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절친' 한상 …"韓美 관계는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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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근 GBM 회장·한미우호협회장
1998년 맨해튼에서 트럼프와 첫 인연
대선 세번이나 지원한 美정계 마당발
GBM, 美 10대 건물관리업체로 성장
한미우호협회 설립해 양국친선 기여
정치 통해 한인 권리 100% 발휘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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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근 GBM(General Building Maintenance) 회장 겸 한미우호협회장은 미국 중남부 지역의 대표 한상(韓商)이다. 박 회장은 1983년 청소 용역 업체 GBM을 설립해 미국 10대 건물 관리 용역 업체로 발전시켰다. 그는 오는 4월 17일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개막하는 제23차 세계한인비즈니스대회(세계한상대회) 명예대회장도 맡았다.

그의 성공 모토는 '자신이 아닌 남을 위해 일하라'다. GBM을 설립한 것도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시 애틀랜타 한인회장으로서 이민 온 한인들의 취업을 도와주기 위해서였다.

박 회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포함한 미국 정치 지도자들과 가까운 한상이다. 1979년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 선거운동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공화당계 정치인 선거와 뉴저지에서 연방 상원에 입성한 민주당 소속 앤디 김 등 당적과 관계없이 여러 후보자를 도왔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과의 관계에서 엄포를 놓을지라도 글자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며 "트럼프가 한국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만큼 한국에 불리한 일을 실제로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트럼프 대통령과 가까운 대표적인 한상이다. 어떤 인연인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터지자 자금줄이 막혀 대우건설의 동부 맨해튼 부동산 사업이 송두리째 넘어가게 생긴 적이 있었다. 내가 대우건설의 파이낸싱을 도와주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중 1998년 맨해튼에서 트럼프를 처음 만났다. 이후 인연이 발전돼 트럼프가 대통령 선거에 세 차례 출마할 때 모두 선거운동을 지원했다. 덕분에 이번 취임식에도 초청받아 다녀왔다.

―트럼프 2기 시대와 관련해 걱정이 많다. 향후 한미 관계 전망은.

▷트럼프의 전략은 미국과 이라크 간 전쟁 당시의 'shock and awe(충격과 공포)' 작전과 같다. 먼저 확 치고, 뒤에서 빼는 전략이다. 한국과의 관계에서도 엄포를 놓을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의 말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 슬기롭게 대처해야 한다. 트럼프를 포함한 미국 지도층이 한국에 불리한 일을 실제로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틀림없이 믿는다.

―한국에 불리한 일을 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는 이유는.

▷미국은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나라를 위해 전쟁을 했고 구호물자를 후원했다. 도움을 받은 나라 중 유일하게 한국 국민만 고마움을 갖고 한미 동맹을 지켜 가고 있다. 이 때문에 트럼프도 한국을 보는 눈이 다르다. 한국이라는 나라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미국 정계의 마당발이다.

▷미국에서 성공하겠다고 마음을 굳히고 이민을 했지만 '백'이 돼줄 만한 인연을 만들어야 했다. 레이건 전 대통령의 첫 선거운동 당시 나의 한 달 수입인 1000달러를 기부하면서 그분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역대 공화당 대통령 후보들의 거의 모든 선거운동을 지원했다. 덕분에 공화당에서 당대위원을 8번 했다. 한국계로는 처음이자 유일한 기록이다. 조지아주 대통령 선거인단 15명에도 두 번 포함됐다.

―경영인으로서 정치 활동을 적극적으로 한 이유는.

▷나보다 능력 있는 분이 많지만 숨어 있다. 한인들은 일당백을 하는 사람들이지만 미국에서 정치 참여를 잘 하지 않고 있다. 미국 사회에서 으뜸이 될 능력이 있는데 정치에 참여하지 않아 한인의 권리를 100%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젊은 세대에게 희망이 있다. 한국계 첫 상원의원 앤디 김이 대표적 사례다. 6년 후 재선을 하게 되면 엄청난 일이 생길 것이다.

―한미우호협회장으로서 향후 한미 관계를 전망하자면.

▷한미 관계는 형제와 같은 의미가 있다. 미국 사람들이 (한국과의 관계를) 일본이나 중국 등 다른 나라와 같게 보지 않는다. 반미 사건 등 옥에 티는 있었지만 현재의 좋은 관계를 계속 이어가야 한다.

―미국 조지아주에서 가장 성공한 한상이다. 그 비결은.

▷자기를 위해 일하지 말고 남을 위해 일한 것이 비결이라 할 수 있다. 1981년 애틀랜타 한인회장을 하게 됐다. 당시 애 엄마와 사별해 어린애 둘을 혼자 돌보고 보험 외판원 일을 하면서 어렵게 살고 있었다. 주로 새로 이민 온 한인들의 일자리를 많이 구해줬다. 그러다 1983년 불경기가 찾아왔는데, 12명 정도가 일자리를 못 구해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고 아예 내가 이분들을 직접 취업시켜 줘야겠다는 생각으로 청소 회사를 차렸다. 그런데 1년 반 만에 매출이 100만달러를 달성하고 고객 웨이팅 리스트가 생기기 시작했다. 일자리를 얻은 분들이 고마운 마음에 정말로 열심히 일을 했기 때문이다.

―미국엔 어떻게 오게 됐나.

▷1974년 미국에 처음 왔다. 포천 미군부대에서 카투사로 근무할 당시 미군 상사가 사비를 털어 도와줘 전역 후 미국 인디애나폴리스로 유학을 왔다. 그러나 대학은 2년만 다니고 1975년부터 보험회사 외판원으로 일을 했다. 1978년 따뜻한 조지아주로 이사를 와 지금까지 살고 있다.

박선근 회장 △1942년 서울 출생 △1981년 애틀랜타 한인회장 △1982~1983년 미국 동남부한인회연합회 초대 회장 △1983년 GBM 설립 △1991~1992년 미주한인회총연합회 회장 △1996년 한미우호협회 설립 △2000년 대한민국 국민훈장 동백장 수상 △2006년 조지아주 기업가 명예의 전당 입당 △2024년 엘리스아일랜드상 수상

[애틀랜타 윤원섭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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