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 극장에서 놓쳤던 명작을 거실에서 만나보는 건 어떨까. 디즈니+가 올가을, 흥행과 작품성을 동시에 인정받은 독립·예술영화와 중화권 고전 명작들을 한데 모아내며 '문화 아카이브'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단순한 볼거리를 넘어, 신뢰할 수 있는 취향의 라이브러리를 구축하기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
디즈니+는 최근 독립·예술영화 화제작을 연이어 공개하며 존재감을 키웠다. K-애니메이션 '퇴마록', 칸영화제 초청작 '플로우', 재일 한국인 청년의 시선으로 일본 사회를 담아낸 '해피엔드' 등이 대표적이다. 모두 영화제와 시상식을 통해 작품성을 인정받으면서 흥행에도 성공한 작품들이다.
특히 '퇴마록'은 상반기 50만 관객을 동원하며 K-애니메이션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고, '플로우'는 프랑스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다관왕에 오르며 국제적 주목을 받았다. '해피엔드'는 개봉 2주 차 관객 수가 더 늘어나는 '입소문 흥행' 사례로 기록됐다. 전체 극장 관객 수가 전년 대비 32.5% 줄어든 침체 속에서도 이들 영화가 두각을 나타내며, 웰메이드 작품의 저력을 입증했다.
디즈니+는 이와 더불어 중화권 명작 아카이브도 확장하고 있다. 지난달 말 '무간도' 트릴로지를 시작으로 '서유기: 월광보합', '서유기2: 선리기연',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화양연화'·'동사서독 리덕스', '말할 수 없는 비밀' 등이 공개됐다. 1980~90년대를 대표한 작품들이 대거 다시 회자되며, 젊은 세대에게는 레퍼런스 콘텐츠를 새롭게 발견하는 기회가 될 전망이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업계 전반에서도 큐레이션 강화는 뚜렷한 흐름이다. 넷플릭스는 영화제 수상작과 다큐멘터리 영역을 확대하며 '품질 보증' 전략을 취하고 있고, 왓챠는 평점과 추천 기반으로 시네필 취향을 세밀하게 반영해왔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조사에 따르면 유료 OTT 이용자의 콘텐츠 선택 기준 1위는 '주제·소재'였으며, 알고리즘 추천을 따른다는 응답도 지난해 12%에서 올해 20.6%로 크게 늘었다. 단순한 양보다 정밀한 큐레이션이 플랫폼 경쟁력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는 셈이다.
극장가 역시 큐레이션 기조를 공유하고 있다. 메가박스는 단독 개봉 브랜드 '메가 온리(MEGA ONLY)'를 통해 마니아층을 겨냥한 작품을 상영하고, 롯데시네마는 '롯시픽'으로 단편 애니메이션 같은 틈새 콘텐츠를 발굴하고 있다. CGV는 공연 실황 단독 상영을 확대하며 팬덤 타깃층을 끌어들이고 있다. 신작 부족과 관객 감소 상황 속에서 각 극장이 선택지를 넓히는 방식으로 '큐레이션 상영'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디즈니+의 역시 단순히 라인업을 늘리는 차원을 넘어, 명작 큐레이션을 통해 플랫폼의 정체성을 문화 아카이브로 확장하려는 전략적 시도를 하고 있다는 평가다. OTT와 극장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큐레이션 경쟁에 나서면서 관객과 시청자는 보다 다채롭고 깊이 있는 문화적 경험을 누릴 수 있을 전망이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