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임정요 기자] 지난 1월 20일 도널드 트럼프 정권 2기가 출범한지 세달째. 연일 세계경제에 충격파를 보내는 소식이 전달되고 있다. 이번에는 미국 과학자의 대거 이탈이 예고됐다. 트럼프 정부가 대대적인 연구비 예산 삭감을 예고한 것이 배경이다. 일자리를 잃거나 연구가 중단된 과학자들이 유럽으로 이동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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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기자의 질의에 대답하고 있다.(사진=로이터) |
11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트럼프 정부가 대학, 연구기관에 대한 예산을 대폭 삭감할 계획을 밝힌 이후 많은 미국 과학자가 유럽행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정부는 연방 재정 적자 축소를 위한 조치라며 대학과 각종 연구기관에 들어가는 예산을 대폭 삭감했고 유럽에서는 이를 틈타 인재 유치를 위한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일례로 로이터와 인터뷰한 존 투틸 워싱턴대 신경과학교수는 미국 메인주 출신이지만, 현재 가족과 함께 유럽행을 고려하고 있다. 트럼프 정부가 미 국립보건원(NIH) 예산을 대폭 삭감하면서 투틸 교수의 연구 보조금도 동결됐기 때문이다. 투틸 교수 연구실에는 연구원이 17명이고 연구비의 75%를 NIH에서 받고 있다. 앞으로 2027년 이후를 위한 자금을 신청할 수 없는 처지다.
또 다른 케이스로, 미 국립해양어업청(NMFS)의 어류생물학자 새라 와이스버그는 2월 해고당한 뒤 유럽에서 일자리를 제안받았다고 한다. 로이터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와이스버그는 “(내 경력을) 유럽으로 가져갈 생각은 전혀 해본 적이 없었다”며 “이제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세계를 강타했던 코로나19 팬데믹에 활약했던 미국 식품의약국(FDA)도 예외는 아니다. FDA 전체직원의 20%에 해당하는 직원 3500명이 구조조정을 앞두고 있다. FDA 인력 포함 보건복지부 및 산하기관에서 최소 1만 명이 해고될 예정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 3월 유럽 프랑스, 독일 등 13개국은 유럽연합(EU) 집행위에 학계 인재 유치를 위한 방책을 촉구하고 나섰다.
과학 연구 자금을 지원하는 EU 기관인 유럽연구이사회(ERC)는 EU로 이주하는 연구자를 위한 연구실 설립 등 이전 예산을 1인당 200만 유로(32억원)로 두배 늘리겠다고 밝혔다. 새 연정에 합의한 독일 보수당과 사회민주당은 연구자 최대 1000명을 유치할 계획을 세웠다.
특히 지난달 7일 프랑스 엑스 마르세유대가 선보인 ‘과학을 위한 안전 공간’ 프로그램은 미국 학계의 시선을 모았다. 이 프로그램은 1천500만 유로(약 243억원)를 들여 보건, LGBTQ+, 기후변화 등 다양한 분야의 미국 인력 유치를 목표로 하는 내용으로, 미 항공우주국(NASA), 스탠퍼드대 등 기관 연구원 120명이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다른 유럽 대학들도 적극적으로 미국 인재 유치에 나서고 있다. 브뤼셀 자유대 등은 미 연구자들의 박사 후 연구원 지원을 장려하는 프로그램을 시작했고, 알렉산더 본 훔볼트 재단은 미국과 독일 간 과학자 교류를 장려하는 프로그램을 20%가량 늘릴 계획이다.
기후변화 연구를 전문으로 하는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의 그랜텀 연구소는 미국 내 경력이 짧은 기후 연구자들을 위한 연구 펠로십 자리를 마련했다. 이미 지원자 수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는 소식이다.
미국 디지털 컨설팅 회사의 그레이 맥도웰은 “규제 불확실성, 자금 삭감, 이민 제한, 국제 협력 약화는 두뇌 유출을 위한 ‘퍼펙트 스톰’(최악의 시나리오)을 조성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