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스 피플 #2: UX 라이팅의 새로운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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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토스에서 UX Writing Team Leader로 근무하고 있는 김자유님의 인터뷰를 공유드려요. 자유님은 푸시 알림을 포함해 토스 앱 안에 보이는 모든 메시지의 보이스톤을 일관되게 통일하는 업무를 하고 있어요.

토스의 첫 UX Writer로 입사하신 자유님은 라이팅 원칙을 세우고 전사적으로 읽기 쉽고 편한 UX Writing을 전파한 장본인인데요. 단순히 문구를 개선하는 것뿐만 아니라, 좋은 문구 작성을 자동화하는 시스템을 만들기도 하셨죠. 자유님은 어떻게 UX Writer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됐을까요? 오늘은 자유님의 커리어 이야기를 나눠드려요.

토스에서 했던 프로젝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은 무엇인가요?

디자인 툴에서 토스의 보이스톤을 자동으로 적용해주는 잡초 제거기와,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에러 메시지 템플릿을 컴포넌트처럼 쓸 수 있게 만든 프레이머링 등 여러 프로젝트들이 떠오르는데요. 많이들 기억하시는 건 아무래도 토스의 8가지 라이팅 원칙들 아닐까 싶어요. 그중에서도 특히 불필요한 단어를 가리키는 말로 ‘잡초’라는 라이팅 용어를 만든 게 임팩트가 컸던 것 같아요. 토스 내부에서 소통하기 위해 만든 것이었는데, 토스 밖에서 다른 분들이 사용하시는 것도 종종 봤거든요.

프레이머링

가장 최근에 했던 작업으로는 디자인 해킹이 기억에 남네요. 제가 입사했을 때와 비교해서, 이제는 라이팅 원칙이 자리 잡고, 그 톤을 적용할 수 있는 장치도 여럿 마련되어서 토스만의 보이스톤이 많이 정립되었어요. 그런데 문장 하나만 보면 괜찮은데 전체 화면을 읽어봤을 때 흐름이 끊긴다든지, 앞에서 했던 말을 뒤에서 반복한다든지 하는 문제가 보이기 시작했어요. 이건 문장을 개선하기보다 내러티브 자체를 처음부터 잘 만들어야 하는 거라, 시스템보다는 교육을 통해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토스를 오래 다닌 디자이너분들의 뇌를 해킹하는 세션을 만들었어요. 개선할 필요가 있는 화면을 드리고, 어떻게 개선할 것 같은지 만들어보도록 부탁드렸죠. 그리고 똑같은 화면을 신규 입사자분들에게도 드려봤어요. 똑같은 화면을 보고 저 디자이너와 나는 어떻게 다르게 개선할까? 이 내용에 집중해서 교육 자료를 만들었었어요. 실제로 교육을 들은 분들의 화면 구성력이 달라지는 걸 눈으로 확인했을 때, 엄청 신기하고 뿌듯했죠. (자세한 내용은 곧 블로그에 공유될 예정)

그래프를 보니, 초반에 엄청 자잘한 점들이 많이 찍혀있네요. 어떤 의미일까요?

막 학교 졸업 전후 시기인데요. 저는 오히려 학교에 다닐 때는 목표가 뚜렷했다가 졸업할 즈음 방황을 했어요. 저는 중학교 때부터 해외 시장을 대상으로 일하고 싶어 했거든요. 그래서 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새내기 때도 잘 안 놀고 HSK 자격증, 부전공, 무역 관련 대외 활동 등등 스펙 쌓느라 바빴어요. 동기들이 졸업하고 뭐 할지 고민이라고 했을 때, 크게 공감을 못 했어요.

그래서 졸업 전에 해외 영업직으로 잠깐 인턴을 했어요. 그런데 웬걸, 하루하루가 너무 지루한 거예요. 그때부터 너무 당황스러웠죠. 어렸을 때부터 꿈 꿔왔던 직업인데… 기대한 것과 너무 달랐고, 비슷한 것조차도 마냥 좋지만은 않았어요. 진로 고민하던 동기들이 떠오르면서 ‘나도 그때 다른 방향을 고민해 볼 걸’하고 후회했어요.

인턴 생활이 끝나고서는 제 적성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취업 준비를 더 하지 않기로 했어요. 작게나마 실제 일을 해보려고 했죠. 운 좋게 지원금을 받으면서 만화도 그려보고, 비슷한 또래 친구들이랑 카페 운영도 해보고, 사회적 기업에서 행사 기획이랑 디자인도 해보고, 언론사랑 같이 기존 뉴스를 디지털화하는 작업도 했었어요. 아르바이트도 6-7가지 정도 해봤던 것 같아요.

대학 때 못한 방황을 졸업하고 마저 하신 거군요. 그 후에 정하신 방향이 있었나요?

