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AI칩 수출통제를 완화하는 이유...‘오일파워’와 ‘딥시크’ 효과 [★★글로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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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 AI 칩 성공 신화의 출발점인 1990년대 칩셋. <사진=매경DB>

엔비디아 AI 칩 성공 신화의 출발점인 1990년대 칩셋. <사진=매경DB>

美, 바이든표 AI칩 수출통제 ‘없던 일’로

물량 제한 ‘국가 등급’에 중동 부국 반발

대미 선심 지원 불구 ‘보통국가’로 묶여

내주 중동 순방 앞둔 트럼프, 폐지 결단

중국 ‘딥시크 충격’도 규제 개편에 반영

화웨이 결합 딥시크식 저비용 오픈소스

엔비디아칩 통제 ‘풍선효과’ 확산 위험

“규제가 너무 복잡하고 관료적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7일(현지시간) 국가별로 물량 배정을 등급화한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출통제 정책을 철회한다고 발표해 주목을 받고 있다.

담당 조직인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의 설명은 “바이든 정부의 AI 규칙이 지나치게 복잡하고 관료적이며 미국의 혁신을 방해한다”는 것. 이 불합리한 규제를 훨씬 단순한 규정으로 바꿔 미국의 혁신을 촉진하고 AI 우위를 확보하겠다는 설명이다.

매일경제는이 문제를 둘러싼 미국 매체와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등 유력 싱크탱크 분석을 토대로 트럼프 행정부가 규제를 철회하려는 배경과 속내를 소개한다. 미리 답을 말하자면 ‘오일 파워’와 ‘딥시크’라는 키워드가 이 이슈를 관통한다.

먼저 바이든 행정부가 임기 종료 직전에 발표한 AI칩의 국가별 등급제는 ‘AI 확산 규칙’으로 불린다. 쉽게 말해 엔비디아가 제작한 AI칩의 판매 수량을 국가별로 등급화해 할당하는 방식이다.

사진설명

크게 세 그룹으로 분류된다.

미국과 그 핵심 동맹을 포함하는 ‘이너서클’ 그룹(티어1)은 무제한 확보가 가능하다.

‘파이브아이즈’ 참여 국가(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와 주요 서유럽국, 아시아의 한국과 일본, 대만 등 18개국이다.

중간지대 그룹(티어2)은 주로 남미와 중동, 동남아 국가들로 구성돼 있다.

이 그룹은 AI칩을 받을 수 있지만 나라별로 확보할 수 있는 최대치가 제한된다.

그 할당량을 높이려면 미국 정부에 신뢰할 수 있는 사용자를 별도로 인증해야 한다.

전문 용어로 ‘국가별 검증 최종사용자(NVEU)’ 라고 불리는 승인을 미 상무부로부터 얻어야 한다.

세 번째가 이른바 ‘범죄 용의자’ 그룹으로 중국과 북한, 러시아, 이란, 시리아 등 22개국을 가리킨다.

바이든 행정부가 임기 말에 이런 규제를 내놓고 오는 5월 15일부터 시행키로 하자 가장 반발이 큰 그룹은 중간지대인 티어2다. 항공기 티켓으로 분류하자면 티어1 그룹은 엔비디아 칩을 무제한 쓸 수 있는 ‘일등석’ 승객인 반면 티어2 그룹은 잘해봐야 ‘비즈니스석’에 탑승할 수 있다. 대부분 ‘이코노미석’ 등급에 해당한다.

티어3은 ‘엔비디아 항공기’에 탈 수 없는 ‘발권 불가’ 승객이다.

특히 티어2 그룹에 묶인 소위 ‘석유 부국’들에서 반발의 목소리가 컸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등 해당 국가들은 화석 연료에 의존하는 경제를 첨단 디지털 기반으로 전환하려는 여정에서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데이터센터를 지을 계획이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옥사곤 지역에 추진하는 초대형 AI 데이터센터 조감도. <이미지=NEOM>

사우디아라비아가 옥사곤 지역에 추진하는 초대형 AI 데이터센터 조감도. <이미지=NEOM>

그런데 가뜩이나 공급 우위 시장에서 긴 대기줄을 서야 받을 수 있는 엔비디아칩을 나라별로 등급화해 물량을 제한한다고 하니 중대 차질이 발생한 것이다.

