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1440원 선까지 뚫은 원화값이 정치 혼란 속에 여전히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22년 레고랜드 사태 때도 원화값이 폭락했지만, 이번 금융시장 급변은 당시와는 다르다는 시각이 많다. 현재는 대외 요인으로 인한 강달러와 일시적인 정치적 불안이 원화값을 떨어뜨린다면, 레고랜드 때는 한국의 신용 위험이 커진 점 때문에 원화 가치가 내렸다는 것이다.
5일 달러당 원화값은 전일 주간 거래 종가보다 2.3원 내린 1412.4원에서 출발한 후 1410원대에서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새벽 2시 야간 거래 마감가는 1413.6원이었다.
금융 전문가들은 국내 정치 혼란의 영향으로 한동안은 1400원대 원화값이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계엄 사태는 일단락됐지만 이후 펼쳐질 정치적 불확실성이 한국 시장에 대한 시각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시중은행들은 이달 중 1450원 선을 넘나들 가능성도 점치고 있다. 신한은행은 1450원, 국민은행과 하나은행은 1440원, 우리은행은 1430원으로 각각 원화값 하단을 전망했다.
특히 우리은행은 상단을 1400원으로 제시했다. 원화값이 아무리 올라도 1400원 위까지 갈 수는 없을 것이란 의미다.
레고랜드 때는 시스템 불안, 지금은 대외 불안이 원인
서정훈 하나은행 연구원은 “연말 달러당 원화값은 1400원선 아래에서, 100엔당 원화값은 950원 밑까지 열릴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서 연구원은 “계엄 해제로 단기 불확실성이 해소됐다고 해도 한국 경제·금융시장의 펀더멘털을 보는 외국인의 눈높이는 크게 낮아졌다”고 지적했다.
이민혁 KB국민은행 연구원도 “정치적 이벤트는 원화에 좋지 않은 재료”라며 “트럼프 트레이드를 비롯한 글로벌 요인에 이번 사건이 겹치면서 원화자산에 대한 디스카운트를 유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정치보다는 글로벌 경제·정치 상황이 더 큰 영향을 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백석현 신한은행 이코노미스트는 “계엄 사태 등 국내 정치 상황이 원화값 하락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있다”면서 “프랑스 정국 불안에 따른 유로화 약세, 미중 간 관세 보복 등 대외적 요인이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태는 2022년 10월 레고랜드 때와는 다르다는 것이 시장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김진태 당시 강원도지사가 레고랜드 조성 사업을 위해 설립한 특수목적법인(SPC) 강원중도개발공사의 기업 회생 신청을 발표하면서 터진 것이 레고랜드 사태다.
당시엔 지방자치단체 채무 보증에 대한 신용이 크게 하락하면서 원화 가치가 급락했다. 이와 달리 현재는 미국 대선 후 이어지는 강달러의 영향이 더 크다는 시각에 무게가 실린다.
최진호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레고랜드 사태는 신용 위험이 커진 데 따라 시스템에 대한 불안이 커지며 원화값이 내렸다”며 “지금 신용은 그때에 비하면 양호해 외국인 투자자들이 시스템 리스크까지 예측하는 것 같지는 않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