맞아요. 그 후에는 좋은 대표님을 만나 출판사 마케팅 일을 경험해볼 수 있었는데요. 앞에서 했던 일들과 연결해서 보니, 콘텐츠를 만드는 일이 적성에 맞는다는 생각을 하게 됐던 것 같아요. 회사에서 영상 스크립트도 쓰고, 사이드 프로젝트로 디자인 뉴스레터도 만들어보고 그랬죠. 어떤 매체든 기획을 글로 써내는 게 되게 재미있더라고요.

당시 만들었던 뉴스레터 이름이 ‘디독’인데, 해외의 디자인 아티클을 번역해서 보내드리는 뉴스레터였어요. 지금이야 번역기 성능이 워낙 좋지만, 당시에는 번역도 그렇고 큐레이션을 기대하는 분들도 꽤 계셔서 4-5만 명 정도 구독해주셨어요. 이 콘텐츠를 하면서 UX 디자인에 대해서도 조금씩 눈을 뜨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디자인 에이전시로 이직하셨나요?

네. 콘텐츠 마케팅을 하다가, 대표님도 좋고 성과도 잘 나는데도 이상하게 만족스럽지가 않은 거예요. 돌이켜보면 뭔가 쌓이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아요. 당시 영상 콘텐츠를 만들었는데, 콘텐츠라는 분야 자체가 트렌드에 매우 민감해야 하고, 회사 기조 상 영상의 시각적 퀄리티보다는 내용에 집중했다 보니 아쉬운 부분도 있었고요.

그래서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마음과, 트렌드에 맞춰 계속 바뀌기보다는 어느 정도 답이 정해져 있어서 기술을 쌓아갈 수 있는 분야로 가고 싶어서 UX 디자인 쪽으로 눈을 돌리게 된 거예요. 마침 실력도 좋고 평판도 좋았던 디자인 에이전시가 있었는데, 거기서 콘텐츠 마케터를 채용 중이었죠. 놀랍게도 대표님이 제가 만든 뉴스레터를 구독하고 계셨고요. 그래서 자연스레 디자인 에이전시에 입사하게 됐고, 감사하게도 제가 원했던 대로 디자이너로 직무 전환도 하긴 했어요.

그런데 그래프에서 왜 이렇게 낮게 평가하셨나요?

사실 같이 다니는 동료들도 좋고, 회사에서 만들어내는 결과물 퀄리티도 만족스러웠어요.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이 정말 높은 조직이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디자이너로서는 신입이잖아요. 주변에 제 또래 분들은 디자인 전공자이거나, 아니더라도 포트폴리오를 준비해서 입사하신 분들이었고요. 저는 마케터로 입사해서 디자인도 어깨너머로 배웠었는데, 그 차이를 좁히는 게 정말 어려웠어요. 퇴근 후는 물론이고 주말에도 밤새워가며 디자인 사이트를 뒤지고, 동료들 붙잡고 질문을 퍼부어가면서 공부했는데도 잘 안 좁혀지더라고요. ‘열심히 하는데도 못하는 구간’을 견디는 게 정말 힘들었어요.

하지만 계속 열심히 했더니 결국 익숙해지는 때가 왔고, 이 경험 때문에 토스에 지원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당시에는 불행했지만 돌이켜보면 몇 년 간했던 가장 잘한 의사 결정 중에 하나예요. 사실 디자인 에이전시에 입사를 결정하기 전에, 더 좋은 조건으로 다른 회사들에서 콘텐츠 마케터 제안도 받았었거든요. 엄청 고민이 됐지만 당장의 이익보다 장기적으로 생각하자고 결정했고, 지금 생각하면 신의 한 수였어요. 이때 UX 디자인을 해봤기 때문에 UX 라이터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거든요.

그래서 다음으로 입사하신 곳이 토스였군요. 와, 그래프가 엄청 높은데요?

네. 사실 토스 입사하기 전에, 다음 커리어를 UX 라이터로 생각하고 있었어요. 전 글도 쓰고 디자인도 하는데 각각을 엄청 뾰족하게 잘하진 않는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러고 싶지도 않았고요. 근데 UX 라이터는 두 가지 능력을 다 필요로 하는 직무인 거예요. 다만 한국에는 채용이 열린 곳이 없어서, 해외 취업을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죠. 그러던 찰나, 토스에서 채용 공고가 열린 거예요. 좀 우습지만 ‘저긴 내 자리야!’ 라고 생각했죠.

면접도 너무 즐거웠어요. 제가 한 일에 대해서 이렇게 꼼꼼하게 질문받은 적이 없었는데, 그 질문을 들으면서 이런 팀원들과 일하면 너무 좋겠다는 기대감도 들었고요. 실제로 입사해서도 밖에서는 상상도 못했던 도전적인 과제들, 합리적이고 똑똑한 동료들, DRI(Directly Responsible Individual, 최종의사결정권자)라는 독특한 문화로 주어지는 극도로 높은 자율성, 미친 속도… 이 모든 것들이 저와 너무 잘 맞았고 좋은 성과도 많이 냈었어요.