무엇보다 이들 국가는 어느 나라보다 엔비디아 항공기의 일등석 티켓을 싹쓸이할 수 있는 자본력을 갖추고 있다. 그런데 바이든 행정부가 임기 말에 이코노미석 티켓만 배정하고 떠나버리니 원성이 자자했던 것.

트럼프 대통령이 내주 중동 순방을 앞두고 이날 AI칩 수출 통제 규제를 재정비한다고 발표했다는 점에서 티어2 중동 부국들의 로비가 제대로 먹힌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12일부터 사우디아라비아를 시작으로 UAE, 카타르를 찾을 예정이다.

국가별 등급제를 없애는 데는 또 하나의 중요한 반작용이 있다.

다름 아닌 중국 ‘딥시크’ 충격이다.

딥시크 앱 구동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딥시크 앱 구동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딥시크 임팩트를 다른 한 줄로 표현하자면 ‘오픈소스 AI 혁명’으로 부를 수 있다.

중국은 엔비디아 AI칩이 상징하는 고품질·초고비용 AI 인프라에 의존하지 않고 비용 효율적인 ‘오픈소스’ 모델 기반으로 딥시크를 고도화하는 데 성공했다.

AI 개발자들은 고품질과 고비용이라는 딜레마가 존재하는 미국의 AI 인프라에 얽매이지 않고 중국의 딥시크와 같은 오픈소스 스택 기반으로 새로운 고도화를 모색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무서운 속도로 AI칩 기술을 추격하고 있는 ‘화웨이 항공기’ 승객으로 합류할 수밖에 없다.

당장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지난달 중국을 찾아 “중국은 엔비디아의 매우 중요한 시장”이라며 “중국과 계속 협력하기를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또 지난 6일(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밀컨 콘퍼런스 2025’에 모습을 드러내 바이든 행정부의 AI칩 수출 통제를 비난했다.

수출 통제보다는 미국 표준을 글로벌 표준으로 만들고 AI가 미국 기술 위에 구축되도록 해야 한다는 호소로, 화웨이·딥시크 기반이 아닌 엔비디아·챗GPT 기반으로 미국이 AI 주도권을 쌓아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중국 시장의 AI칩 시장 규모를 향후 70조원 규모로 평가하며 “화웨이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기술 기업 중 하나이고, 그들이 (엔비디아칩 수출통제로 공백이 된)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고 염려했다.

지난 6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밀컨 컨퍼런스에서 바이든표 AI칩 수출 통제를 비판하고 있는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 <AFP 연합뉴스>

지난 6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밀컨 컨퍼런스에서 바이든표 AI칩 수출 통제를 비판하고 있는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 <AFP 연합뉴스>

공교롭게도 바이든 행정부가 국가별 등급제로 AI칩 수출 통제를 발표한 시점은 딥시크 쇼크가 세계를 강타하기 직전이었다.

지난 설 명절 연휴에 터진 딥시크 쇼크에 27일 미국 증시에서 엔비디아 주가는 무려 17% 폭락하며 800조원이 넘는 시가총액이 증발했다. 당시 118달러대로 주저앉은 엔비디아 주가는 넉달여가 지났지만 폭락 전으로 회복되지 않고 있다.

7일 뉴욕증시에서 수출통제 규제 완화 소식에 3.1% 오른 종가가 아슬아슬하게 117.06달러다.

‘석유 부국’을 일제히 이코노미석 승객으로 분류한 바이든표 수출 규제, 그리고 엔비디아 기업가치를 크게 떨어뜨린 ‘딥시크 쇼크‘와 ‘화웨이 기술 추격’은 트럼프 행정부가 왜 AI칩 ‘국가 등급제’를 폐지할 수밖에 없는지를 오차없이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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