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배터리 셀·소재 업체들이 지난 16일 언론 보도를 통해 드러난 도널드 트럼프 2기 미국 행정부의 전기차·배터리 지원 정책에 대한 자체 분석에 들어갔다. 주요 분석 대상은 배터리 공급망 규제 내용이다. 트럼프 대통령 인수위원회는 해외에서 들여오는 배터리 소재에 관세를 부과하는 동시에 관세 문제는 ‘동맹국과 개별 협상을 진행하자’고 제안했다.
배터리업계는 ‘해외’와 ‘동맹국과의 협상’이란 문구에 주목하고 있다. 해외 제품의 관세는 미국 현지 생산 비중이 높은 한국 기업에 유리하게 작용할 전망이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삼성SDI, LG화학 등은 주요 소재 업체는 미국에 배터리 셀과 양극재 공장을 설립했거나 건설 중이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보조금을 받기 위해 국내 소재 업체들이 ‘탈중국’에 나서고 있는 점도 긍정적인 요인으로 꼽힌다. IRA 보조금을 받기 위해선 배터리를 제조하는 과정에서 올해 기준으로 광물의 50%, 부품의 60%는 미국의 우방국에서 조달해야 한다. 광물엔 니켈, 코발트, 망간, 흑연 등과 양·음극재 등이 포함된다. 부품엔 배터리 모듈과 셀 등이 있다.
국내 A업체는 광물의 60%를 호주 아르헨티나 등 미국의 우방으로 분류되는 곳에서 조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산은 전체의 40% 수준이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산 광물과 소재 사용에 대한 관세를 부과하더라도 미국 정부가 권고해온 중국산 조달 비중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흑연 등 일부 광물은 중국 제품을 수입하지 않을 수 없어 일정 부분 예외를 둘 것으로 본다”고 예상했다.
또 업계는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중국산 철강 등에 25% 관세를 부과했지만, 동맹국인 한국과는 별도 협상을 통해 25% 관세를 면제한 점을 들어 ‘동맹국과의 협상’이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배터리에 대한 관세 장벽이 중국을 겨냥한 것인 만큼 미국 내 공장을 보유한 한국 배터리 업체는 오히려 반사이익을 거둘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대당 7500달러의 전기차 보조금을 축소 또는 폐지하기로 하면서 전기차 캐즘(대중화 전 수요 부진)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란 전망은 악재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 당선 후 인수위원회 등이 AMPC에 대한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은 건 긍정적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AMPC는 미국 내 청정에너지 부품 생산 공장을 짓도록 하는 법안으로 지역 일자리와 직접 연관이 있다. 배터리와 태양광·풍력 부품 등의 생산에 혜택을 준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한화큐셀 등이 혜택을 받고 있다.
박준모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한국 기업의 공장이 있는 미시간과 오하이오, 조지아주 등의 반대가 인수위에도 부담이 될 것”이라며 “오바마케어 폐지를 주장했다가 실패한 트럼프 1기 행정부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아 별다른 언급이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