그러다 보니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회사를 다니는 게 너무 행복했어요. 일이 너무 재미있어서 주말에도 나오고 그랬으니까요. 제품을 만드는 스타트업은 처음이었는데, ‘와, 나 진짜 스타트업 체질인가 봐’ 했었죠. 그땐 토스가 스타트업 중에서도 특이한 문화를 갖고 있다고는 생각 못 했거든요. (웃음)

아, 저도 토스 처음 입사했을 때 그랬던 기억이 나요. 그런데 그래프에서 조금 꺾이는 부분이 있었네요?

맞아요. 생전 처음 맛보는 토스 문화에 정신 못 차리고 행복해하다가, 큼직한 프로젝트들을 몇 개 끝내고 제 직무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게 된 거예요. 막 입사하고 나서는 고쳐야 할 것들이 너무 많이 보였는데, 그것들을 처리하고 나니까 ‘이제 뭐하지?’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부터 새로운 일을 만들어내는 것의 난이도가 확 높아졌던 것 같아요. 이전에는 해외에서 조금 잘한다는 회사들을 참고해가면서 할 수 있었는데, 이때부터는 크게 참고할 수 있는 부분이 없었어요. 언어가 달라서도 있었겠지만, 역할에 대한 기조가 다르기도 했고요. 막막했죠.

그러게요. 처음 만들어진 직군들이 모두 비슷하게 겪는 문제일 것 같아요. 다시 그래프가 올라갔는데, 어떻게 해소하셨나요?

여러 가지 시도들을 해봤던 것 같아요. 새 프로젝트의 힌트를 얻으려고 지금까지 개선했던 문구들을 종류별로 태깅해보기도 하고요. 너무 시스템만 만들었나 싶어서 문구 개선 업무 비중을 확 높여보기도 하고요. 긴 글을 쓰는 테크 블로그를 전담해서 맡아보기도 했었어요.

그중에서 가장 효과적이었던 건 업무에 ‘교육’이라는 새로운 도메인을 접목시켰던 거였어요. 앞에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이전에는 문구를 시스템적으로 해결했는데, 이제는 더 복잡한 문제를 풀어야 했기 때문에 단순히 기계적으로 처리하기가 어려웠거든요. 이미 써진 문구를 시스템으로 잘 교정하는 것보다, 팀원분들이 처음부터 문구를 잘 쓰게 만들고 싶었죠. 라이팅 교육으로 초점을 맞춘 거예요. 그렇게 관점을 바꾸고 나니까 해볼 만한 일이 훨씬 더 많이 보였어요.

WAT(가칭, Writing Aptitude Test)라는 라이팅 적성 검사도 만들어보고, 개발자분들이 많이 하시는 짝 프로그래밍을 차용해서 페어 라이팅 워크숍이라는 것도 해보고, 이 과정에서 디자인 해킹이라는 프로젝트도 진행했었고요. 실패도 많이 했지만, UX 라이터의 역할 범위를 확장하게 되면서 동기가 많이 높아졌었어요. 같은 관점에서 ‘코칭’에도 관심을 갖게 되어 훈련을 많이 했었는데, 자연스레 리더를 맡게 되면서 제 역할의 범위가 넓어지기도 했고요. 저만 잘하면 되는 게 아니라 제 옆의 팀원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게 만드는 일을 하는 것도 굉장히 도전적이고 흥미로운 일이더라고요.

프로덕트 디자이너 분들의 페어 라이팅 후기

오늘 소중한 시간을 내주셔서 오랜만에 커리어를 뒤돌아 보셨는데 어떠셨나요?

얼마 안 됐다고 생각했는데 얘기하다 보니 되게 아득하게 느껴지네요…(웃음) 말하다 보니 예전에 저한테 엄청 중요한 고민이었던 주제가 있는데요. 스페셜리스트가 되어야 하나, 제너럴리스트가 되어야 하나? 였어요. 커리어를 바꿀까 고민할 때마다 주변에서 한 우물을 파야 한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저는 성향 상 잘 안되더라고요. 물론 스페셜리스트는 한 분야의 최고가 될 수 있어요. 하지만 제너럴리스트는 새로운 분야를 만들어낼 수 있죠. 제가 UX 라이터가 될 수 있겠다고 확신했던 건 글과 디자인 경험이 모두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5년 전 나에게 조언을 할 수 있다면 어떤 얘기를 하고 싶으신가요?

제너럴리스트 성향인데 스페셜리스트가 되지 못해 괴로워했었는데, 제너럴리스트로서의 장점도 얼마든지 많다는 점을 알려주고 싶어요. 무엇을 선택하느냐보다 어떻게 수행하느냐가, 즉 밀도가 더 중요한 것 같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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