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 "상장이 처음이라 몰랐다"는 백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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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칼럼] "상장이 처음이라 몰랐다"는 백종원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가 전국구 스타가 된 건 10년 전부터다. 2015년 지상파 예능에 나와 선보인 화려한 칼질, 초간단 요리법, 구수한 입담은 ‘백주부’를 단숨에 셀럽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외식업계에서 그는 20년 전에도 이미 스타였다. 서울 논현동 먹자골목에는 한신포차부터 새마을식당, 홍콩반점, 빽다방까지 백 대표의 프랜차이즈 직영점 19개가 밀집한 ‘백종원 거리’가 있었다. 백 대표는 지난해 11월 더본코리아의 유가증권시장 상장을 성공적으로 마치며 4000억원대 ‘주식 부자’ 대열에 합류했다.

그렇게 탄탄대로를 걷던 백 대표가 상장을 기점으로 유명세(稅)를 호되게 치르고 있다. “빽햄 가성비가 형편없다” “원산지 표시가 틀렸다” “위생 관념이 없더라”…. 하나씩 보면 소소한 논란이지만 쌓이고 쌓이니 눈덩이만 한 ‘평판 리스크’로 불어났다. 주가는 4개월 만에 반 토막이 나버렸다.

[토요칼럼] "상장이 처음이라 몰랐다"는 백종원

지난주 열린 상장 후 첫 정기 주주총회는 주총이라기보다 사죄 기자회견에 가까웠다. 백 대표는 “호실적에도 불구하고 주주님들에게 걱정과 실망을 안겼다”며 “뼈저리게 반성하고 있다”고 연신 허리를 숙였다. 거기서 모범 답안으로 마치면 좋았을 텐데, 그는 굳이 사족을 붙이며 말을 이어갔다.

“상장이 처음이라 ‘실적만 올리면 된다’고 단순하게 생각했어요. 제가 잘못이죠.”

“최고재무책임자(CFO)에게 ‘주총 꼭 나가야 되냐’고 물었더니 첫 주총은 당연히 가야 된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상장을 해외 사업할 때 ‘우리는 상장사니까 믿어도 된다’고 말할 수 있는 자격증으로만 생각했어요. 상장 전에 비해 고려할 사항이 많아지는 걸 몰랐다는 거….”

무슨 말이 하고 싶은지 알겠으나 주주들에게 할 말은 아니었다. 상장사 지위는 빽햄에 붙는 해썹(HACCP) 같은 품질 인증 마크가 아니다. 불특정 다수의 투자자에게서 돈을 끌어 쓸 수 있는 길을 터주는 것이기에 그만한 책임과 품격을 요구받는다. 6년 넘게 상장을 준비한 기업인이라면 모를 수 없는 사실이다. 백 대표는 대학생 때 사업 전선에 뛰어들고 한때 17억원 빚에 시달리다가 자력으로 재기한, 산전수전 다 겪은 연쇄 창업가이기도 하다. 곧바로 “그걸 몰랐으면 상장하지 말았어야지”라는 반응이 나왔는데 반박할 수 있겠나.

개인적으로 “국장이 국장 했다” “국장 탈출은 지능순” 같은 말은 별로 좋아하지 않고 신문에 쓰고 싶지도 않다. 냉소와 비아냥으로 가득한 언어인 데다 한국 증시 혐오를 부추기는 것 같아서다. 그런데 한편으론 답답한 게, 알 만한 상장사 경영자들이 이따금씩 빌미를 준다. 얼마 전 구자은 LS 회장은 “중복 상장이 문제라고 생각하면 주식을 안 사면 된다”는 발언으로 주식 커뮤니티를 뒤집어놨다. 뒷수습은 전문경영인이 했다. 자금 조달이 왜 불가피한지 소상하게 설명했으면 알아듣는 사람이 있었을 텐데, 왜 그랬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한국예탁결제원 통계를 보면 지난해 국내 상장 주식 보유자는 40대(22.1%)와 50대(22.4%)가 절반을 차지했다. 10년 전엔 30대(24.4%)와 40대(29.8%)가 절반이었다. 투자자가 고령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기간 서학개미가 보유한 미국 주식은 80배 불어나 1000억달러를 돌파했다.

투자자 이탈은 기본적으로 수익률 탓이 크겠지만 국내 상장사에 대한 막연한 비호감도 원인을 제공했다고 본다. 소액주주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불만, 언제든 기습 공시로 뒤통수칠 수 있다는 불신 같은 것들 말이다. 이렇다 보니 나름의 명분이 있는 유상증자, 분사, 계열사 재편 등에도 설득이 잘 이뤄지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맛에 대한 소비자의 기준이 나날이 깐깐해지듯 투자자의 눈높이도 계속 올라가고 있다. 친절하지 않고 리뷰도 별로인 식당을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찾아줄 사람은 갈수록 줄어들 것이다.

요즘 젊은 층에서는 한국 주식은 건너뛰고 곧바로 미장에서 투자에 입문하는 이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미래 세대의 자본시장 이탈을 제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쪽은 상장사다. 백 대표는 주총장에서 “주가는 내 마음대로 안 된다”고 토로했는데, 주주들도 그 정도는 다 안다. 백 대표는 예능인이 아닌 경영인으로서 외부와의 소통에 폐쇄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몸을 더 낮추고 진중하게 소통하는 것만으로도 적지 않은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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