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독자 제공
경기도 시흥의 한 요양원에서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전문 간호하는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있는 60대 A씨 등 2명은 지난 8일 고용노동청에 요양원장을 대상으로 진정서를 냈다.
3일에 하루 출근하는 3교대 근로자였던 이들은 출근일엔 오전 9시부터 다음 날 오전 9시까지 일을 해야 했다. 특히 밤 10시부터 새벽 6시까지 야간근무 8시간 중엔 4시간의 취침시간(휴게시간)이 주어졌다.
하지만 요양원에는 변변한 휴게 시설이 없어서 야간 취침시간에도 치매를 앓고 있는 어르신들의 침대 옆 바닥에 이불을 펴고 쉴 수 밖에 없었다. A씨는 "치매로 밤낮이 바뀌어 야간에도 자지 않고 밤새 요양원 내부를 배회하는 분들도 계셨다"며 야간에도 수시로 환자들을 돌봐야 해 사실상 대기상태였다고 지적했다.
쪽잠도 자기 쉽지 않았다. A씨는 "방바닥은 난방도 잘되지 않아 얇은 이불 하나만 깔고 누워있으면 너무 추웠다"며 "사비로 전열 장치를 두려고 해도 '전기세 많이 나온다'는 요양원장의 말에 그만둘 수밖에 없었고, 얇은 스티로폼 돗자리를 펴는 게 전부였다"고 했다. 결국 제대로 된 휴게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억울했던 A씨 등은 "휴게시간은 사실상 근로시간"이라며 임금을 달라고 요구했지만, 요양원 측은 거부하면서 결국 분쟁으로 번졌다.
○'공짜노동' 만연한 요양보호사...줄어드는 돌봄인력
대법원은 휴게시간에 대해 "근로시간 도중에 사용자의 지휘·감독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근로자가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는 시간"으로 규정한다. 이에 따라 대기시간이나 휴식·수면시간 등이라 하더라도 자유로운 이용이 보장되지 않고 실질적으로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 놓여 있는 시간이라면 근로시간으로 본다.
휴게시간과 대기시간의 경계가 모호한 직종은 주로 감시단속적 근로자인 경비원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최근엔 대표적인 장시간 서비스업 근로자인 요양보호사나 버스운전기사 등이 문제삼는 경우도 급증했다.
대법원은 지난 2021년 요양보호사 홍 모 씨 등 4명이 경기 고양시의 한 요양원을 상대로 낸 임금체불 소송에서 요양원이 요양보호사들에게 각각 1400만원 가량의 임금을 지급하라고 판단한 바 있다. 요양보호사들이 ‘휴게시간’인 야간에도 비상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병실과 가까운 요양원 거실에 머무르고, 쪽잠을 자다가도 입원자들이 있는 병실 쪽에서 소리가 나면 이상이 있는지 살피고 필요한 조치한 점이 인정되면서다.
휴게시간이 근로시간으로 인정될 경우, 해당 시간에 대한 임금체불 외에도 소정근로시간 등이 늘어나면서 주휴수당, 퇴직금을 올려줘야 하는 등 추가 법적 분쟁이 발생할 수 있다. 이정우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휴게 중인 근로자에 대한 사용자의 간섭이나 감독 여부, 자유롭게 이용 가능한 휴게 장소의 구비 여부 등 실질적 휴식권을 보장해줬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달 5일 열린 ‘제30차 외국인정책위원회’서 오는 2028년까지 약 11만6000명의 요양보호사가 부족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실제로 백종헌 국민의힘 국회의원이 보건복지부에서 제출받은 요양보호사 교육기관 개·폐업 현황을 보면, 폐업 교육기관은 2020년 41개소에서 2021년 54개소, 2022년 91개소, 2023년 104개소, 2024년 142개소 등으로 계속 증가세다. 요양보호사들이 현장을 떠나고 이는 것이다.
이에 정부는 지난해 7월 연간 400명 한도로 특정활동(E-7) 비자에 요양보호사 직종을 신설하고, 지난 5일엔 '제30차 외국인정책위원회'에서 외국인 요양보호사 양성 전문연수 과정을 시범 운영하겠단 방침을 밝혔다.
다만 일각에서는 회의적인 의견을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요양보호사들에 대한 근본적인 처우 개선 없는 외국인력 도입은 미봉책"이라며 "저렴한 이용료에만 집착하며 외국인들을 들일 경우 가뜩이나 최악인 처우가 더욱 악화되면서 한국의 열악한 근로조건이 해외에 알려지게 될 수 있다"고 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