화 평가절하를 통해 중국 수출품의 가격을 낮춰 미국의 관세 부과를 상쇄할 수도 있다.
서로 다른 정치체제도 중국에 유리하게 작용한다. 중국 정부와 공산당은 공안, 검열 조직, 언론 등을 동원해 사회를 통제할 수 있다. ‘런민일보’를 비롯한 중국 관영매체들은 이미 국민의 애국 소비를 강조하며 반미 정서 선동에 나섰다. 중국에선 관세전쟁으로 물가가 오르고 실업자가 늘어나도 미국처럼 전역에서 시위가 벌어지는 등 사회 불안이 확산하기 어렵다. 주펑 난징대 국제관계학부 학장은 “관세전쟁으로 중국의 대미 수출이 급격히 감소하면 경제에 치명적 영향을 미치고 국민 생계와 사회 안정을 훼손할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중국 정치체제는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심지어 중국 정부는 주식시장 등에도 서슴지 않고 개입해 주가를 올릴 수 있다. 실제로 미국의 상호관세로 중국 지수가 급락하자 국유기업과 국가 소유 펀드 등이 주식시장에서 주식을 대량 매수했고,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 등도 ETF(상장지수펀드)를 빨아들였다. 중국을 철권 통치해온 시 주석은 미국에 양보할 경우 권좌에서 물러날 수도 있어 더욱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반면 민주주의 국가인 미국에선 정치권이 국민 여론의 눈치를 봐야 한다. 내년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보다 시 주석이 버티기에 유리한 셈이다. 중국에선 미국 국민의 불만이 고조될 때까지 장기전을 벌이면 된다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 공화당 한 전략가는 “내년 중간선거 때 단기적인 고통이 있거나 인플레이션이 존재한다면 공화당은 완패할 것”이라고 밝혔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중국 관리들은 미국 소비자가격이 오르고 고용이 감소하기 시작할 때까지만 버티면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 테이블에 앉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미국에 대항하고자 우군 확보 총력전에 나섰다. 유럽연합(EU)과 중국은 7월 베이징에서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중국은 EU 측에 힘을 합쳐 미국과의 관세전쟁에 맞서자고 구애하고 있다. 시 주석은 4월 14~18일 베트남과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등 동남아 3국을 순방하며 우방국과 연대를 다졌다. 이와 함께 러시아·브라질 등 신흥 경제대국들의 모임인 브릭스(BRICS) 회원국과의 연대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을 제외한 각국의 상호관세를 90일간 유예하는 조치를 내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케이트 칼루트케비치 전 백악관 국제경제위원회(NEC) 무역담당 선임 국장은 “미국 혼자 중국을 때려잡기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이번 싸움에 동맹국 등 파트너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관세를 유예했다”고 지적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도 “미국이 아시아를 비롯한 다른 국가들과 우호적인 관세 협상을 타결하면 자연스럽게 중국은 고립될 테고 더 큰 압력을 받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방 경제 전문가들은 중국 경제가 장기적인 관세전쟁을 버틸 수 있을지에 의문을 제기한다. 중국 내수시장은 관세전쟁이 터지기 전에도 과잉 공급에 직면해 있었고 부동산시장 붕괴로 경기침체에 빠진 상태였다. 수출이 막힌 제품들이 내수시장에서 소비돼야 하는데 상황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는 것이다. 양국 지도자의 자존심과 정치적 명운이 걸린 치킨게임이 상당 기간 계속될 경우 양국은 물론, 전 세계가 엄청난 피해를 입을 것이 분명하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485호에 실렸습니다]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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